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11시경 동네 아줌마들 대 여섯 명이 전통시장 간다하니 얼떨결에 따라나서 찾아 본 당진 전통시장은 언제나처럼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어시장 앞에 어묵이며 김밥을 파는 곳에 약속이라도 한 듯 둘러앉았습니다. 시장이 열리는 날이 아니어도 상설운영하고 있다는 이곳은 당진시에서 지원한 당진청년 1호점 입니다. 아무리 봐도 청년이 아닌데 어찌된 일인가 싶어 내걸린 현수막을 살펴보니 당진에 거주하는 시민 18세부터 54세가 지원대상입니다.

 

종이컵에 국물 담아 홀짝홀짝 마셔가면서, 어묵 하나 들고 후후 불어가면서 그 1호점 주인장 얘기를 들어보니, “서류를 내고 면접을 거쳐 이 가게를 운영할 수 있게 됐다. 계약기간이 2년이고, 임대료 없이 홍보도 해주고, 음식 컨설팅도 해줘 우리 같이 어려운 사람에게 살길을 열어준 고마운 혜택을 누리고 있다.”면서 바쁜 손놀림으로 손님을 받으면서도 옆으로 나란히 모두 세 동이 운영되고 있는데 최근에 세 동을 더 늘릴 요량으로 접수를 마쳤다는 소식도 덤으로 얹어줍니다.

 

청년들 일자리도 만들어 주고, 어려운 분들 자립하라고 시에서 지원해 주는 사업에 힘을 얻어 열심히 장사하는 모습들이 참 보기 좋습니다.

 

함께 간 아줌마들, 어묵이랑 김밥으로 배를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 바로 옆에서 갓 구어 낸 호떡 하나씩 일제히 컵에 담아들고 물어뜯어가면서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일은 전통시장이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요즘에는 양파모를 파는 시즌인가 봅니다. 국내산 양파모 1단에 7천원, 적색 종자는 8천원. 가격을 확인하고 걷는데 할머니가 직접 잡아왔다는 박하지가 뿔뿔뿔 기어 나와 공격할 태세에 촌스럽게 ‘옴마야!’ 소리치는데 할머니는 빠진 이가 다 드러나도록 웃습니다.

 

달그락달그락 ‘밤 까드려유’표지판을 보고 다가가니 세상 좋아져 먹기 좋게 껍질 까 주는 기계가 신기합니다. 아이 먹이려고 엄지 검지 닳도록 힘들게 깠는데 이렇게 좋은 방법이 있었습니다.

“밤 까는디 얼마래유?”

“우리집서 밤 사시믄 공짜구유, 가져오시는 밤은 키로에 500원 이유~.”

“흐미!!! 겁나 싸고 좋네유~”

 

그렇게 감탄하면서 잡곡 파는 집을 지나는데 세상에 잡곡이 이토록 다양한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찹쌀, 보리쌀은 기본이고, 검정찰보리쌀, 녹두, 속파란서리태, 그냥서리태, 깐찰밀쌀, 조, 수수, 율무, 혼합곡.... 듣도 보도 못한 쌀이 있는가 하면, 국적도 국산, 호주산, 중국산, 미국산 다양도 합니다. 네 줄로 반듯이 색깔별로 국적별로 주욱 정리해 놨는데 그 모습도 가히 장관입니다.

 

뭔 사람이 이리 많은가 몰려 있는 곳을 빼꼼이 들여다봤더니 통닭 튀겨 파는 집입니다. 7호통닭은 1마리 7천원-2마리 1만3천원, 9호 통닭은 1마리 8천원-2마리1만5천원. 한 마리 사면 왠지 손해일 것 같은지 한 마리 사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9호 통닭은 어찌나 토실토실한지 두 마리 들고 가려면 팔이 아플 것 같습니다. 줄을 서서 튀겨지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에게 “이 집 맛있냐”물으니, “맛없으면 이렇게 기다리겠느냐”굵고 짧게 우문현답 해줍니다.

 

과일이 풍성한 계절, 여름에는 온통 수박이랑 토마토더니 지금은 단감이랑 사과, 감귤이 주를 이룹니다. 반질반질하니 맛있어 보이는 단감이 한망에 5천원. 제주감귤도 한망에 5천원.

 

“거 애기엄마 사진만 찍지 말고 사과 맛을 좀 봐 보유. 맛 보믄 그 향기가 기맥히다니께.”

 

이것저것 먹어 배불러 싫다 손사래 치는데도 기어코 손에 쥐어줘 맛을 보니 진짜 향이 기맥힙니다. 사과가 이곳을 찾은 소비자의 입으로 들어가고 아저씨 말이 진실로 밝혀지는 순간 지갑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저씨 말마따나 기맥힌 사과의 맛과 향에 취해 걷는데 피식 웃음 나는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다이야몬드 세신 5중코팅 후라이팬‘ 대형마트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전통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소박한 광고문구. 다이야면 어떻고 다이아면 어떻습니까. 상자 주욱 뜯어 나름 찬찬히 신경 써서 써 넣었을 문구가 정겨워죽습니다.

그렇게 재밌게 웃으면서 걷는데 잡곡 만큼이나 젓갈 종류도 참 다양하다는 사실을 또 새삼 깨닫습니다. 오징어젓, 밴댕이젓, 가리비젓, 창란젓, 갈치속젓, 어리굴젓, 조개젓, 꼴뚜기젓, 낙지젓, 명란젓....

 

“무가 3개 2천원!”

“대박 큰 건 1개 천오백원!”

흙에 물기도 안 마른 싱싱한 무가 맘에 들어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닭도리탕을 할 요량으로 식구 많다고 큰 닭 두 마리 1만2천원을 주고 샀더니 양이 얼마나 많은지 두 사람이 번갈아가면서 들어야 할 정도입니다.

“대형마트에서 사면 이렇게 양이 많지 않아.”

“그러게.”

 

‘살 것 없다‘고 ’그냥 구경이나 가는 거‘라고 큰소리치지만 어김없이 양손 가득 무겁게 들고 돌아나오는 모습에 풉 웃음이 납니다.

 

집에 돌아와 단내 풀풀 나는 무를 총총총 채 썰어 무치고, 우리 집에서 제일 큰 냄비 꺼내 닭 두 마리 닭도리탕 해서 풍성한 저녁식사를 준비합니다. 양이 얼마나 많은지 다섯 식구가 먹고도 남아 다음날 동네사람 여럿 불러 함께 나눠 먹었는데도 또 남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봅니다.

“요것을 요렇게 양손으로 잡고 왔다 갔다 허믄 때가 싹 벗겨져유~.”두 다리 없다고 해서 거저 받는 도움 사양하고, 바닥에 앉아서 때수건, 편지봉투, 이쑤시개 실은 수레 끌며 당당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한 장애인 아저씨의 감동적인 모습도 만나보았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이 굳이 필요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사용할 이쑤시개, 때수건이라도 장바구니에 담으며 그분을 응원합니다. 가슴 따뜻함과 뭉클함이 늦은밤까지 오래도록 남습니다.

 

사람의 정이 넘쳐나고, 볼거리도, 먹거리도 풍성한 전통시장이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요즘에는 주차시설도 좋아져 불편함이 덜합니다. 대형마트 갇힌 실내보다 가족과 함께 전통시장을 찾아 탁 트인 하늘도 한 번씩 쳐다보고, 추억의 번데기도 하나씩 콕콕 찍어 먹어가면서 구경도 하고, 가을햇살 맞으면서 비타민D도 섭취하고, 꼭 우리 어메 같고 꼭 우리 아부지 같은 상인들도 만나보면서 사람 살아가는 모습도 고스란히 느껴보세요. 대형마트가 줄 수 없는 따뜻함이 그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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