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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소말리아
[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888호] 2013년 04월 17일 (수) 13:03:16 서영태 기자 ssytt00@naver.com

여기는 내전의 불씨가 여전히 꺼지지 않은 불안의 땅 아프리카 소말리아.
독재 권력의 횡포를 더 이상 참지 못하던 주민들의 항의가 수년간 계속되더니 결국 무장반군이 조직되어 정부군과 반군 간 치열한 내전이 발생했었다. 독재 권력에 저항해온 주민들이 반군을 감싸고 도는 바람에 정부군의 진압이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이곳의 반군들은 정부군의 진압이 강해지면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 투쟁하다가 다시 나와서 내륙 땅을 점령하는 빨치산식 투쟁을 2년 여간 진행해오고 있다. 반군 중에서는 아예 해적으로 나서 인근 해역을 통과하는 국제상선들을 납치하여 몸값을 요구하거나 약탈하는 경우가 빈발했다. 이곳이 몇 년 사이에 국제적인 해적들의 중심지로 빠르게 발전하여 각 나라에서는 자국 상선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투함을 보낼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졌다.

나는 이곳 소말리아에 7년 전부터 거주해 온 임상태 선교사다. 사랑스런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족은 한국 온누리기독교선교협회에서 3년간의 혹독한 선교예비과정을 이수하고 매달 100만원의 선교비를 지원받아 소말리아로 파송된 경우다. 한국에서라면 100만원으로 4인 가족이 생활하기에는 어림없겠지만 여기는 워낙 물가수준이 낮은 곳이라서 생활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절약한 여윳돈을 모아 땅을 사서 조립식 교회를 지어 성도들을 차근차근 불려나가고 있다.

교회가 설립된 이곳 치오나이는 2천여 명의 주민들이 생활하는 바닷가 마을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작은 목선을 타고 근해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어업에 종사하는데다 먼 바다에 나가기도 어려워서 겨우 10여 마리의 물고기를 잡아오곤 한다. 그 얼마 안 되는 물고기를 어시장에 팔아 겨우 하루 이틀 먹을 양식을 마련하는 실정이고 집에서는 작은 텃밭을 가꿔 농산물을 자급자족하는 형편이다. 먹을 것이 귀한 곳이라서 아이들은 교회에서 매일 나눠주는 사탕 때문에 발을 내밀고 있다. 교회학교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매일 문을 열고 우리 부부가 영어, 수학, 사회 등을 가르쳐주고 있다. 지난 7년간 열심히 수고해온 결과 80여명의 어린이들이 매일 어린이들이 매일 모여들고 아이들을 따라서 일요일마다 출석하는 어른들이 100여명을 넘어서고 있다. 우리 마을에는 몇 십 년 전부터 천주교 성당이 있었지만 개신교 예배당은 유일하게 이곳밖에 없어서 우리 부부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그런데 3년 전의 일이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60대 중반 정도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교회에 찾아왔다. 참 특이했던 것이 하얀 백발을 길게 늘어뜨려 허리까지 닿았는데 고무줄로 한 번 묶고서 중절모를 쓴 모습이 한국사람 이라기보다는 원래부터 백발로 태어난 유럽인으로 보일 정도였다. 실제 나이는 더 젊은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외양으로는 특이한 노신사거나 예술인이라고 생각됐다.
제임스 남이라고 소개한 그가 무슨 이유로 지구 반대쪽의 소말리아까지 왔는지는 모르지만 무슨 사연이 있기는 있을 터였고 우선은 같은 한국인이라는 말에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이곳에서는 벌써 여섯 달 째 한국인을 본적이 없어서 더욱 친밀감이 느껴져 귀한 손님대접 후에 이 마을에서 가장 좋은 여관을 잡아주었다. 이곳에 홀로 온지 한 달이 지났을 때에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을 때 아주 큰 교파의 수장으로 있었으며, 자신의 신도가 1만여 명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교세를 자랑했었다는 것이다. 자신이야말로 그 교파의 진정한 교주였지만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지구 반대편까지 떠돌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교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다만 내가 몸담고 있는 기독교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제임스 남은 어느 날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섬 하나를 사서 인생의 마지막을 그곳 주민들과 함께 보내고 싶다는 말이었다. 돈은 걱정 말라며 한국에서 이루지 못한 일을 꼭 이루어보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사실 썩은 정부가 이끌어가는 소말리아 형편상 돈만 있으면 안 되는 일도 없는 상황이라서 외국인이 땅을 사는 것이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당장 교회에 출석하는 공무원을 제임스 남에게 소개해주었다.

이후에 돌아가는 상황을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그가 정부 고위 측과 연결되어 소말리아 영토인 잉뚜아 섬을 사들이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 섬은 이곳 치오나이 어촌마을에서 30km를 배로 달려가면 나오는 섬으로 우리나라로 하면 여의도 크기 정도로 주민은 500여명 규모였다. 정부 측과 협상한 제임스남은 우리나라 돈으로 500억 원을 스위스계좌에서 정부 측에 자금이체 했으며 아예 자치권까지 인정받아서 앞으로 50년간 간섭을 받지 않는 계약까지 맺었다는 것이었다.

제임스남이란 자가 어떻게 그렇게 천문학적인 돈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엄청난 자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봐서 거물이었음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돈을 가지고 부패한 정부를 움직여 자치권까지 확보한 수단은 상상이 가지 않는 일로 제임스남을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그자와는 어떤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더 이상 가까이 사귄다는 것은 어려워졌다. 갑자기 잉뚜아섬 자치권자가 되면서 거리감이 생기기도 했지만 종교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큰 벽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제임스남은 어느 날 식사를 함께하며 그런 말을 했었다.

「나는 바람의 신이 다스리는 왕국을 만들 생각입니다.
한국에서 못다 이룬 꿈을 이곳에서 이루게 될 겁니다. 나와 함께 왕국을 다스려보지 않겠습니까.」

제임스남의 한마디에 그를 더 이상 만나서는 안 되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자가 이상한 종교를 이용해서 섬 주민들을 현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종교라는 것은 사람의 잘못된 신념이 간섭하면 되돌릴 수 없는 피해만 준다는 것을 선교사로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이비종교의 교주일 것이 분명했다. 나는 나약한 힘을 가진 선교사로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가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위험한 사이비종교를 주민들에게 퍼뜨리려하고 있는데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미 그는 정부 측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자치권까지 가진 막강한 권력자가 되어 버렸다. 이 불쌍한 민초들에게 커다란 시련이 닥치고 있지만 어떻게 막아야 하는가. 지금 당장은 기도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을 통해 전해져온 소문에 의하면 잉뚜아섬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었다. 제임스남이란 사람은 먼저 거액을 투자해서 섬마을 중앙에 성전을 짓기 시작했다. 이 성전은 20층 규모로 맨 위층은 바람신이 머물 성스러운 공간이었으며 아래층은 각각 자치행정을 담당할 공간과 5천여 명이 한꺼번에 모일 수 있는 예배당과 회의실 등이 계획되어 빠른 속도로 뼈대가 올라가고 있었다. 또한 500여명의 주민들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아파트도 건설되고 공원까지 계획되어 소말리아에서는 가장 발달된 자치구가 만들어져갔다. 잉두아섬은 차츰 왕국으로 불리면서 그곳으로 이사를 가려는 주민들이 계속 늘어갔다. 못사는 소말리아 주민들의 눈에는 잉뚜아왕국이 에덴동산으로 보여 져서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교회에 나오는 아이들까지 잉뚜아왕국을 동경하며 노래를 지어 불렀다.

바다건너 잉뚜아 왕국
새로운 왕이 나셨네.
금으로 만든 궁전
은으로 만든 거리
부귀영화 몰고 온 우리 왕
그분께 경배 드리세.

아이들 사이에서 불러지는 노래는 어른들까지 흥얼거릴 정도로 소말리아 모든 국민들 사이에서 유행을 타게 됐다.

실제적으로 제임스남이 통치하는 잉뚜아섬은 소말리아 정부 측에서 보면 아주 왜소한 섬이었고 별 쓸모없는 지역에 불과했기 때문에 목돈을 받고 넘겨버린 것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잉뚜아 섬은 버려진 땅이었다. 별 소득이 나오지 않는 작은 섬에 부패한 정부가 관여할 이유도 없었고 그럴만한 가치도 없어서 그저 방관하고 있던 섬이었는데 제임스남이란 한국인이 500억 원을 건네주며 개발까지 해주니 정부로서는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겠는가.

잉뚜아 섬을 왕국으로 만들고 있는 제임스남은 어마어마한 현금을 투자해서 그가 한국에서 못다 이룬 꿈을 이루어 나갔다. 동시에 그는 바람신을 주민들에게 전파해나갔다.
정부 측에서 소개해준 한국인 통역을 고용하여 바람신에 대해서 설명하고 왕국의 성전이 건설되면 신이 강림한다고 가르쳤다. 그의 귀에는 바람신의 음성이 매일 들려와서 빨리 성전을 건축하라고 재촉한다며 모두 추종자가 될 것을 강요했다.
결국 제임스 남에게 포섭된 주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0여명밖에 되지 않던 추종자들이 점점 늘어서 1년 만에 100여명까지 늘어났다. 그가 잉뚜아섬을 바람신의 왕국으로 만든다는 구상은 서서히 이루어져가고 있었다. 단지 시간문제일 뿐 추종자들의 숫자는 무섭도록 늘어나고 있었으며 자기들의 재산을 모두 성전건축에 바치기 시작했다. 제임스남은 추종자들이 모든 재산을 다 바쳐야 바람신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엄청난 물과 거대한 바람이 몰려와 세상을 멸망시킬 텐데 여기 잉뚜아섬만 무사하며 바람신의 백성들만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외쳤다. 어서 빨리 재산을 다 바치고 추종자가 되어야 가족을 보호할 수 있다고 강요했다.

시간이 지나자 잉뚜아왕국 성전의 뼈대가 다 완성되고 내부공사가 한창 진행되어 갈 때 내륙에서 폭동이 발생했다. 소말리아를 온통 뒤흔든 폭동은 무장투쟁으로 이어져 반군을 결성하고 부패한 정부군에 맞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우리 교회가 있는 바닷가 마을 치오나이 지역은 반군이 장악해서 정부군과 치열하게 대립했다.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마을 내부에서 시가전까지 벌어져 50여명의 주민이 사망했고 더 많은 주민들이 부상을 당했다. 낮에는 정부군이 점령하고 밤에는 반군이 점령하는 바람에 주민들은 커다란 혼란 속에 빠졌다. 이렇게 반군이 오랫동안 뿌리 뽑히지 않는 이유는 주민들의 동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부의 폭정에 지긋지긋해진 주민들이 낮에는 집안 깊숙이 반군을 숨겨주었고 저녁에 다시 총공세에 나서는 사태가 반복됐다. 이윽고 정부군은 반군색출작전에 나서 주민들의 집안을 무력으로 침입하여 숨어있는 반군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땅굴을 파고 깊이 숨은 경우에는 수류탄을 던져서 죽게 만들기도 했다. 그 후에는 가족들의 통곡이 이어졌다. 마을 주민들 중 젊은 남자들이 대부분 반군이었기 때문에 그 가족들의 심정은 찢어질 지경이었다. 남편이 죽고 아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통곡하다 실신하는 여자들의 모습이 거리거리에서 목격됐다. 나는 선교사로서 그 가족들을 위로하고 장례를 치르느라 바쁜 일과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정부군에 쫓긴 반군들은 배를 타고 잉뚜아섬으로 거처를 옮겨갔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반군들은 400여명으로 섬을 순식간에 점령하고 제임스남이 공들여 건설 중인 20층 높이 성전을 본부로 차지해버렸다. 바람교 추종자들이 항의해보았지만 총기를 든 반군들의 무력에 밀려 손을 써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반군들은 실질적으로 섬을 통치하고 있던 제임스남을 없애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를 없애야만 잉뚜아섬을 완전히 점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총살시켜 버렸다. 교주를 잃게 된 추종자들은 며칠을 통곡했지만 냉정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추종자들 중에는 제임스남의 유품을 한국인에게 전달해야 한다며 반군 수장에게 요구하는 사람이 있었다. 반군 수장은 제임스남의 재산은 모두 압류하고 그의 일기장과 책이 담긴 여행용가방만 전달해 줄 것을 허락했다. 그래서 추종자 중 한 사람이 일부러 잉뚜아섬을 빠져나와 수소문 끝에 나를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가장 가까운 마을에 한국인은 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제임스남의 가족은 아니었지만 혈혈단신으로 아프리카까지 찾아온 그의 과거에 대해서 알고 싶은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의 가방에는 오래된 일기장이 다섯 권 들어있었는데 그가 정신병원을 나오게 된 뒤부터 충청도 서산 청수마을에서 겪은 여러 가지 사건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그 마을에서 남 선지자로 불리어졌으며 청수교의 교주였던 것이다.

나는 제임스 남이 남긴 일기장을 설펴 본 다음 한국 친구에게 연락해서 청수교 관련 정보를 찾아보게 했다. 이윽고 서인애 작가가 쓴 「무서운 마을」이라는 책을 받아보게 됐다. 일부는 사실과 맞기도 했지만 일부는 틀린 부분도 있었다. 또한 그 친구를 통해 전해들은 말에 의하면 아직도 청수마을에는 2천여 명의 신도들이 교주의 귀환을 기다리며 왕국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나는 제임스남의 일기장을 서인애 작가에게 보내기로 작정했다. 불쌍한 청수교도들에게 진실을 말해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세상에 진실이 알려질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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