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현장으로] 면천보통학교 3·10 만세 운동, 어떻게 일어났었나

길거리를 걷다보면 서너 명의 중학생들이 재잘거리며 지나가는 모습에서 앳된 얼굴을 발견한다. 어른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미래를 준비할 공부만하면 되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일제치하에서 공부했던 어린 학생들은 빼앗긴 나라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직접 길거리로 뛰쳐나와 일제순사들에게 항거했다. 과연 그 시절의 10대 학생들은 어떻게 그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98년 전인 1919년 3월 10일 우리나라 최초로 학생이 주도했던 면천공립보통학교 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하는 행사가 지난 10일 당진시 옛 면천초등학교 일원에서 펼쳐졌다.

면천보통학교 3·10 만세 운동은 당시 16세에 불과 했던 면천보통학교 4학년 원용은 학생이 3.1운동을 목격하고 고향 당진에 내려와 동급생 박창신과 4학년 급장이었던 이종원과 함께 면천면 동문 밖 저수지부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천보통학교 교문까지 행진했던 독립만세 운동이다.

특히 이 독립만세운동은 광주학생항일운동보다 10년이나 앞선 학생주도의 독립운동이자 당진지역 최대 독립만세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는 대호지·정미 4·4독립만세 운동에 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날의 항거를 주도했던 원용은, 박창신 학생은 공주 형무소에 수감돼 4개월 간 옥고를 치르는 등 모진 고초도 겪었으며, 3·10만세 운동의 전말은 이종원 학생이 남긴 회고록 덕분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당진에서는 이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8년 발족된 ‘면천보통학교 3·10 독립만세운동 기념사업회(회장 조이행)의 주관으로 매년 3월 10일 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열리고 있다.

10회째를 맞이한 올해 재현행사에서는 인근지역 학생 300여 명과 시민 200여 명 등 5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일제에 당당히 맞섰던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되새기고 3·10 만세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1부 기념식에서는 독립선언서 낭독 이후 학생들의 독립만세 운동 노래제창과 만세삼창이 이어지며 그날의 함성을 되살렸으며 이후 진행된 재현행사에서 참여자들은 면천초등학교를 출발해 기념광장까지 만세를 외치고 행진하며 나라를 잃은 민족의 비통함을 표출했다.

시 관계자는 “이곳 면천에 깃든 선열들의 숭고한 얼을 17만 당진시민과 함께 계승해 희망찬 당진의 미래를 열어가기를 희망한다”며 “그날의 함성을 떠올리며 우리 선열들의 위대한 정신, 뜨거운 마음이 헛되지 않도록 시에서도 시민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당진지역 최대 독립만세운동인 대호지·천의장터 4·4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는 행사도 내달 4일 대호지 창의사와 면천면 천의장터 일원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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