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용 논설위원(서해중앙교회 담임목사)

요즘 우리나라의 사회풍토는 남을 비판하고 욕하는 것이 일상생활 습관이 되었다. 언론의 사설들이 건설적인 비판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욕설이고 악의에 찬 저주이다.



물론 잘못된 것은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비판은 건설적인 대안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조건 정죄하는 것은 조금도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어떤 비판적인 사건을 보면 입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하고 삿대질을 한다. 이것은 실상 자기 속에 감추어진 아픔과 상처를 다른 사람 속에서 보고 화를 내고 비판하는 것이다.



성경에 이르기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하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은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대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7:1-3)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헬라어 비판(크리노)은 남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을 말한다. 즉 자기 속에 대들보와 같은 큰 문제가 있으면서도 상대방 속에 있는 작은 것을 문제 삼는 것이다.



부부간의 갈등도 서로의 약점과 허물을 비판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지만 아무리 상대방을 고치려고 해도 상대방은 전혀 고쳐지지 않는다.



부부지간에 상대방의 고쳐야 할 점을 지적해서 고맙다고 한번 들어본 사람이 있는가? 상대방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도리어 나의 문제점을 무차별 공격당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누군가의 지적을 따라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지적받기보다는 이해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또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면 육신의 질병과 가난에서 해방될 수 없다고 한다. 주님이 말씀하시길 “만일 네가 너희 중에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칠 것이며 치유가 급속히 임할 것이며 주님의 영광이 너를 호위해 줄 것이다”(사58:9-12) 고 했다.



즉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 버리면 치유와 축복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비판은 우리 삶에 질병과 가난의 영을 불러오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고 한다.



비판의 영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문제점을 놓고 내가 대신 기도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문제점이 보이면 그것을 놓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은 사단의 영에게 매이게 된다. 왜냐하면 사단은 사람들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이 그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사단은 열린 문으로 들어온다. 우리의 삶에 재정이 막히고 질병이 오고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주된 이유는 비판의 영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약4:11-12)



출 애굽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은 바로 투덜거림과 불평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누구를 비판하고 있는가? 자신을 깊이 있게 성찰해야 한다.(잠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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