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을 바라보는 나이. 어쩌면 이제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고 정리해야 하는 나이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작가이자 번역가인 김 욱 작가는 아흔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김 욱 작가는 소설가를 꿈꾸던 청년 시절, 6·25전쟁으로 북한 의용군에 강제로 끌려가 한순간 모든 꿈이 무너졌습니다.

 

의용군에서 탈출한 후 생업을 위해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평생 모은 재산은 보증으로 날려 버리고 노숙자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어 결국 남의 집 묘지를 돌보는 묘막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이미 그의 나이 일흔이었습니다.

 

하지만 김 욱 작가는 '글을 쓸 수 있다'는 확신으로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작가 사후 5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했지만 아직 국내에 출판되지 않은 주옥같은 작품들의 번역에 매달렸습니다.

 

그동안 김 욱 작가는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낼 정도로 유명한 번역 작가가 되었고, 고령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현역으로 살면서 200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습니다.

 

아흔의 나이로 현역이라는 것도 놀랍지만 일흔의 나이에 신인이었다는 것은 더욱더 놀랍습니다. 나이 일흔에 무일푼이 되었다는 처지라면 누구라도 좌절하고 포기할 만 한 상황이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참조 ‘따뜻한하루’]

 

“나이는 못 속이나봅니다. 사실 요즘 무릎이 아파서 걷는 것도 힘들어요. 그렇게 건강에 자신이 있었는데 자꾸 아픈 곳이 하나씩 늘어가니까 우울해지더라구요. 그럴수록 봉사도 더 열심히 하고 운동도 더 열심히 했더니 몸은 성치 않지만 활기가 넘쳐요. 늙었으니까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포기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살면서 우울감을 극복한 내가 자랑스러워요.”

 

우리 아파트 헬스장에 매일 나와 운동하는 70세 어르신이 계십니다. 남편을 따라 당진에 귀농한 김순례 씨는 새벽에는 농장에 나가 김을 매고, 어쩌면 봉사를 받아야 할 나이임에도 낮에는 성당에 나가 봉사를 하는가 하면, 오후에는 수영장을 찾아 건강도 꾸준히 관리하면서 내년 장애인체육대회 출전 준비도 미리 미리 합니다. 그리고 밤에는 헬스장에 나와 젊은 사람도 힘들어하는 플랭크도 거뜬히 해내고 근력운동에 매진합니다. 그렇게 우울감을 극복하고 활기를 찾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이 50도 안되어 무릎이 삐걱거린다는 이유로 이래저래 게으름을 피웠던 것을 반성하게 됩니다.

 

저 아흔 작가의 열정과, 우리동네 일흔 어르신의 열정은 끄떡하면 포기하고 낙심하는 요즘 젊은 세대가 본 받아야 할 표본입니다.



저작권자 © 충남인터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