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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城 병사도 찬란한 落照에 전율했을까
[1호] 2017년 03월 05일 (일) 02:13:35 서화랑 기자 fire4222@nate.com
   
 

[향토문화재탐방] 보령 충청수영성- 천수만 앞 바다 경관이 수려한 유적지

보령 충청수영성(사적 501호)에 올라본 적이 있는가. 항구 옆에 자리한 충청수영성은 야트막한 언덕에 쌓은 성곽이다. 서문인 홍예 모양의 망화문으로 들어서 걸음을 떼면 300~400m를 복원한 성곽은 오르기 수월하고, 천수만과 오천항, 보령방조제 등 빼어난 전망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3일 탐방에 나선 이 성에는 오래된 역사 속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충청수영이란 충청도수군절도사영(忠淸道水軍節度使營)의 줄임말이다. 충청도 수군을 지휘하던 절도사가 머물던 본영이라는 뜻이다. 아산만에서 금강 하구의 장항만에 이르는 충청수역은 해안선의 길이가 992.8㎞에 이르고 250개 남짓한 섬을 포괄하고 있었다. 충청수영은 이 관할 수역의 중간 지점인 지금의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일대에 있었다.

이 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려면 영보정(永保亭)에 올라보면 알 수 있다. 너른 나무바닥을 거닐며 사방을 살펴보면 서해의 잔잔한 바다와 붉게 떨어지는 일몰의 장관에 빠져든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많은 부분의 성곽이 훼손되어 있었다. 앞으로 성벽을 되살리기 위한 발굴조사도 곧 이루어질 것이어서 지역 최고의 역사관광 자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과거 어떤 역할을 수행했던 성이었나

충청수영성 앞 바다는 고려시대 이후 남부 평야지대의 곡식을 개성이나 한양으로 운반하는 조운선이 지나는 길목이었다. 당시 왜구가 해안은 물론 내륙까지 침범했던 것도 쌀을 비롯한 양곡 탈취가 가장 큰 목적이었던 만큼 수군의 강화는 필연적이었다. 조선이 고려 군제(軍制)를 발전시켜 오천에 충청수영을 설치한 것은 세종 29년(1447)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왜구로부터 우리땅을 지켜내던 중요한 이 성은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9호 보령오천성으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8월 24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501호 충청수영성으로 승격 지정 되었고, 2011년 7월 28일 보령 충청수영성으로 문화재 명칭이 변경되었다.

충청수영성은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고종 33년(1896) 폐영(廢營)되었으며, 그 규모는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에 따르면 조선 초기 충청수영과 그 산하에 배속된 군선과 병력이 군선(軍船) 142척에 수군 수(水軍數)가 총 8,414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 위치하여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漕運船)을 보호하고 왜구침탈을 방지했고, 근대에는 이양선을 감시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선조 29년(1596), 충청수사 최호가 충청수영의 본영과 속진의 수군을 이끌고 남해 한산도에 머물며 수군통제사 원균의 지휘를 받다가 이듬해인 선조 30년(1597) 7월 1일 일본군에 패하여 통제사 원균과 함께 전사했다.

또한, 충청수영성은 천수만 입구와 어우러지는 경관이 수려하여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지역으로 성내의 영보정이 유명했고, 서문 밖 갈마진두(渴馬津頭)는 충청수영의 군율 집행터로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천주교 신부 다섯 명이 순교한 곳이다.

근대에 들어 도로개설이나 호안매립 등으로 인하여 훼손된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충청수영성은 나머지 성지(城址)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지형이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군사목적에서 마련된 충청지역 수군 지휘부로써 충남의 수군편제와 조직, 예하 충청지역 해로(海路) 요해처(要害處)에 배치되었던 수군진과의 영속 관계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충청수영성은 충남 해안과 안면도·원산도로 둘러싸인 천수만에서도 좁은 내만(內灣)에 깊숙이 들어앉았다. 앞바다의 수심이 깊은 데다 서해안의 다른 포구와 달리 심한 조수간만의 차이에도 배가 드나드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수영성은 해변과 주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뒷동산의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려 지금 보아도 천혜의 요새다. 석성(石城)인 충청수영성은 수군절도사 이장생이 둘레 3174척, 높이 11척 규모로 중종 4년(1509)부터 16년 동안에 걸쳐 쌓았다.

충청수영은 봉수를 이용해 먼바다를 포함한 관할 수역의 움직임을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어청도 봉수에서 외연도 봉수, 녹도 봉수, 원산도 봉수를 거쳐 충청수영성 남쪽 1.2㎞ 지점에 있는 망해정 봉수로 이어지는 정보 전달 시스템이었다.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지형적 특징을 감안한 충청수영의 권설봉수(權設烽燧)는 다른 수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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