[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1월1일 오후3시 경찰서 앞 다방에서 이연준이 누군가를 기다리며 물잔을 가끔 들어 한 모금씩 넘긴다. 요즘 도시에는 다방이라는 문화가 거의 사라지고 커피전문점들이 즐비하지만 아직도 시골 분위기가 남은 소도시에서는 이곳저곳에서 짧은 치마를 팔랑이는 여자가 있는 다방이 남아있다.
한 10분쯤 지나자 박 형사가 들어와 이연준 앞 자리에 앉는다.

「선배님, 지금 비상 걸린 거 아시잖아요. 용건만 간단히 말하세요.」
「자네들이 사람 잘못 잡은 거야. 자네도 알고 있잖나.
그 청수교 무리들이 얼마나 잔인한지 말이야. 이건 분명 모함이야. 갑자기 그 목격자가 나타난 것도 이상하지 않나?」
「선배님, 저도 이상한 것은 아는데요. 목격자가 있는 이상 쉽게 빠져나오기는 힘들 겁니다. 조사 중이니까 뭔가 결론이 나겠죠. 그리고 그 사건은 제 담당도 아니고 서장님이 직접 측근 형사에게 맡겼다고 하니 저도 힘이 없습니다.」

박 형사가 생각하기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다. 그동안 나타나지 않던 목격자가 왜 나타났던 것인가. 김재진이 두 사람을 납치해서 죽일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뭔가 큰 음모가 있다는 직감이 들었지만 지금으로선 손쓸 방법이 없었다. 한참 하소연을 하던 이연준이 새로운 정보를 꺼낸다.

「내가 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번에 나타난 목격자가 청수바람교 신도라는 말이 있네. 이건 분명히 음모가 있단 말일세. 그들이 우리 편집장님을 죽이려는 모함일세.」

이연준의 말이 맞다면 자신들의 실체를 밝히는 기사를 연재하고 있는 김재진을 청수바람교 사람들이 고의로 모함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박 형사는 지난 2년이 넘도록 내사를 해왔기 때문에 그들의 잔인함을 잘 알고 있다. 이번에도 그들이 음모를 꾸몄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박 형사는 일단 이연준에게는 단독으로 조사해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 시각 경찰서 면회실에는 서인애가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김재진을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유리칸막이 너머에 나타난 김재진은 삼일 만에 수척해지고 몹시 피곤해 보이는 안색이다.

「재진 씨, 몸은 좀 어때요?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
나는 재진 씨를 믿고 있어요. 굳건하게 견뎌내셔야 해요.」

서인애의 모습을 보고 말을 듣는 순간 김재진은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자신 때문에 놀랐을 사랑하는 연인을 안심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에 나오지 않는 억지 웃음이라도 지어 보인다.

「인애 씨, 난 괜찮아요. 진실은 밝혀지고 정의가 꼭 승리한다고 그랬어요. 그것을 믿고 싶 어요.」
「재진 씨, 당신은 정말 강한 사람이에요. 절대로 흔들리면 안돼요.
당신이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혼란스러웠던 세상에서 진실과 거짓 이 드러나고 말거에요.」

서인애의 말 한마디가 영혼이 지쳐버린 김재진의 메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며 어루만져 준다. 울고 있는 서인애의 눈물을 바라보면서 김재진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러면서도 억지웃음을 웃느라 우는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닌 기묘한 표정이 되고 만다.

「인애 씨의 말처럼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게요.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저의 마음을 꽉 잡고 우뚝 서서 기다릴 겁니다.」

약해졌던 김재진의 마음에 다시 힘이 돋아나는 느낌이 전달되고 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심하게 흔들리던 영혼의 깃대를 가슴 속 깊숙이 꽂아 넣고 흔들림 없는 자아로 돌아가리라 굳게 다짐한다. 이제는 어느 누가 정신을 흔들어도 당당히 맞서 싸우리다. 내가 흔들리지 않고 진실을 지켜낸다면 정의는 분명 내편이리라.
서인애와의 대면은 김재진에게 용기를 한껏 심어주었다.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진실의 깃발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경찰서 정문을 나온 서인애는 힘이 없는 걸음을 옮겨 이연준이 기다리고 있는 다방으로 들어선다.

「인애 씨, 힘내세요. 저희가 어떻게 하든지 편집장님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드릴 겁니다.」

「네. 그래야죠... 제가 생각해봤는데 저번에 당선된 국회의원을 한 번 만나보죠. 우리에게 힘이 되어 줄지도 몰라요.」

다음날 오전10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현석주 의원실.
서인애와 이연준이 들어서자 안쪽 방안에서 현석주가 맞아들인다. 어제 이연준이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면담을 요청했었다.

「의원님은 현재 어느 편인지 궁금합니다. 저희들을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이연준의 말에 현석주는 갑자기 불안한 눈빛을 흘린다. 눈의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한동안 말을 내뱉지 못하다가 문득 입을 연다.

「청수교의 주인님이었던 분이 사라진 후 저는 심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분 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갈피를 잡지 못했는데 지금은 분노가 치밀어 오 릅니다. 그들 무리에게 제가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제 모든 재산을 잃고 가정까지 박살이 난 상태입니다.」

「이번에 김재진 편집장님이 살인자 누명을 쓰고 갇혀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말은 들었습니다. 청수교 무리들은 아주 잔인한 사람들입니다. 분명 그들의 음모가 틀림없어요. 저도 그들의 실체를 밝히는데 최선을 다해서 협조해드리겠습니다.」

국회의원 현석주도 예상대로 청수교 무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는 것이 분명했다. 그 뿐만 아니라 찾아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겠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그들의 잔인함이 두려워 입 밖에도 내지 못하고 있을 것이었다.

「전직 국회의원 여직원도 청수교 무리들이 세뇌시켜서 음모를 꾸며낸 거예요. 아마도 그 들이 비밀을 감추려고 살해했을 겁니다. 여러분들도 조심하셔야 해요. 그리고 지금 감옥 에 들어가 있는 민주혁이 그들의 실체를 정확히 알고 있을 거예요.」

섬뜩한 말이었다. 결국 현석주에 의해 그들의 잔인함이 밝혀지고 있었다. 같은 추종자들 사이에서 조차 서로 배신하고 처단하는 집단이 바로 청수교였다. 어떻게 해야 극악한 무리들의 실체를 세상에 알릴 수 있단 말인가. 뭔가 잡히는 듯 하면서도 결정적인 증거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현석주를 만난 다음날 오전부터 민주혁을 면회한 이연준은 뜻밖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내 어머님이 그들에게 납치되어 있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어머님을 구해만 준다면 모든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민주혁에게 그런 사정이 있어서 청수교 무리의 곡두각시가 된 것이었다. 그의 어머님을 구해내야 모든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위기에 처한 김재진에게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살인자 누명을 쓴 김재진에게 실낱같은 빗줄기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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