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2월5일 오후8시 청수마을 청년회 사무실에서 5명의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늘 하루 동안 이 마을 청년들은 정신없이 보냈다. ‘그분’의 명령을 받은 청년회장 민주혁이 갑작스럽게 마을에 남아있던 5명의 청년들을 이끌고 두 사람을 납치하려다 실패로 끝난 것이었다.

마을 청년들은 지난 3년 전부터 행동이 변하기 시작했다. 청년회장 민주혁이 가장 먼저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이 마을에는 5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주민들 다수가 60대를 넘은 고령자들이라서 마을일은 청년회장이 도맡아 했다.
마을 이장은 65세로 말만 이장이지 농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마을일을 소홀히 했다. 이를 보다 못한 민주혁이 이장을 대신해서 실질적인 이장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 면사무소를 방문한다든지 외부 손님이 방문할 적에는 명예를 좋아하는 이장이 나섰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심부름 같은 궂은일은 민주혁의 몫이었다. 그를 따르는 청년회원들은 이장을 바꿔 버리자는 말도 서슴지 않았지만 민주혁 자신이 이장직을 맡는 것을 반대했다.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살겠다는 것이 그의 변명이었다.

그런데 3년 전 어느 날 갑자기 민주혁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가 모시고 사는 늙은 부모의 말에 의하면 정태섭 회장의 저녁식사에 초대 받았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정 회장은 정계의 실력자이기도 했지만 지역사회를 조용하게 움직인다는 거물이었다. 정 회장이 사는 마을이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혜택을 보는 것도 많았다. 예를 들어 마을 길 포장공사의 경우도 면내에서 최고 빨리 시행됐다. 마을 가로등이 없어서 주민통행이 위험하다는 청년회의 건의사항도 정 회장이 단 번에 해결해 주었다. 정 회장 같은 거물이 마을에 산다는 것은 주민들에게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했다.
그날 저녁 정 회장 저택에 다녀온다던 민주혁은 다음날이 되어서도 연락이 없었다. 그의 늙은 부모는 돌아오지 않는 자식이 걱정되어 정 회장 자택 초인종을 눌렀다. 현관문을 열고 바삐 다가온 아줌마는 민주혁이 어젯밤에 돌아갔다는 정 회장의 말을 전했다.
장가도 안간 민주혁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농사일만 전념하는 착한 아들이었다. 어디에 가게 되면 부모에게 분명하게 밝히고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런데 그렇게 착한 아들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민주혁의 실종사건은 삽시간에 마을 사람들에게 퍼졌다. 청년회원들이 자원해서 민주혁의 집에서부터 정 회장 자택까지 살피고 다녔다. 혹시 술을 마시고 길가에 떨어졌는지 찾기 위해 갈만한 길을 모두 뒤지고 다녔다. 그러나 민주혁은 감쪽같이 없어져 버렸다.
그렇게 3일간이 흘러간 후 온 마을을 긴장시키며 실종된 민주혁이 그의 늙은 부모가 사는 집으로 돌아왔다. 두 다리에 힘이 빠져서 비틀거리며 걸어와서 간신히 자기 방문을 열고 자리에 누웠다. 그의 부모가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마을 청년들이 모두 물어봐도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고 일주일간을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실종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 달 꼴로 한번 씩은 마을사람들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연달아 일어나는 실종에 마을사람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괴소문도 돌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마을 옆을 따라 흐르던 계곡물이 예년에 비해 상당히 줄어들었다. 군데군데에서는 물줄기가 끊기고 아예 말라버린 곳도 발견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이 마을 어른들이 가끔 들려주는 전설이 있었다. 마을 옆 계곡물을 통해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승천해야 하는데 계곡물이 끊겨 승천길이 막히게 되면 마을사람을 한명씩 제물로 데려간다는 내용의 전설이었다. 마을 어른들을 중심으로 이런 괴소문이 퍼지면서 천수마을은 공포심리가 서서히 번지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괴현상에 대해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3일이 지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실종자들이 한사코 경찰에 알리는 걸 거부했다. 완전히 실종된 것도 아니고 3일 만에 돌아오기 때문에 엄격히 말하면 실종이라고 신고하는 것도 곤란했다. 마을 어른들을 중심으로 액운을 없애기 위해서 굿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청년들은 반대하는 분위기였지만 완고한 어른들의 고집을 막을 수 없었다. 곧이어 청수마을의 마을회관 앞에서 동네사람들이 모두 참여하는 큰 굿이 열렸다. 하루 종일 무당이 뛰고 놀며 마을을 온통 뒤집어 놓고 갔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처음 1년 동안에만 15명의 마을사람들이 사라졌다가 마술처럼 3일 만에 돌아왔다. 돌아온 사람들은 민주혁 청년회장과 똑같은 증세를 보였다.
특징이 있다면 젊은 사람을 중심으로 이런 괴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50여 가구 중에서도 늙은 부모들은 걱정만 하고 있는 가운데 젊은 남녀들이 괴현상에 희생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괴현상은 1년이 지나면서 아무렇지 않고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청년회장 민주혁을 중심으로 사라졌다 돌아온 젊은이들이 괴현상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초반에는 그들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아서 여론을 형성하지 못했다. 괴현상이 일어난 지 1년이 넘어서자 15명의 사라졌다 돌아온 젊은이들이 민주혁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임은 매주 금요일 저녁 10시에 열렸다. 처음에는 민주혁이 주도하는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정해진 모임 날짜만 되면 외롭게 떨어진 정태섭 회장 저택으로 모여들었다. 마을사람들은 그들이 왜 정 회장과 어울리는 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정계를 은퇴한 정 회장이 정치조직을 다시 만들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의혹이 증폭되는 사이에 계속해서 모임에 참석하는 젊은 사람은 늘어갔다. 괴현상이 일어난 지 2년 만에 청수마을의 젊은이들은 모두 그들 모임의 일원이 되어있었다. 어떤 종교조직보다도 더 강력한 추종자들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오늘 하루 추격전을 벌인 마을 청년들은 침통한 표정이다. ‘그분’의 명령을 받고 출동했던 6명의 청년들 중 3명이 교통사고로 즉사했고 1명은 팔이 부러졌으며 2명은 김재진의 승용차에 부딪혀 심한 타박상을 당했다. 건장한 6명의 청년이 한 남자를 당해내지 못하고 ‘그분’의 명령을 이행하지 못한 것이다. 청년회장 민주혁도 김재진의 차를 막아서다가 심각한 타박상을 입었다. 다행히 가까이에서 승용차에 부딪혀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기에 지금 청년들과 함께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민주혁이 먼저 침묵을 깬다.

「지금 우리 측 상황이 대단히 불리하다. 이미 죽은 세 사람은 병원 영안실에 들어가 있고 한 명은 팔이 부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조사하기위해 경찰이 나왔었다. 우리 측에서는 단순 교통사고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저쪽에서는 자신들을 납치하려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 회장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책이 있습니까?」
「조금 전에 ‘그분’의 지시가 있었다. 우리 측에서는 단순 교통사고로 계속 주장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경찰서장도 우리 편이기 때문에 수사가 확대되지 않도록 조치해 놓겠다고 말 씀 하셨다. 우리들은 ‘그분’의 말씀을 믿고 절대 복종해야한다. 다른 청년들과도 접촉해서 입단속을 시키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그분’께 절대적으로 복종하겠습니다.」

민주혁과 청년들은 승용차를 타고 그들의 동료가 누워있는 서산중앙병원으로 들어선다. 청년들은 ‘그분’의 명령을 동료에게 전달하며 입단속을 당부한다.
김재진에게 칼을 들이대다 팔이 부러진 청년이 묻는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납치하려 했던 두 사람이 이 병원 특실에 입원해있다고 들었습 니다. 그들을 이대로 지켜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청년회장 민주혁은 깜짝 놀라며 대답한다.
「그렇단 말이지? 지금 경찰이 이 사건을 조사하는 중이라서 우리 측이 움직이기는 쉽지 않 아. 자칫 잘못하다가는 우리가 납치하려던 일이 드러나게 될지도 몰라. 내가 ‘그분’의 명 령을 다시 받아 올 때까지 아무도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고 있어!」

한편, 비밀의 방에서 생각에 잠겨있던 최현범은 자신이 욕망에 눈이 어두워 너무 성급했던 점을 돌아본다. 서인애의 넘치는 매력에 푹 빠져서 즉흥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다. 전혀 그답지 못한 판단이었다. 지난 15년간 가족을 잃고 복수의 칼을 갈았던 최현범은 무섭도록 치밀하게 계획을 준비했었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정태섭 부부를 세뇌시켰으며 지금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작 서인애에 대한 욕망 하나 때문에 의도하지 않았던 허점을 보이고 있었다.
비밀의 방에서 생각에 잠긴 최현범에게 전화벨이 울린다. 민주혁의 전화였다.
「납치하려 했던 두 사람이 있는 곳을 알아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대기하고 있어!」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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