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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롭게 전사한 ‘섬마을 의병들’ 결코 잊지 않으리
[777호] 2017년 08월 15일 (화) 11:17:14 서영태 기자 ssytt00@naver.com
   
 

[8.15역사특집] 당진시 석문면 소난지도 의병총, 등록문화재로 지정 예고

 

올해 광복절을 앞둔 지난 8일 문화재청이 당진시 석문면 소난지도 의병총을 등록문화재로 지정을 예고하면서 당진시민들은 그 어느 해 보다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광복절을 맞았다.

등록 예고된 소난지도 의병총은 특별한 사유가 없을 경우 30일의 예고기간이 마무리되면 오는 9월 6일 경 등록문화재로 정식 지정될 예정이다.

소난지도 의병총은 1905년 일제가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 이후 충남 해안지역 의병들이 연합해 항일 의병활동을 한 곳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섬을 근거지로 항일투쟁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소난지도는 조선시대부터 삼남지방의 조세선 기항지였을 정도로 식량 확보가 용이했다. 의병들은 내륙으로 이어진 수로를 이용해 주재소를 습격, 무기를 탈취하는 등 내포지역(현재 홍성·예산) 의병운동 중심 역할을 했다.

의병활동 기점은 크게 두 번으로 나뉜다. 최구현 의병장을 중심으로 면천성을 공격했던 1906년과 일제가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시킨 1907~1908년 홍원식 의병장이 활약했던 시기로 구분된다.

최구현·홍원식 의병장은 구한말 군인 출신이다. 이들은 신식무기로 무장한 일경과 맞서 싸웠다. 이들의 항거는 입으로 전해져오다 1970년대 석문중 교사와 학생들이 고증작업을 진행했다. 이후 2003년 당진시가 소난지도 의병항쟁 학술고증에 나서면서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났다. 2009년 이곳에 의병항쟁 추모탑이 세워졌다.

이에 소난지도 의병의 활약상 등 항일투쟁 역사를 발굴하고 널리 알려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 100여 명 의병들, 일본군에 쫓겨 소난지도에서 대부분 전사

당진시 석문면에는 면적 2.63㎢이며, 대난지도의 남쪽 400m 지점에 있는 작은 섬을 소난지도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한 많은 역사가 잠들어있다.

대난지도의 옆의 작은 섬이라 하여 소난지도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섬은 조선시대에 세곡을 운반하던 세곡선이 많을 때에는 100여 척이 넘게 정박하였다고도 하며, 6·25전쟁 때에는 피난민이 많이 들어와 원주민들과 생업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섬의 동쪽 끝 바닷가에 을사조약에 반기를 들고 왜군과 싸우다 순국한 홍일초 휘하의 150여 의병이 잠든 의병총이 있다.

지난 12일 방문한 석문면 난지도리 소난지도 둠바벌 바닷가에 의병 유골을 합장한 의병총은 한 많은 역사를 안고 잠들어 있었다. 조선시대 조운선이 태풍을 피해 기항하던 소난지도에 총성이 울리며 전국 최초 해전 항일운동이 일어난 건 1908년이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국권을 일제에게 빼앗기자 경기도 수원의 홍일초는 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을 벌였다. 100여 명에 달한 의병들은 일본군에 쫓겨 충남 당진 소난지도에 집결해 재기를 노렸지만 정보를 탐지한 일본군의 기습공격에 맞서 끝까지 싸우다 대부분 전사했다.

의병총의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게 된 건 의병항쟁을 직접 목격한 조예원(1893~1980)의 증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난지도가 바라보이는 마을인 석문면 교로리 검은들 마을에 살던 그는 소난지도 앞 바다인 도비도에서 일을 하다가 교전상황을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당시 16세였던 조예원의 증언에 의하면 소난지도 전투는 무신년(1908년) 2월 12일(음력) 밤부터 13일 아침까지 있었으며 대장은 홍일초라고 했다. 의병은 배를 타고 소난지도에 들어오는 일본군을 향해 집중사격을 했으나 배에 소나무를 가득실어 총격을 피했고 탄환이 떨어진 의병을 죽였다고 한다.

소난지도 의병항쟁에 관한 자세한 기록을 남긴 <폭도에 관한 편책> 원본에 의하면, 홍성경찰분서에서는 소난지도에 의병대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 3월 13일 일본인 순사 7명과 한인 순사 8명 등 15명으로 편성된 경찰대를 아가츠마 다카하치의 인솔 하에 당진지역으로 파견했다.

이들은 소난지도가 의병의 근거지임을 확인하고 3월 15일 아침 6시부터 배를 타고 소난지도로 들어가 의병과 총격전을 벌였다. 총알이 떨어져간 의병들은 고지 뒤쪽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 섬의 동남쪽으로 피하면서 경찰대와 수십차례 접전했으나 오후 3시경 대장 홍원식과 선봉장 박원석을 비롯해 총 41명이 전사하고 9명이 부상을 입고 체포되면서 의병은 궤멸되고 말았다.

일본의 보고서에는 41명이 전사한 것으로 보고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150여 명에 달하는 의병이 전사했다고 한다.

의병 시신 일부는 바닷물에 떠내려갔고, 나머지는 섬 주민들이 모아 둠바벌에 묻고 봉분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약재가 된다고 믿었던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의총을 파서 유골을 가져가거나 가매장됐던 웅덩이나 해변 무덤에서 해풍을 이기지 못한 유골들이 뒹굴었다.

전설처럼 구전되던 의병항쟁사는 한 교사의 노력으로 빛을 보게 됐다. 소난지도를 돌아보던 석문중학교 한 교사가 현장상황을 학교에 보고했다. 현장을 방문한 석문중학교 신이균 이사장과 김부영 교장은 의병총이 멸실되어가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 의병총을 보수 정화해(1973년) 학생들로 하여금 선열의 얼과 애향심을 고취하는 정신도장으로 삼고자했다.

이어서 교직원과 학생, 주민들이 뜻을 모아 유골을 수습, 봉분을 봉축, 묘역을 정비했다. 2008년에는 소난지도 의병항쟁 추모탑을 건립했으며 이듬해인 9월 22일에는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등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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