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용 목사(서해중앙교회)

어머니! 항상 불러 보아도 정겨운 그 이름 당신입니다. 가난했던 그 시절 자식들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자식들이 알지 못했던 숱한 애환을 가지시고 일생을 다 바친 당신의 모습을 그리워합니다.

당신이 떠난 지 어연 40년이 되었지만 꽃피는 5월이 오면 꽃처럼 아름답고 순수하게 살다 가신 당신의 모습이 내 가슴속에 영원한 사랑으로 피어납니다.

한 평생 자식위해 바치고 간 그 사랑이 너무나 고귀하고 아름답기에 지금도 당신과 함께 지냈던 그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곤 합니다. 여름이면 항상 나를 데리고 약 60km 떨어진 산속 약수터를 찾던 어머니의 모습이 훤합니다.

무더운 여름날 산속 약수터 그 물은 정말 익지 않은 생감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도 참고 먹으면 속병 고친다고 하시기에 쓰디쓴 그 물을 어머니와 함께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항상 흰옷 저고리를 즐겨 입으시고 머리는 곱게 빗어 비녀를 꽂으시고 단정하고 환한 웃음을 지으시던 당신의 그 모습이 지금도 아련히 떠오릅니다.

이웃의 일이라면 내일보다 더 소중히 여기시며 헌신하던 인정 많던 당신은 동네잔치, 궂은일에는 어김없이 그곳에 계셨지요. 동네 일에 어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지요. 이웃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기를 즐겨하던 당신은 나에게 행동으로 목회의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부엌에서 머리 수건 두르시고 밥 지으시며 누룽지 끓여 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선연합니다. 혹 밥이 모자랄 때마다 입맛 없다 하시며 자식에게 밥 주시고 굶으시던 어머니, 당신은 자식을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하셨지요.

내가 커서 어머니께 효도하겠다고 하면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아셨는지 눈물지으시던 어머니, 50대 초반 너무 일찍 이 땅을 떠나서 손자 얼굴도 보지 못한 어머니가 때로는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머니 마지막 가시던 날 자식을 못잊어 하시며 바라보던 그 안타까운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 깊은 밤 아무도 모르게 대구 대학 병원 영안실 어머니 누운 곳에 모포를 살며시 걷어내며 당신의 식어져 가던 그 얼굴을 만지며 손잡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자랐지만 어머니 앞에서 나는 자라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가장 부르고 싶은 말은 ‘엄마’입니다. ‘엄마’하며 당신을 부르며 아이처럼 당신의 품에 다시 안기고 싶습니다.

마른자리 진자리 갈아주시며 키워주셨던 당신을 떠나보낸 줄 알았는데 당신은 지금 내 안에 살아 계심을 발견했습니다. 고향에 가면 어머니를 아는 분들이 나를 보면서 네 어머니를 쏙 빼 닮았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 같은 인생이건만(시78:39)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어쩐 일이지요. 지금도 가끔 당신의 사진을 꺼내보며 혼자 눈물짓곤 합니다. 가슴속에 쌓인 그리움과 보고 싶음은 언제쯤 가실른지요.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 산소를 찾아 갑니다. 포항 앞바다를 바라보며 묻히신 그곳에 나무도 많이 자랐지요. 자식을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했던 나의 어머니 당신이 정말 그립습니다. 바다 같은 어머니의 마음 나도 본받아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넓은 가슴의 목회자가 되렵니다.(엡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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