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 25일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터라 오후 5시를 살짝 넘겨 온 식구가 저녁식사를 일찌감치 마치고는 산책 겸 마침 5일장을 맞은 당진 재래시장으로 발걸음을 향해봅니다.

 

“한 바구니에 5천 원 팔던 참외, 지금부터 5천원에 두 바구니 드려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안 사면 무진장 손해일 것 같은 참외장수 아저씨의 당당한 외침에 후루룩 달려가 봅니다. 외모도 매끈하고 싱싱해 보이는데 가격까지 저렴하니까 계획에 없던 참외를 주섬주섬 사 담는 주부들 틈에 끼어봅니다.

 

“집에 먹어야 할 과일이 많은데 큰일났슈! 이거 언제 다 먹는댜? 부지런히 먹어야 쓰겄네~” 두 바구니 연거푸 검정봉지에 담아 건네주는 참외를 받아들고 한 아주머니가 아무도 묻지도 않은 말에 수지 맞아 좋아죽겠다는 듯이 혼잣말을 해댑니다.

 

그때 바로 옆에서 검정봉지 똑같이 받아 든 할머니가 생전 처음 본 아주머니의 혼잣말 고민을 단방에 해결해줍니다.

 

“뭐이 걱정이댜? 옆집도 나놔주고 사방 나놔 묵으먼 금방 없어지제.”

 

그렇게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참 정겨운 대화 아닌 대화를 들으면서 웃음이 쿡쿡쿡 나는 것을 못 참고 에라 모르겠다 푸하하하~ 소리 내 웃으면서 걷습니다.

 

“나는 올해 고추농사 망해서 일찌감치 뽑아내 버리고 콩 심었지. 작년에 한근에 12,000원 받고 친구들 몇몇한테 팔았었는데 거꾸로 올해는 구룡리 마을서 농사 짓는 친구네서 한근에 2만원 씩 주고 샀네. 허허.”

 

퇴직하고 귀농해 우리 아파트에 사는 선생님이 매년 풍성하게 거두어 풋고추며 고춧잎이며 동네사람들과 나누었는데 올해는 그러지 못해 아쉽다며 한 말씀입니다.

 

선생님 말대로 요즘 계속된 폭염과 가뭄으로 작황까지 부진해 고추 값이 치솟았다고 하니 ‘나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듯 붉은 얼굴을 하고 커다란 봉지에 담긴 햇 고추에 시선이 꽂혀 멈춰 섰습니다.

 

당진산 고대 햇 고추가 한 근에 18,000원, 좋아보이니까 20,000원, 당진산 고대 햇 청양고추는 한 근에 22,000원, 좋아보이니까 25,000원.

몇몇 어르신들이 고춧값 써 붙여진 팻말을 쳐다보고는 모두 고개를 흔들며 한마디씩 하면서 지나갑니다.

“아이고! 올해 김장 워치게 헌댜~~자식들까장 김장을 해서 주얀디 당췌 월매치를 사얀댜~”

“작년도 비싸다고 했구만 올해는 더 비싸니께 이거 환장할 노릇이여!”

이 두 분도 일행은 아닌 것이 확실한데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주거니 받거니 시름을 쏟아냅니다.

 

평상시 같으면 사람에 걸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어려울 만큼 붐비는 거리가, 시간이 갈수록 오가는 사람 몇 안 되는데도 상인들은 펼쳐놓은 팔 꺼리들을 쉽게 접지 못합니다.

 

손수 농사지어 따 온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풋고추 딱 한 접시 남았는데 그것 팔기 전에는 집에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머리 새하얀 할머니는 무르팍이 아파서 바닥에 앉을 수도 없으니까 간이의자 하나 갖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마다 애처로운 눈길을 보내보지만 소용없습니다.

 

“자기가 저거 사드려. 할머니 집에 가시게.”

어디 갔나 안 보인다 했더니 참 인정머리 없어 보이는 고급진 비주얼을 가진 남편이 시장통에 펼쳐놓고 파는 18,000원짜리 바지 하나 사서 검정봉지에 담아 들고 나타나서는 할머니의 구세주가 되어줍니다. 할머니, 잇몸 드러내 활짝 웃으시면서 덕담을 합니다.

 

“얼굴도 이삐게 생겼구만 맘씨도 이삐네!” 그렇게 얼굴도, 맘씨도 이삔 남편은 어김없이 구수한 번데기 한 컵 사들고 이쑤시개로 콕콕 꽂아 먹어가면서 걷습니다.

“아이구 이 맛이여! 시장에서 번데기 먹을 때가 그렇게 행복혀~”

“아빠, 저두요.”

“우리 다음 장날에 또 와요.”

“그려, 그려.”

 

얼굴에 번데기 국물이 튄 채 검정봉지 여럿 들고 시장 길목을 걸어 나가는 아빠와 아들의 뒷모습이 시뻘건 저녁노을 조명발 받아 한편의 영화장면이 됩니다.

 

찾을 때마다 감동 주고 웃음 주는 재래시장. 많이들 찾아주세요. 상인들이 우리에게 준 감동과 웃음 되받을 수 있게.



저작권자 © 충남인터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