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 무서운 마을




11월25일 오후6시20분 서산시청 시장실문은 굳게 닫혀있다. 퇴근시간이 훨씬 넘었지만 비서실에 자리 잡은 비서실장과 여직원은 시계를 힐끔힐끔 쳐다보기 바쁘다.
「시장님과 대화중인 노인네가 저번에도 왔던 분이잖아?」
비서실장의 소곤대는 말에 여직원이 맞장구를 친다.
「시장님이 상당히 긴장하고 맞이하는 것으로 봐서 대단한 노인 같아요.
오늘 시장님 안색이 완전히 굳어 있다니까요.」
비서실에서 소곤대는 사이에도 시장실문은 굳게 닫힌 채 긴 침묵이 흐르고 있다. 비서실 분위기와는 반대로 시장실에서는 엄청난 중압감이 느껴진다.

김정철 시장은 쌀쌀한 가을 날씨인데도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다. 마치 고양이 앞에 생쥐처럼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먹잇감을 노리는 고양이 같은 존재는 금이빨을 드러내며 히죽거린다.
「내가 너무 무서워서 오줌이라도 싸시겠네?
김 시장! 내가 그렇게 무섭나보지?」
김정철 시장 앞에서 절대 공포를 안겨주고 있는 노인은 최현범이다. 벌써 6년 전이다. 그는 정태섭 회장을 통해 김정철 시장을 소개 받게 되어 현재까지 가끔 만나는 사이가 됐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의 만남이 아니라 악마와의 대연이었다. 최현범은 김정철 시장을 발아래 놓인 지렁이 쳐다보듯 하며 말을 잇는다.
「당신에게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털어 놓지.
15년 전이었어. 난 가족들을 데리고 주말을 맞아 서산으로 여행을 왔지. 그날따라 차가 밀려 가을비가 내리는 밤길을 운전하고 있었어. 가야산 용현계곡으로 향하는 저수지를 돌 아 급커브 길로 들어서는 순간 중앙선을 넘어 달려오는 차를 발견하고 피하려다 저수지로 떨어져 버린 거야.
간신히 나만 살아남았지만 중앙선을 넘은 차는 멀리 달아나고 없었어. 경찰에 신고하고 한참 기다려 봐도 전혀 행방을 알 수 없는 거야. 원한에 불타오르던 나는 운영하던 한의 원을 접고 이곳에 눌러앉았어. 사고 장소를 지나다니는 승용차들을 하나하나 체크하기 시 작했지. 다행히 나는 사고순간 달려오던 승용차의 헤드라이트 모양을 기억하고 있었어.
그 모양은 국산차에는 없는 특별한 곡선이 포함되어 있었어.
그 후 3년 동안을 헤매다가 결국 그 승용차 소유지를 찾아낸 거야.
바로 가야산 자락에 고급 저택을 짓고 살고 있는 정태섭이었지.
난 가족들의 무덤 앞에서 처절하게 복수하기로 다짐했지. 그냥 죽이는 건 의미가 없었어. 우리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신경독성물질을 사용하기로 결심했지.」

최현범이 조곤조곤 말을 잇는 사이에도 김 시장은 눈빛을 마주치지 못하고 미세한 흔들림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그런 모양의 김 시장을 힐끗 쳐다보더니 최현범은 다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난 서서히 계획을 실행에 옮겼어.
일단 정태섭 저택이 잘 보이는 땅을 사서 아담한 전원주택을 지었지. 그 집은 나의 비밀 실험실이었어. 주위에는 집한 채 없어서 비밀 실험을 숨기기엔 안성맞춤이었지. 3년 동안 을 실험용 생쥐를 사다 나르며 신경독성물질의 효과를 실험한 거지.
드디어 난 주사기를 사용하여 혈관으로 침투하는 그 악마의 약을 완성하게 된 거야. 실험 을 진행하던 3년 동안 정태섭과 약간의 친분을 만들 수 있었어. 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는 그 집 정원을 손질해주는 일을 맡았어. 결국 원수의 집에 침투하게 된 거지.
그들에게 원수를 갚을 날만 기다리던 나는 정태섭 부부만 있는 주말에 정원을 손질해주고 있었어.
기회를 잡은 나는 전기 충격기로 두 사람을 기절시키고 악마의 독성물질을 주입 하게 된 거야. 그들의 뇌를 내가 장악했을 때 얼마나 큰 쾌감을 맛보았는지 몰라.」

최현범의 말에 따르면 정태섭 부부 세뇌에 성공한 후 그들을 시켜서 저택 개조공사를 비밀리에 하게 했다는 것이다. 호화롭게 비밀의 공간을 만들었으며 최현범의 전원주택까지 이어지는 지하통로까지 만들게 했다. 정태섭이 규모가 큰 건설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최현범은 마음대로 정태섭의 저택을 드나들게 됐다. 이미 세뇌 당한 정태섭 부부는 전혀 저항 할 수 없는 심리상태였다. 절대자 앞에서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현범의 복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세뇌된 정태섭을 통해 차량사고 당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낸다.

15년 전 바로 그날 밤 주말을 맞아 정태섭 회장은 자신의 저택으로 김정철 부부를 초청했다. 그 당시 정태섭은 잘 나가던 국회의원이었고 김정철은 막후에서 그를 후원하던 도의원이었다.
정태섭이 국회의원에 당선됐던 것도 김정철의 자금력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 당시 김정철은 도의원에 불과했지만 선친에게 물려받은 어마어마한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공장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올라가면서 김정철의 땅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단돈 1만원도 넘지 않던 땅값이 오르고 또 올라 200만원을 호가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어떤 사람은 김정철 땅값이 1천 억대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8천 억대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땅을 많이 물려준 선친 덕분에 김정철은 이 고장 최고의 부자 반열에 올라있었다.
사실 김정철이 정치적인 감각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당시 국회의원이던 정태섭은 그의 자금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를 도의원후보로 공천했고 당선까지 시켜서 측근으로 만든 것이다.
사고가 나던 날 밤에도 친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정태섭은 김정철 부부를 자신의 저택으로 불러 들였다. 이곳 가야산 자락의 저택도 알고 보면 김정철이 2천여 평을 뇌물로 제공한 것이었다. 그만큼 두 사람의 관계는 아주 밀접했다. 처음에는 부부동반의 점잖은 식사자리부터 시작했지만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어 만취상태까지 이어졌다. 술이 술을 부르고 주말저녁이라는 여유로움이 사람의 마음을 놓게 만들었다.
평소부터 좀 즉흥적인 성격이던 김정철이 불쑥 말을 꺼냈다.
「형님, 오늘같이 좋은날 2차는 꼭 제가 모시겠습니다.
이 아우만 믿고 저를 따라오세요. 아주 죽이는 데를 알고 있습니다.」
「아우, 운전기사도 돌려보냈는데 어디를 간다고 그래?」
「형님, 여기서 가까운 곳입니다. 제가 자신 있다니까요.
아니 누가 우리를 잡겠습니까? 우리세상 아닙니까?」

이윽고 김정철이 운전하는 차에 모두 함께 타고 용현계곡 저수지를 돌아가는 길로 향했다. 급커브 길을 진입하려는데 김정철의 감각이 무뎌진 탓에 차가 중앙선을 넘어서는 순간 앞에서 달려오는 승용차를 발견한다. 김정철이 본능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앞차는 저수지로 떨어져버렸다. 도로 한가운데 멈춰있는 승용차 외에는 전혀 인적을 느낄 수 없다. 사태를 파악한 정태섭이 당황하고 있는 김정철의 어깨를 힘주어 잡는다.
「이젠 틀렸어. 빨리 출발해」

시장실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은 지 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일방적으로 최현범이 말하고 김정철은 경직된 몸을 간신히 유지한 채 듣고만 있다.
「그래서 너희들은 내 가족을 수장시킨 공범이야.
난 너희들을 그냥 죽이지는 않아.
더 처절하게 만들 거야. 또 다른 비밀을 말해줄게.
여기 오는 길에 방송을 들었는데 정태섭 부부 살인 용의자가 외아들이라더군.
그 외아들은 자살했다지 아마?」
최현범의 입에서는 알 수 없는 웃음이 흘러나온다.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악마의 웃음소리처럼 느껴진다.
「사실은 말이야. 내가 한 달 전 그 아들을 정태섭 저택으로 불러 비밀의 방에서 신경 독성 물질을 주입했지. 내 딸을 죽인 놈들에게 비슷한 대우를 해준 거지.
아들의 뇌를 지배하게 된 나는 정태섭에게 마지막 복수를 해준 거지. 그 아들에게 명령했 어. 너희 부모를 잔인하게 칼로 찔러 죽이라고.
그런데 말이야. 그 아들 녀석이 자살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어. 아마도 심적 고통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던 거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정철은 이제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이 무시무시한 절대자 앞에서 소리 내어 울 용기도 없다. 지금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최현범은 인간이 아니다. 지옥에서 올라온 절대적 존재인 악마다. 정태섭과 같이 참혹한 죽음을 맞지 않으려면 무조건 순종해야한다. 그것만이 살 길이다.
최현범은 김정철을 유심히 살핀다. 자신 앞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시장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가진 절대적인 힘을 새삼 느낀다.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공포의 힘. 그것은 세상의 어떤 종교보다 강력한 것 같다.
미국 한복판에서 발생했던 911테러도 결국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지 않았던가. 신이라는 존재가 사람을 선하게도 만들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며 죽게 만드는 근원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최현범은 자신을 ‘공포의 신’이라고 자각한다. 사람들이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라고 믿는 것이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공포’만큼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은 없다. 두려움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최현범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김정철에게 명령을 내린다.
「당신이 정태섭 저택을 사도록 해.
우리의 비밀은 영원히 계속 돼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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