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정희 대통령 업적 기리며 건립된 기념탑

▲ ‘삽교천 유역 농업개발 기념탑’앞면

국민 관광지로 지정됨에 따라 주변의 덕산국립공원·덕산온천·도고온천 등과 함께 충청남도의 관광자원으로 각광받고 있는 당진 삽교호에 가면 한 켠으로 푸른 잔디밭이 펼쳐지고 호수를 배경으로 우뚝 솟은 ‘삽교천 유역 농업개발 기념탑’을 만나볼 수 있다.

 

16일 찾아 본 이곳에는 산책 중 뜻밖에 만나는 이 탑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읽어보고,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머릿돌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삽교천 유역 농업종합개발사업은 故 박정희 대통령 때 1970년부터 계획하여 1977년 4월 13일에 착공, 1979년 10월26일 에 준공됐다. 故 박정희 대통령이 ‘삽교호’로 이름 짓고 준공식에도 다녀갔으나 불행하게도 이날 저녁 서거했다. 그 뒤 최규하 대통령이 이 거대한 업적을 기리며, 故 박정희 대통령을 추념하는 뜻으로 휘호를 하사하고 여기에 기념탑을 건립했다’고 1980년5월1일 기록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 방문객은 “그동안 여러 번 삽교호에 다녀갔는데도 오늘 처음 이 탑을 발견했다”면서 “여기에 기록된 내용을 읽어보면서 방조제 사업이 얼마나 대단한 사업이었는지,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이 담겼는지 알 수 있었다. 무척 의미 있는 탑이라는 사실을 오늘에야 보고서 알게 됐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 기념탑 설명문을 찬찬히 살펴보니 방금 전에 인터뷰한 방문객의 말대로 방조제 사업이 얼마나 대단한 사업이었는지 알 수 있다.

 

‘장하다 여기 서해의 거센 파도를 막아 방조제 안에 크넓은 삽교호를 이루었다. 본시 삽교천의 우리 속명은 삽다리였고 홍성 오서산에서 발원한 금마천 하류요 같은 산에서 나온 다른 냇물 여양천이 예산에 이르러 무한천이 되어 합류하고 다시 동쪽으로 천안에서 오는 곡교천과 세 물이 모여 서해로 들어가는 것이다.

일찍 이 지역은 넓은 평야를 가지고도 관개에 필요한 수원을 정리하지 못했고 조수로 농경지들이 염해를 입어온 위에 가뭄과 홍수의 악순환을 면하지 못했다. 그랬던 것이 삽교천 바다 어귀를 막아 저수량 8,400만 톤의 담수호를 이루어 당진, 아산, 예산, 홍성 네 고을에 걸쳐 전천후 농토개발에 큰 성과를 거두었고 길이 3,360미터 되는 튼튼한 방조제로 고을의 육로교통조차 백리나 단축시켰다.

겨레의 의지와 기술과 땀을 총집결하여 지도를 고쳐 그리는 창조와 전진을 보라. 더욱이 이 사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서남해안 대간척사업의 발판이 되었기에 여기 섰으면 조국의 숨결 귀에 들리고 바라볼수록 벅찬 감격을 누를 길 없다. 다만 여기서 잊지 못하는 슬픈 기억은 지난해 10월 26일 삽교호 준공식에 故 박정희 대통령이 즐거이 참석하고 귀경한 그날 밤 세상을 떠난 그것이다. 대통령으로서 불행한 최후를 마쳤지마는 농업개발사업을 정책적으로 추진해왔고 특히 이곳에 열의를 기울였던 분이라 그의 공적은 길이 빛날 것이다.v1980년 10월 26일 노산 이은상 글, 여초 김응현 씀’

 

머릿글과 탑에 새겨진 설명문을 읽어보고 삽교호의 역사와 성과를 한눈에 알아보고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삽교호는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단순히 힐링을 주는 곳을 넘어서 염해 피해 등 만성적인 자연재해를 벗어나게 해 준, 참 고마운 존재였다.

 

한편, 삽교호는 1979년 10월 길이 3,360m의 방조제가 건설됨으로써 생긴 담수호로 저수량이 8,400만t이고 농·공·생활 용수 공급 능력을 1일당 4만 8,000t, 홍수 때 초당 5,300t을 방류할 수 있다.



▲ ‘삽교천 유역 농업개발 기념탑'이 세워진 공원에서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고 있는 모습


▲ ‘삽교천 유역 농업개발 기념탑’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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