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서산의 석주명’ 고춘선 씨, 나비 181 종 앵글에 담아 포토북 발간

“2005년부터 제가 산에 미쳐서 틈만 나면 찾아다녔어요. 산행하다가 만나는 풍경들, 나무, 풀, 야생화를 만나면 눈 맞추고 서서는 그 이름들을 불러주고 앵글에 담으면서 자연과 더욱 친해졌지요. 그러던 어느 날 꽃을 찾아온 나비의 나풀거림에 반하게 됐어요. 그 뒤로 나비를 만나기 위해 전국 곳곳을 누볐습니다. 그 시간들이 참 행복하고 힐링의 순간들이었답니다.”

 

평생을 산과 들에서 보내며 나비를 연구해 한국 나비의 분류 체계를 확립하고 각종 나비의 분포 범위를 알렸던 나비박사 석주명이 생각나게 하는 한 사람, 고춘선 씨(충남 서산)와 21일 오후 마주 앉았다.

 

전국을 누비며 남한의 나비 181종을 만나 앵글에 담아낸 그녀의 눈빛이 자연스럽게 시작된 ‘나비 이야기’에 예사롭지 않게 반짝인다.

 

그녀는 2019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의미 있는 포토북 한권을 발행했다. 수년간 직접 찍은 나비 사진을 종별로 구분 편집하고는 정감 있는 글까지 더했다.

 

“사실 이 책은 정식 출판한 것 아니고 수정하고 또 더하기도 하는 과정에 있는 미완성 작품입니다. 이렇게 급하게 포토북이라도 먼저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요즘 자꾸 기억이 깜빡거린다는 거예요. 예쁜 눈 맞춤으로 만났던 나비 친구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 생생했던 현장의 순간들을 잊어버리고 말까봐 빨리 기록하고 싶었어요. 현재 우리 남한에 서식하는 나비가 총198종으로 원색도감에 수록이 돼 있는데 제가 그 중에 181종의 나비를 만났습니다. 도감에 수록된 나비 중 이미 멸종이 된 나비들도 여러 종이 되는 것을 본다면 남한에서 만날 수 있는 나비 중 내가 만나지 못한 나비는 불과 7-8종에 불과한 셈이지요. 올해는 만나지 못한 나머지 나비들을 찾아 여행을 떠날 계획입니다. 그리고 모두 만나고 나면 그때그때 마다 느꼈던 감정들을 함께 실어 포토북을 완성하고 싶습니다.”

 

포토북을 펼쳐보니 미완성 작품이라는 그녀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마추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의 정교하고도 생생한 사진들을 종류별로 일목요연하게도 정리했다. 구입한다는 것도,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소장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도감과는 다르게 부담 없이 누구나 언제든 펼쳐보고 싶은 정감어린 가족 앨범 같다.

 

“작년 8월이었어요. 가야산에서 시골처녀나비가 알에서 부화하는 장면을 우연히 지켜보게 되었어요. 가슴 뭉클한 감동에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알에서 생명이 있음을 과시하면서 꿈틀거리는 그 신비로운 모습이 앵글에 들어왔고 저는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대면서 대박을 외쳤답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그녀가 새로운 나비를 만났을 때의 벅찬 감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초접사 촬영으로, 그것도 셔터 누르는 손 떨림마저도 방해가 되니까 삼각대에 고정시켜 놓고 리모컨으로 눌러 촬영해야 할 만큼, 먼지인지 알인지 구분하기조차 힘들 만큼 작은 세상에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입니다. 관심을 가지면 작은 세상이 보입니다.”

 

먼지인지 알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을 만큼의 작은 세상이 관심을 가지니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그녀의 말에 그 세상이 궁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이 험한 세상을 헤치고 살아간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녹록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저도 한때 힘들고 지쳐있었을 때 내게 위로가 되어주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준 나비라는 친구가 있었기에 제 50대는 행복했습니다. 보고 싶은 나비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고, 나비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반겨줄까 하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대기도 했어요. 나비를 만나고,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오면 도감을 펼쳐놓고 그 나비가 어떤 종류의 식물을 먹이로 삼는지, 어떤 환경을 좋아하는지 공부했어요. 학창시절에 이렇게 공부했더라면 서울대는 넉넉히 갔겠다 싶더라구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관심이 있으니까 공부하게 되더라구요. 우리 학생들도 천편일률적인 교육 대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열정을 갖고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나라를 꿈꿔보기도 했답니다.”

 

공부하고 연구해 나비의 이름을 알게 되면 그들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게 됐고, 그러다보면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게 됐다고.

 

“서산 동네에서 제이줄나비를 애벌레로 발견했을 때 무작정 집으로 데리고 와 도감에서 찾아보고, 자연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줬죠. 그리고는 생각날 때 마다 한 번씩 들여다보며 관찰했어요. 번데기가 되고 드디어 성충으로 탈바꿈한 것을 데려왔던 곳에 날려보낸 일이 있습니다. 너무도 고맙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우화 과정은 꼭 새벽이나 한밤중에 하더라구요. 그래서 꼬박 날밤을 센 적도 여러 날 있습니다.”

 

그녀는 말 그대로 나비에 미쳤다. 우화과정을 지켜보느라 여러 날 밤을 셌다니. 호기심 참 많은 순수한 초등학생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녀는 그 모든 과정을 세심히 관찰하고 하나하나 앵글에 담아 기록했다.

 

“2014년 9월 미접종 뾰족부전나비가 거제도에 출현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무작정 떠났던 날도 기억납니다. 어느 때는 해산령에서 비수구미까지 혼자 오르며 탐사에 나선 날도 있지요. 포충망을 들고 한 줄의 논문을 쓰기 위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 몽고, 만주, 대만까지 찾아다니면서 3만 마리의 나비를 만졌다는 나비박사 석주명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읽혀지더라구요.“

 

나비박사 석주명도 나비에 미쳤다. 무서운 집념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일을 해냈다.

올 여름에는 못다 만난 나비를 만나려 백두산과 연변을 다녀올 계획이라고 한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나이 50을 넘어선 지 오래요, 곧 6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비에 대한 관심과 사랑, 넘쳐나는 에너지와 열정에 주눅이 들 정도다. 먼지와도 같이 작은 알을 보고도 나비의 종류를 알아낸다. 그녀는 나비 덕후다. 그녀에게 ‘서산의 석주명’이라고 이름 붙여도 손색이 없다.

 

힘겨운 어느 날 자연을 만났고, 풍경을 만났고, 나무와 꽃을 만났고, 꽃을 찾아 날아든 나비를 만났고, 먼지와도 같이 작은 알을 만나고, 그렇게 아주 작은 세상을 만난 그녀가 또 어떤 세상을 만나 우리에게 감동을 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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