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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달관한 글이 빛나
[1호] 2016년 11월 29일 (화) 11:49:43 서화랑 기자 fire4222@nate.com
   
 
  ▲ 박영춘 시비 앞에서 함께 선 부부  
 

[서산문인열전] 도시의 농부시인 <박영춘> 편

 

 문인 주소록을 펼쳐보면 박영춘, 그는 자칫 도시 출신 시인으로 착각하기 쉽다.

서산시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와 시인」 이는 전혀 부조화이다. 그러나 「전원과 시인」, 하면 어딘가 낭만적이고 로맨틱 하다.

그는 어엿한 도시인이다. 하지만 말만 번드레한 시민이지 순전한 촌사람이다. 그는 촌사람답게 순수하고 올곧다. 인정있고 예의 바르다 그러니 아래 위를 알아보고 가야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은 절대 아니간다. 그는 늘 향수에 젖어있다.

고향이 지금의 북한 땅 황해도 구월산 기슭, 고인돌 마을이다. 1942년 12월 8일 생이다. 아홉살 때까지 그곳 꿈에 그리던 고향마을 에서 잔뼈가 굵었다. 시인이 되고자하는 오롯한 꿈을 지녔을 것이다. 조무래기 친구들과 들판과 묘등판에서 자치기, 딱지치기, 구슬 따먹기, 땅뺏기, 병정놀이를 했다. 그런데 1950년 6.25일 빨갱이들의 남침으로 강산이 피로 물둘였다. 그의 집에서 기르던 암소를 빨갱이들이 주인의 승락도 없이 때려 잡아 먹었다. 할아버지는 애지중기 키우던 공산당의 만행에 소를 잃고 홧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린 박영춘은 할아버지 묘지에 잔디가 뿌리도 내리기 전, 그 해 겨울 1.4후퇴 때 가족은 인민군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총탄에 맞아 풀숲에서 사경에 처한 사촌누이를 그대로 방치했다. 가족들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남으로 남으로, 자유 대한의 품안으로 내려와야했다. 그런 기구한 삶을 산 박영춘시인 어린 나이에 나그네가 겪는 배고픔 추위와 남루를 지닌채 충남 당진을 거쳤다. 어린시절 서산에 정착, 문자 그대로 초근목피로 생명을 지탱했다. 불행중 다행으로 일본사람들이 농사짓던 「적산 땅」에 잡초를 캐내고 돌을 골라내었다. 철따라 씨앗을 구해 감자, 옥수수, 고구마도 심었다. 박영춘에게는 부모님과 남동생 한사람 여동생이 한명 모두 다섯 식구였다.

아버지는 피난민이 겪어야 하는 고초 중에 하나인 남의 집 농사 고용살이를 했다. 어머니는 생선을 이고 마을에서 마을을 찾아 산을 넘고 물을 건넜다. 이러한 삶의 질곡 속에 박영춘은 그 흔한 국민학교도 진학하지 못했다. 동생만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몇해 과년하여 겨우 동생을 추월하여 3학년으로 편입하는 행운도 얻었다.

박영춘은 독학으로, 어깨 넘어로 한글을 깨쳤다. 그리고 셈본을 배웠다. 학업의지가 충만하였든지 공부벌레로 변신하여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행정대학을 마치는 등 고학, 아르바이트 등으로 살았다. 면학의 길을 그러니까 북한식 표기로 「고난의 행군」을 계속했다. 드디어 칠전팔기 그는 대 성공 3.8 따라 드디어 성공 성공했다. 서산 시청에 공무원으로 취업했다. 그러나 병역을 치르기 위해서 입대를 했다. 군대 생활하려고 부대 배치를 받았다. 거기에서 보니 고향친구 전우인 갈산사람 오늘의 시인 박종민을 만났다. 둘이는 먼 고향에서 온 사람이었다. 전우애로 고된 병역을 마쳤다. 지금도 그들은 문우로 전우로 함께 조갈조갈 늙어가고 있다.

박영춘은 성공을 했다. 시집도 수필집도 문학강사로 문예지 편집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이제는 자신을 정리할 회고록을 지필 중에 있는 것으로 안다. 사람은 그 사람의 말과 행실로 인격을 가름한다. 그의 말은 늘 진실하고 바르다. 그가 가는 곳에는 평강과 친교가 싹을 튼다. 크게 뚫어진 곳이나 모자라는 곳이 없다. 그의 아들이 시인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문인으로 사는 일은 축복이다. 소통이고 통섭의 울안이다. 그에게는 청장관 이덕무같은 끈기와 열하 박지월같은 열정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공자같은 인격자인 동시에 저명한 시인이고 베스트셀러 수픽가이다. 그가 지은 작품집이 벌서 여러권이다. 스타가 다로 있는가? 박영춘 시인, 수필가ㆍㆍㆍㆍ.

 

= 수필가라고 말하기 보다는 농부이며 시인

박영춘은 시인이면서 수필가이다. 성실하고 근면하다. 공무원 생활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쫀쫀하지 않고 융통성이 많다. 그 만큼 그는 폭이 넓고 또한 마당발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곁에 서면 푸근한 맏형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그의 인격의 튼실함에 있다. 나는 그와 내통하기 수년이 지났지만 만날 때마다 구수하고 은근한 친밀감을 느낀다. 시인으로 1000평의 밭에 마늘, 파, 아욱, 상추, 세상에 있는 소채와 약선 식물을 손수 가꾸고 있다. 그의 그 농법과 식물의 고유성은 글로 풀어낸다. 그의 시론(時論)은 다음 기회에 심도있게 평가 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의 수필의 미학은 바로 자연이 주는 이치와 거기에 지닌 의미성을 천착해 낸다. 그것속에는 그의 인생관과 철학을 투영화 시키고 매사는 긍정과 용서로 화답하게 한다. 우리나라 농민작가 혹은 농민시인을 손꼽는다면 영동의 박운식씨를 들 수 있다. 박영춘과 동일 선상에 서 있다. 농민의 아품과 서러움을 저항하는 몸짓이 나니라 톤이 낮은 음정으로 오소하고 부탁하고 염원하는 자세이다. 세상을 달관하는 자세이기 때문에 그의 글이 빛난다. 수필의 논조는 바로 여기에 묘미가 있다. 문체는 부드럽고 세세하다. 소설 문정차럼 세부묘사의 극대화로 손에 땀을 쥐게하는 마법이 있다. 어느 누구든 그의 수필의 심미성과 철학성에 우리는 혀를 차게 한다. 피천득, 윤오영, 김진섭의 수필의 장점의 무엇인가? 그게 바로 심미성┼철학성과 더불어 간결성에 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수필가 박영춘을 수필가라고 말하기 보다는 농부이며, 시인으로 부르고 싶다. 시인은 순수하다. 농민도 그렇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속에는 따스한 피가 흐르고 있다. 그 피를 지켜주는게 우리들의 삶이고 안녕이고 평화이다. 박영춘, 그를 다시 불러본다. 농부시인ㆍㆍㆍ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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