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서부보훈지청, 이달의 우리고장 현충시설-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관 선정

▲ ▲ 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관의 모습 (사진출처 : 충남서부보훈지청)

충남서부보훈지청(지청장 박종덕)은 10월 백야 김좌진 장군의 추모제를 기념하며 이달의 우리고장 현충시설에 ‘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관(충남 홍성군 갈산면 백야로 546번길 12)’을 선정하였다.

 

백야 김좌진 장군은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부유한 명문대가였으며 1905년 서울에 올라가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을사조약 체결 이후 국권회복의 신념을 가지고 애국지사들과 교류하며 국운을 바로잡을 것을 결심했다.

 

1911년 군자금 모금 혐의로 일본경찰에 체포·투옥되어 2년 6개월 간 복역했다. 1915년 비밀결사 조직 대한광복회에 가입했고, 1916년에는 노백린(盧伯麟)·신현대(申鉉大) 등과 함께 광복단에서도 활동했다. 1917년 대한광복회의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됐으나, 예심에서 면소판정으로 석방됐다.

 

1917년 만주로 건너가 그 다음 해인 1918년 12월 무오독립선언서에 민족지도자 39명 중의 한 사람으로 서명했다.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는 등 대한민국의 독립운동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1920년 10월 20~23일 청산리(靑山里) 80리계곡에서 유인되어 들어온 일본군을 맞아, 나중소(羅仲昭:참모총장)·박영희(朴英熙:부관)·이범석(李範奭:연성대장) 등과 함께 백운평(白雲坪)·천수평(泉水坪)·마록구(馬鹿溝) 등지에서 일본군과 3회의 격전을 전개, 일본군 3,300명을 일시에 섬멸하였다. 이를 청산리전투라 하여 봉오동전투와 함께 독립전쟁사상 최대의 승리로 꼽는다.

 

1930년 1월 24일 중동철도선 산시역(山市驛) 부근 정미소에서 고려공산청년회 김봉환(金鳳煥)의 감언이설에 빠진 박상실(朴尙實)의 흉탄에 맞아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이러한 장군의 업적과 항일애국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부터 생가, 사당 등의 성역화 사업이 추진되었고 현재의 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한편, 장군의 사당이 있는 홍성군과 장군의 묘역이 소재한 보령시는 매년 10월경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전투 승전 기념일 전후로 추모제를 거행하여 장군의 숭고한 항일 애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참조-네이버 지식백과] 김좌진 [金佐鎭]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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