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야우 박영춘 시인

오이 잎이 꽤 넓다

도량이 꽤 넓은가보다

심성이 참으로 푸르기도 하다

 

규수 혼자 사는 골방

널따란 오이 잎

화분을 덮어버렸다

아랫도리 감싼 수줍음

푸른 치맛자락 꽤나 넓다

마음이 무척 넓은가보다

시원스럽다 풋풋하다

 

노한 꽃집에 오이새끼가

누에새끼처럼 맺혔다

쑥쑥 커 홍두깨가 되었다

머리를 하늘에 두고

지구로 다리를 곧게 뻗었다

 

그런데 어떤 녀석은

심성이 비틀어졌는지

심성이 뒤틀려졌는지

소갈머리 없는 놈이 되었다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다리를 하늘로 추켜올리고

삐딱하게 뒤틀려

못마땅한 표정으로

온 몸에 불만을

도돌도돌 뱉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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