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춘 시인

애벌레가 배밀이 산책을 간다

배안에 초록물이 가득 찼다

오종종한 발들이 총총 달렸다

여러 개의 발로 달려가건만

아기의 배밀이처럼 보인다

애벌레의 마음나들이 생각나들이

풀밭 산책이다

내 손등 팔뚝이 스멀거린다

건드리면 파란 물이 톡 튈 것 같다

풀잎에서 곤히 잠을 자더니

몸을 바꾸어 번데기가 되었다

날아가는 꿈을 꾸었나보다

길게 하품을 한다

오물오물 허물을 벗는다

시간의 의미를 곱씹는다

환생의 시간이다

벌레에게 새 세상이 열리나보다

불과 몇 초 만에

애벌레는 나비가 되었다

두 세 번의 날개 짓 끝에

나비는 하늘을 날아간다

나도 따라 날아간다

애벌레의 고통도 모르는 채

번데기의 번뇌도 모르는 채

가랑잎 같은 마음으로

나는 날개 짓을 한다

흙 파먹고 풀 뜯어먹고 사는

나는 초야에 묻힌 애벌레이다

내일도 나는 풀밭을 헤맬 것이다

풀벌레를 바라보던 나는

지금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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