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첫날 밤, 상근예비역으로 복무중인 큰아이가 꽤나 긴 시간동안을 머리를 긁적여 가면서 책상에 앉아있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이 시간은 어김없이 온라인상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눠가면서 어른들이 볼 때는 도무지 이해 안가는 총싸움을 해대는 시간인데 말입니다.

 

다가가서 어인 일인가 물으니 부대에서 중대장님이 2박3일 포상휴가를 내걸고 감사내용 5가지 이상을 꾸준히 노트에 기록해보라고 했다는 겁니다.

 

“지난 번 훈련소에서 매일 매일 병영일기를 쓰면서 감사했던 일을 한가지 씩 꼭 적으라고 해서 그것까지는 어렵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다섯 가지나 쓰시라니 솔직히 막막합니다. 제가 꼭 포상휴가를 받고 싶은데 말입니다.”

 

“잘 생각해봐. 감사할 조건들이 얼마나 많은지. 오늘 오후에 예쁜 저녁노을 우리 함께 봤잖아. 네가 비록 시력이 좋지 않아서 안경을 썼다마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냐.”

 

“아! 그러네요!”하고는 머리 한번 탁 치고 나더니 그때부터 술술 써내려 갑니다. 문과 출신 애비 에미의 피가 흐르긴 흐르나 봅니다.

 

녀석이 잠들고 나서 슬쩍 읽어보니 어지간한 문장가도 울고 갈 만 한 장문의 일기를 써놓았습니다.

 

‘훈련소에 있을 때는 샤워할 수 있는 시간이 짧기도 하고 빨래하는 시간과 겹치기라도 하면 물도 잘 나오지 않아 마음껏 씻지도 못해 불편했는데 집에서는 마음껏 씻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부터 시작해서 오늘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훌륭한 음식을 대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느니, 부대 출근을 위해 두 시간이나 걸려서 오는 동기가 있는데 본인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을 만큼 집이 가까워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다느니, 발가락이 아픈데도 함께 근무를 서준 선임에게 감사하다느니, 군복무 시간이 얼마나 흘렀고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려주는 어플을 안내해 준 친구가 감사하다느니, ... 그렇게 감사내용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훈련소에서 참 많이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매일 밤 병영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되짚어 보고 감사했던 내용을 기억해 적을 때마다 참 많이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냥 의무적으로 과제라고 생각하고 생각 없이 썼었는데 말이죠. 이번에도 감사노트를 적으면서 복무기간 동안 지루하지 않고, 제 추억도 남겨볼 랍니다. 거기에다 포상휴가까지 받으면 더 좋겠지요? 그동안 생각 없이 살았는데 감사노트를 기록하려고 하다보니까 ‘이 내용을 감사노트에 꼭 기록해야지’하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우와, 생각보다 감사할 일이 참 많더라고요. 생각해 보니까 감사노트를 기록하라고 하신 중대장님께도 감사한거에요. 솔직히 언제 우리가 이런 걸 해보겠어요. 게다가 포상휴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까지 주시다니! 아, 그리고 지금 하나 기록할 것이 생각났어요. 엄마 덕분에 제가 이렇게 운동도 하고 있잖아요. 감사하네요. 흐흐흐”

 

주말인 다음 날 밤,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던 녀석이 야밤에 반강제적으로 끌려 나와 아파트를 빙빙 잡아 돌면서 속내를 꽤나 길게 이야기 합니다.

 

그렇게 아드님의 텅 빈 줄무늬 감사노트는 복무기간 내내 자꾸만 자꾸만 채워지겠지요. 그리고 끊임없이 감사하는 삶이 어떻게 유익한 지도 몸소 느끼는 참 좋은 기회가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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