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서산시 지곡면 도성3리, 칠지도 도장공 추모문화제 열어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 마을에는 ‘야철터’가 있다.

조선시대 이 마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철 생산 혹은 은 제련(製鍊) 양상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조선 초기 명(明)으로의 조공(朝貢)에 필요한 금은(金銀)이 매우 절실하였던 상황에서 서산지역이 은 산지(産地) 중 하나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서 후손들이 선조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지난 14일 서산시 지곡면 도성3리 마을회관 광장에서 칠지도 도장공 추모문화제가 칠지도기념사업회와 지곡면 주민자치위원회 주관으로 열렸다.

이날 이완섭 서산시장, 칠지도기념사업회 박병석 회장, 지곡면 이경식 면장, 윤영득 서산시의회 부의장, 장갑순 서산시의원,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하여 추모제가 진행 되었다.

시상식 순서에 국회의원상을 이광옥, 서산시의회의장상 민효순 씨가 수상했으며, 식전행사로 민요공연과 정성들여 준비한 푸짐한 음식으로 추모제에 참석한 내외빈들에게 대접했다.

기념사업회 박병석 회장은 “삼국시대 백제의 곡나(지금의 지곡면 도성리)에서 칠지도가 만들어진 유서 깊은 고장이다.”며 “이에 후손들이 칠지도 제작 도장공들을 추모하고, 서산시민의 안전을 기원하는 칠지도 도장공 추모제가 9회를 맞이하게 되어 감회가 깊다. 칠지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연구가 활성화 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이완섭 서산시장은 “칠지도는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우리 국민에게는 아이러니 하겠지만 일본과 한반도의 교류관계를 말해주는 사료(史料)라 생각한다. 칠지도는 100번을 두드려 만든 위대한 우리고장의 문화유산임에 틀림없다.”며 “우천으로 행사준비에 노고가 많으신 가운데 많은 관심과 참석으로 뜻 깊은 추모제가 될 것.”이라고 인사말을 전했다.

서산시의회 윤영득 부의장은 “칠지도가 도성리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은 우리지역이 백제의 역사와 발전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우리는 혼과 정성으로 칠지도를 제작한 도장공들을 기억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계승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 도성리에서 제작되었다는 칠지도는 무엇인가

칠지도는 일본 덴리 시[天理市]의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에 전해져 오는 철제 칼로 1953년 일본 국보로 지정되었다. 제작 연대와 명문 해석에 관해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들 사이에 다양한 학설이 있다.

단철(鍛鐵)로 만든 양날의 칼로 전체 길이는 74.9cm이며, 칼날의 길이는 65cm이다. 칼의 좌우로 각각 3개씩의 칼날이 가지 모양으로 뻗어 있어 칠지도(七支刀)라고 부른다. 칼의 양면에는 60여 자의 명문(銘文)이 금상감(金象嵌) 기법으로 새겨져 있다. 무기로서의 실용성보다는 제의(祭儀) 등에서 상징적인 용도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육차모(六叉鉾, ろくさのほこ)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왔으나, 1873년 이소노카미 신궁의 대궁사(大宮司) 간 마사토모[菅政友]가 칼날에 새겨진 명문을 발견하면서 칠지도로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1953년에 일본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이소노카미 신궁에 소장되어 있다.

칠지도는 광개토대왕비와 더불어 고대 일본과 한반도의 관계를 알려주는 가장 오랜 문자 사료이다. 하지만 표면이 부식되어 일부 글자는 판독이 어렵다. 많은 연구와 방사선 촬영 등을 통해 총 60여 자가 확인되었으나, 몇몇 글자(侯•以•音•倭)는 여전히 해석의 어려움이 있다.

간 마사토모는 명문에 나타난 ‘태□4년(泰□四年)’을 중국 서진(西晋)의 연호인 태시(泰始) 4년으로 해석해 268년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1945년 이후에는 이를 동진(東晋)의 연호인 태화(太和) 4년으로 해석해 칠지도가369년에 제작되었다는 설이 통용되었다. 하지만 한국 학자들은 삼국의 기록에서 중국의 연호를 사용한 사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동진의 연호를 기준으로 제작 연대를 보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오히려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이나 전지왕(腆支王) 때의 독자적인 연호를 나타낸다고 보는 학설이 있다. 또한 ‘십□월(十□月)’을 11월로 보아 11월 16일에 병오(丙午)의 간지가 나타난 408년에 제작되었다고 보는 학설, 북위(北魏)의 연호인 태화(太和) 4년(480년)을 제작 연대로 보는 학설이 있다. 일부 학자는 금상감 기법으로 장식된 칼이 5세기 후반 이후가 되어서야 나타난다는 점에서 칠지도를 6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진행/ 충남뉴스통신 구자홍 대표

취재/ 권근한ㆍ김인애 기자



▲ 칠지도기념사업회장 박병석

▲ 지곡면장 이경식

▲ 서산시의회 부의장 윤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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