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시리즈] 옥파 이종일 선생 - 3.1독립운동 민족대표, 자랑스런 태안 인물

 

3.1독립운동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 충남 태안 출신이다.

33인의 이름은 우리 근대사 위치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하지만 이중 일부 인사들이 변절하였으니,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태안 출신 옥파 이종일 선생은 33인의 역사적 의미를 살린 인물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민족대표 33인중의 한 사람이었던 옥파선생은 일본제국주의 총칼과 맞서 싸우며 오로지 구국일념 속에서 한스러운 생을 마친 고귀한 분이었다. 옥파는 3.1독립 운동 당시 민족대표로서 직접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낭독한 독립운동가이며 언론인 교육자, 종교인, 개화사상가, 한글학자 실학자 여성운동의 선구자, 그리고 민족주의자로서의 뛰어난 애국사상가였다.

태안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옥파 이종일 선생의 제93주기 추모 제향이 지난 31일 원북면 반계리 이종일 선생 생가지에서 거행됐다.

옥파 이종일 선생 추모사업회가 주관하고 태안군이 후원한 이날 추모 제향은 가세로 군수를 비롯해각 기관 단체장과 지역 주민, 공무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실시됐다.

이날 추모 제향에서는 가세로 군수가 초헌관을 맡았으며 이복용 성주이씨 대종회 상임부회장이 아헌관을, 김종인 추모사업회장이 종헌관을 맡아 옥파 이종일 선생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기렸다.

한편,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으며 올 해 옥파 이종일 선생 생가가 충남서부보훈지청으로부터 ‘3월의 우리고장 현충시설’로 선정되기도 했다.

 

=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 닻개(碇浦) 출생, 성주 이씨 교환(敎煥)의 장남

옥파 이종일 선생은 1858년 11월 6일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의 닻개(碇浦)에서 성주 이씨인 교환(敎煥)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그는 일찍 고향에서 한문을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머리가 매우 명석해서 감히 다른 사람들이 그를 추종할 수가 없었다.

또한 그는 호를 옥파라 하였는데, 그후 천도교에 입교(1905)한 다음 묵암(默菴)이란 도호(道號)를 받았으며, 그 밖엔 필명(筆名)으로 천연자(天然子)·중고산인(中皐散人)·중헌(中軒) 등이라 하였다.

옥파선생은 일찍 15세 때에 웅지를 품고 고향을 떠나 상경(1873)하여 다음 해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후 1882년에는 박영효(朴泳孝) 수신사를 따라 일본(日本)에 건너갔었는데, 당시의 일본사회의 개화된 실상을 목격하고 귀국하였다. 옥파선생은 이때부터 마음의 한 구석에서 개화사상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적으로 개화이념의 영향을 받은 것은 그후로 16년 뒤인 1898년의 운양 김윤식(雲養金允植)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김윤식 선생은 당시 대한학자(大漢學者)였는데, 옥파선생은 그의 계동(桂洞) 자택에서 개화사상을 배우고 사제의 인연을 맺었던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열강의 각축전 속에 국운이 앞날을 예측할 수 없을만큼 누란의 위기에 봉착했던 구한말(舊韓末), 이때 옥파선생은 분연히 일어나 구국운동의 선두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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