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 영 춘

그해봄 꽃잎은 향기를 펼쳤다

나비는 어깨춤 추었다

제비와 아지랑인 고향을 찾아왔다

그해봄 나는 텃밭에 서서

밭가는 암소 눈에서 걱정을 읽었다

 

그해여름 꽃잎은 짓밟혔다

나비는 죽었다

꿈은 깨졌다

풀은 숨소리 숨겨 떨고 있었다

그해 여름 나는 모닥불에

할아버지랑 메뚜기 구워먹었다

 

그해가을 씨앗은 보이지 않았다

꿈은 불타 버렸다

소꿉살림도 모두 불타버렸다

그해 가을 나는 산에 가서

할아버지상여 붙잡고 실컷 울었다

 

그해겨울 눈은 무릎까지 쌓였다

배고파 살갗이 추웠다

나무가 구들장을 덥혔다

그해겨울 나는

동생을 업고 총소리 피해

따스함과 배부름 찾아 헤맸다

 

이듬해 봄 보릿고개였다

그러나 다시 일어섰다

총소리가 끝나는가싶더니

시체더미위에 철조망이 쳐졌다

이듬해 봄 나는 맨발에

깡통 들고 집집을 찾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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