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영춘 시인

고즈넉한 바다 위 곶머리에

꽤 오래된 집이 한 채 있다

애당초 볏짚용마름지붕이었는데

슬레이트지붕이었다가

함석양철지붕으로 바뀌어

지금은 빨갛게 녹슬어

마치 네모난 거울처럼

햇빛을 바다에 반사하고 있다

바다에 묻힌 일그러진 얼굴

애써 바로 고치려하나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뀔 때마다

거미줄만 늘어날 뿐

기둥은 제 임무를 다한 듯

일손을 내려놓았다

바닷가 곶머리에 집이 한 채 있다

굴뚝연기 모닥불연기

다투어 피어오르고

지붕에 박꽃

담장위에 빨간 고추

정답기 그지없던 집

이 방 저 방 웃음소리

갓난아기 울음소리

바다 멀리 여명 울리던 집

온갖 추억 거미줄에 감아두고

바닷가에 집이 동그마니 서있다

뭍에서 내려온 아이들 모래밭에서

진주목걸이 조가비를 줍는다

사랑탑은 무너져 낙엽이 된지 오래고

정탑은 아직도 살아 마당가득 풋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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