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호수공원을 찾아서

가을의 끝자락 그토록 화려했던 단풍이 제법 차가워진 바람 맞고 자꾸만 지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누군가는 서둘러 가을단풍 기차여행을 떠나는가 하면, 2박3일 작정하고 단풍이 아름답다 소문난 장소로 캠핑을 떠나는 가족도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물든다는 전남 완도 청산도를 가느라 새벽길 나선 이도 있습니다.

주말을 맞은 14일 오후 찾아본 서산 호수공원 단풍도 제법 일품입니다. 완도에 단풍구경 간다고 새벽이슬 맞고 나선 지인들 부럽지 않습니다. 가을여행 나선 차량들로 도로마다 정체되었을 순간에도, 이곳을 부모님과 함께 찾은 싱싱카 탄 어린이, 1초의 멈춤조차 없이 뻥뻥 뚫려 시원하게 내달립니다.

아직 붉고도 풍성한 잎 새 자랑하는 단풍나무 숲 아래서는 돌리고, 흔들고, 올리고, 내리기도 하며 체력단련에 나선 시민들의 옷도 마음도 붉게 물들었습니다.

경로당 대신, 이곳을 찾아 삼삼오오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시는 어르신들은 가을 햇살 흠뻑 맞으며 비타민D를 충분히 흡수하셨는지 갈색으로 그을린 주름진 이마가 20대 청년 못지않게 섹시합니다.

공원 둘레길을 걷는 동안 서산미술협회에서 올해 40주년을 맞은 기념으로 전국 작가들을 초대하여 전시하고 있어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발걸음을 멈춥니다. 미술관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고귀한 작품들을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세상에나! 저 예쁜 빛깔 좀 보세요!”

단풍의 절경은 내장산도 아니고, 설악산도 아니고, 내가 사는 서산 곳곳이 단연 최고라 여기는 지인이 소박한 감성 담은 탄성을 연신 자아냅니다. 할머니라고 부르는 손자들도 있는 이분은 요 모양 저 모양으로 포즈를 취하며 마음만큼은 볼 발그레진 소녀가 되었습니다.

“잘 앉아서 여기를 예쁘게 봐주는 사람한테는 이 과자를 줄 거야.”

호수 한가운데 우뚝 솟은 팔각정에 나들이 나온 젊은 엄마들이 어여쁜 가을 호수를 배경으로 천방지축 막무가내인 아이들 사진 속에 담으려고 귀여운 협박을 하니까 통합니다. 금 새 모조리 얌전하게 앉아 한 엄마가 높이 치켜든 과자를 흠모하며 쳐다볼 때 또 다른 엄마는 그 틈을 이용해 냉큼 추억을 담습니다.

“내 눈 앞에서 저렇게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는데 저 멋진 광경이 사진 속에 담겨지지가 않아!”

자꾸만 지고, 자꾸만 멀어져 가는 가을을 사진으로나마 남기고 싶은데 제대로 담기지 않으니까 속상했다가도 그저 이 아름다운 풍경 한조각 내 마음속에 품은 것으로도 족하다 여기니 그것마저도 욕심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욕심도 목적도 없이 그저 호수를 끼고 찬찬히 돌아보노라면 크게 화려하지 않아도 감탄할 줄 알며, 평범한 일상에서, 내가 사는 동네 공원에서 행복도, 늦가을의 정취도 만끽할 줄 아는, 참 소박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먼 길 가느라 새벽잠 설치지 않아도 되고, 정체된 도로 가운데서 발 동동 구를 필요도 없고, 사람들 북적여 코로나 전염될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 동네 작은 숲, 혹은 가까운 공원에서 기분 좋은 가을 산책을 즐기는 일, 소위 요즘 말하는 이 시국에는 더더욱 지혜로운 가을나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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