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하우스에 씨를 뿌린 것은 아닌데 바람타고 퍼졌는지 냉이가 많지는 않지만 된장국 한번은 끓여 먹을 만큼은 있으니까 캐다 잡수세요들.”

 

동네서 인심 좋기로 소문난 김상범 선생님의 말씀에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동네 아낙들 서너 명이 바구니 하나씩 옆구리에 끼고 밭으로 출동합니다.

 

“웜마! 향기가 겁나 좋아불구마요이!”

전라도 목포에서 올라 온 아낙이 하나 캐서 냉큼 코에 대보더니 봄 향기가 후루룩 올라오는 모양입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을 맞은 지 도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연일 계속되는 한파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까지 겹쳐 봄이 오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푸릇푸릇하다 못해 어떤 냉이는 하얀 꽃까지 피워 참 무던했구나 깨닫게 해줍니다.

 

냉이 캐어 돌아오는 길, 초등학교 때 배웠던 노랫말을 떠올리며 흥얼거려 봅니다.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만 중요한 과목이 아님을 입증해 줍니다. 음악시간에 충실히 배웠던 것이 고마워지는 순간입니다.

 

봄이 오면 파릇파릇/소리도 없이/버들가지 가지마다/새싹이 트고/봄이 오면 언니하고/바구니 끼고/나물 캐러 가던 일이/생각 납니다/봄이 오면 울긋불긋/소리도 없이/산과 들엔 가지가지/꽃들이 피고/봄이 오면 오빠 하고/냇가에 나가/버들피리 불던 일이/생각 납니다/

입과 코가 마스크로 온통 뒤덮여 호흡이 가쁘면서도 2절까지 합창으로 불러대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합니다. 함께 간 아낙들은 모조리 된장국을 끓여 밥상에 봄을 올려야겠다며 흩어져 돌아갑니다.

 

다시마랑 멸치, 무를 넣어 끓여 낸 육수에 마침 준비 돼 있던 어묵들을 꺼내 풍덩 집어넣고, 마늘 콩콩 찧고, 양파랑 파 숭숭 썰어 잘 씻어 준비한 냉이를 풍덩 집어넣어 후루룩 한번 끓여주니 그 어떤 유명한 셰프가 이 맛을 낼 수 있을까 싶습니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냉이 향 물씬 풍기는 어묵탕을 대하며 주체할 수 없는 기분 좋은 웃음을 머금습니다. 그렇게 우리 집 식탁에서 봄이 시작됐습니다. 어릴 적 봄은 언제나 커다란 초록 사립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아버지는 ‘立春大吉’ 입춘축을 써 붙여 봄이 왔노라 선포하시고, 필체가 좋으신 덕에 여러 장 넉넉하게 써서 동네사람에게 봄을 나눴습니다.

 

따뜻한 봄이 오면, 어느 시인의 솔직한 마음 고스란히 담긴 시구가 생각이 나서 풉! 하고 웃습니다.

‘봄이 온다고 별일 있겠습니까/길거리에서 오줌 마려울 때/항상 굳게 잠긴 정류장 앞 건물 화장실만이라도 열려/시원하게 일 볼 수 있는/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봄이 오면, 음식물쓰레기 담당 우리집 장남은 그 자리에서 손 씻을 물 콸콸 나와 좋겠답니다.

따뜻한 봄이 오면, 우리집 늦둥이 녀석은 바람 빠진 채 베란다에 방치된 불쌍한 자전거를 구제할 수 있을테니 좋답니다.

따뜻한 봄이 오면, 전 세계인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녀석도 사족을 못 쓴다니 천만 다행입니다. 10일 현재 누적 사망 908명·확진 4만171명, 위중한 환자 6천500명, 이런 뉴스 더 이상 듣고 볼 일 없겠습니다. 따뜻한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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