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숨죽은 듯이 조용하던 동네 놀이터가 오래간만에 시끌벅적 야단법석입니다. 겨우내 그토록 기다려도 오지 않던 눈이 연일 소복이 내렸기 때문입니다.

 

“친구야, 더 크게 만들려면 열심히 굴리자.” 차가워진 볼이 홍당무처럼 벌게진 아이들 서너 명이 벌써 놀이터에 쌓인 눈을 점령한 지 오래입니다. 제법 단단하게 굴려 만든 눈뭉치를 들고 이번에는 발자국 하나 없는 화단으로 이동해 신명나는 작업을 이어갑니다.

 

“얘들아,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이번에 내리는 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대. 그러니까 우리 진짜 신나게 놀자.”

이 작업에 동참한 우리집 녀석은 점심도 건너뛰고서도 집에 들어갈 생각이라고는 1도 없습니다.

 

“우와, 여기 눈 많다!” 장갑도 신발도 이미 젖은 지 오래지만 놀이에 흠뻑 빠진 아이들에게는 문제의 축에도 끼지 못합니다.

 

“아줌마, 저 사진 찍어주세요. 대구로 이사 간 친구에게 보내주고 싶어요. 거기는 눈이 안 왔대요. 친구가 부러워죽겠대요. 당진으로 다시 이사 오고 싶대요.” 넉살 좋은 어린 친구가 부탁을 하고는 눈을 흩뿌리기도 하고 벌러덩 눕기도 하면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포즈를 취해댑니다. 찰칵찰칵 셔터를 누르다 보니 어린 시절이 오버랩 됩니다.

 

“얘들아, 마당 눈 쓸어라.”

이른 아침 아버지의 호령에 방문을 열어제끼면 넓디넓은 앞마당에 시도 때도 없이 내려 쌓인 눈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이리도 반갑고도 소중한 눈이 되었습니다.

 

자동차 지붕에도 나무 위에도 하얀 눈 소복이 쌓이고,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는 엉금엉금 몸을 사리며 지나갑니다. 주인 따라 나온 어느 집 댕댕이는 오늘따라 유난히도 높이 뛰어오릅니다. 겨울에는 눈이 와야 그해 농사도 순조로웠다는 옛 어른들의 이야기가 생각나 다행스럽고, 더이상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소중한 풍경들을 보며 감격하여 어느새 시인이 됩니다.

 

소복이도 내린 눈에

아이들은 팔딱팔딱

자동차는 엉금엉금

할머니도 엉금엉금

 

나무들도 변장했네

지붕들도 변장했네

들뜬 엄마 변장하네

 

소복이도 내린 눈에

아이들도 댕댕이도

하하호호 즐거워라

 

눈 내리는 오후는 팔팔 끓여낸 물에 믹스커피 한 봉지 탈탈 털어 넣고 홀짝이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낭만 가득 행복한 시간이 됩니다. 눈 내리는 오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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