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을 찾아서

스산한 갈바람이 불어대는 8일 오후 서산 용현리를 향해 달리는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어찌나 정겹고 아름답던지 다람쥐가 도토리 주워 담듯 마음속에 가을을 차곡차곡 주워 담습니다.

언제 보아도 황홀한 비경에 감탄하게 되는 고풍저수지에 홀로 보트 타고 누워 유유자적 누비는 낭만쟁이 아저씨도 있고, 잡히면 좋고 안 잡혀도 좋을 양으로 한 부부가 욕심 없이 낚싯대 드리웠습니다.

저수지 지나 용현계곡 입구에 들어서니 일제히 노랗고도 붉게 물든 단풍이 황홀하게 맞아줍니다. 돌아 나오던 한 차량이 주차장에 멈춰 서는가 싶더니 은행잎 물든 점퍼차림의 남성이 왔던 길 거슬러 찬찬히 걷습니다. 어여쁜 길 걸으면서 마음껏 가을정취에 취해보고 싶은, 차를 타고 냉큼 지나쳐 가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그런 마음이지 싶습니다.

마애여래삼존상 입구에 세워진 애향시탑 싯구에도 가을정취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가야산 먹고개 넘어 아라메길따라 천년세월 문다래미 산허리에 풍월읊던 강당계곡. 아슴히 떠오르는 향빛 산소리 여기저기 묻혀 낙엽이 하늘 땅을 흩날리고 있네. 청산록수 방선암 찾던 옛 묵객 다 어디 갔나 중원 멀리 고운님 몸소 거닐던 꿈길만 아른거리네.]

시를 읊으며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정겨운 계곡이 강당계곡이었음을 깨닫고, 다리 건너 마애여래삼존상을 찾아 오르는 관광객들을 따라 올라봅니다.

“이 마애여래삼존상이 아빠 학교 다닐 때 사회책에 나왔었거든. 너도 학교에서 곧 배우게 될거야. 잘 봐둬.” 엄마 아빠 손 꼭 잡고 직접 국보를 찾아 본 어린이는 사회책에서 만나면 몇배로 반갑겠네요.

누군가가 쌓아올린 소박한 돌탑들에 어떤 소원 담겼을까 묵상하며 계단 오르며 바라본 푸른 하늘에 떨어지는 잎새들이 바람 타고 비행을 합니다.

먼저 만나게 되는 관리사무소 마루 바닥에 비치된 방문록을 살펴보니 서울, 경기, 인천, 평택, 당진 등 참 다양한 지역에서 이곳을 다녀갔습니다.

이제 막 지려는 해를 받아 더욱 찬란한 국보 제84호 삼존불 앞에 관광객들 너나 할 것 없이 셔터를 눌러대니 서민적인 불상의 대표답게 온화하면서도 위엄 갖춰 포즈를 취해줍니다.

이곳 서산시 운산면은 중국의 불교문화가 태안반도를 거쳐 백제의 수도 부여로 가던 길목이었고, 6세기 당시 불교문화가 크게 융성하던 곳이었음을 이 삼존상이 증거하고 있다는 안내 글을 찾은 이마다 빠짐없이 살펴봅니다.

그렇게 백제의 미소 흉내 내어 머금고 내려오는 길도 아라메길입니다.

[가면서 정들고 오면서 추억이 되는 아라메길 세월이 닳지 않은 마애삼존불의 얼굴에 너의 미소 활짝 피었다 보원사 오층탑에 앉았던 봉황 개심사 아미타여래랑 해미읍성 저 멀리 도비산 너머 바다를 한숨에 다녀왔는데 너는 지금 아라메길 어디쯤 가고 있니] 이생진 시인이 찬미했던 그 ‘아라메길’을 찬찬히 돌아 내려와 ‘방선암’을 만납니다.

조선시대 해미현 내에 거주하던 당대 최고의 선비들이 화창한 봄날에 학을 연상케 하는 주변의 노송과 명경수가 유유히 흐르던 천혜의 비경인 이곳 마당바위 위에서 뜻있는 문인들이 모여 시회를 열고 시를 지었다는 ‘방선암’을 기리기 위해 바위에 새겨 넣어 기념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참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해맑고 편안한 웃음을 머금은 삼존불의 그 미소, 그 웃음 우리도 웃을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란다는 소원을 빌었답니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제법 쌀쌀한 바람에 옷깃을 여며가면서도 어여쁜 가을을 만나고, 자랑스러운 국보도 만나면서 의미 있는 주말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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