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 무서운 마을




12월6일 오후2시 이연준이 김재진의 입원실을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오전에 박 형사를 만나 파악한 정보를 말하고 있다. 어제 김재진을 찾아와 방문조사를 진행한 형사에게 그는 상세하게 사건의 진상을 진술했었다. 그러나 이연준이 알아 본 정보에 의하면 김재진의 진술과는 다르게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 된 가능성이 커지고 있었다.
「본부장님,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직접 협박을 당하고 추격을 당한 일인데 이대로 넘길 수 없는 일 아닙니까?」
「편집장님, 이 사건이 왜곡되고 있는 이유는 분명 고위층의 지시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겁 니다. 이는 단순히 청수마을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어디까지 관련 되어 있는 것 같습니까?」
「지난번에 최현범의 전원주택에서 매주 모인다는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그곳에는 시장과 경찰서장까지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청수마을 청년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다수였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한통속입니다. 서로 끈끈하게 결탁되어 있다고 봅니다.」
이연준의 목격대로라면 김재진과 서인애를 납치하려 했던 사건에도 그들이 관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김재진과 이연준은 청수마을 청년들과 함께 거물들까지 상대해야 하는 부담감을 느낀다.
「편집장님, 이 사건이 알고 보면 정태섭 회장 가족 사건과도 연결이 됩니다.
서인애 씨가 정인주의 애인이었지 않습니까. 납치하려 했던 대상이 혹시 서인애 씨 일수 도 있습니다.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는 거죠.」
생각해보면 그 마을 청년들은 김재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그렇다면 납치하려 했던 대상은 김재진이 아니라 서인애 일수도 있다. 그녀가 정태섭 회장 외아들과 애인 사이였고 그 저택에 가끔 출입했었기 때문에 연관이 있을 수 있다. 김재진의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더욱 서인애를 지켜줘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편집장님, 그런데 이상한 낌새가 있습니다. 입원실 복도 쪽에 청년 2명이 서성거리고 있 는데 제가 청수마을 취재를 다니면서 낯익은 얼굴이 있었습니다. 저들이 우리를 감시하는 느낌이 듭니다.」

김재진은 그들을 확인해 볼 생각으로 휠체어를 타고 복도로 나간다. 복도에 나란히 설치된 간이의자에 앉아서 말없이 두리번거리는 두 청년이 보인다. 그들은 일부러 의자 옆에 놓인 잡지를 보기도 하고 가끔 이쪽을 힐끔거린다. 김재진은 그들을 지나쳐 휠체어를 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로비로 내려간다. 로비에 설치된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빼고 있는데 비상계단으로 빠르게 내려 온 두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김재진은 그들을 못 본 척 하며 커피 두 잔을 뽑는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탄 김재진은 입원실 통로에서 내려 서인애의 방으로 들어간다. 마침 혼자 있던 그녀가 반갑게 맞아준다.
「점심식사는 맛있게 했어요?」
「네에. 다리도 불편한 편집장님이 커피까지 배달해주시니 너무 고마운데요.」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받아든 서인애는 활짝 웃으며 하얗고 윤기 나는 치아를 드러낸다. 입원해 있는 상황인데도 그녀에 몸에서는 행복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향기가 난다. 어제 사고가 난 후 입원하게 되자 서인애의 부모가 연락을 받고 급히 서울에서 내려왔었다. 그녀는 부모가 걱정할까 싶어서 상세한 말은 하지 않고 그저 교통사고가 났다고만 이야기 했다. 옆방에 있던 김재진도 그녀의 부모한테 인사드리고 입원해 있는 동안 잘 보호해 주겠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안심한 그녀의 부모는 며칠 치료받고 올라가겠다는 딸에게 당장 서울의 병원으로 가자고 했지만 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하룻밤을 입원실에서 지새운 부모는 며칠 후에 올라간다는 딸의 약속을 받고 잠시 전에 서울로 올라갔다.
「난 인애 씨가 부모님과 서울로 올라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며칠 더 있겠다고 하니 너무 반갑네요. 」
「이렇게 큰 사건이 생겼는데 그냥 도망치듯이 혼자 떠나버리긴 싫었어요.
경찰조사도 지켜봐야 하고 해결된 게 하나도 없잖아요.」
서인애의 대답에는 김재진이 원하던 단어는 없다. 그는 서인애가 더 좋은 의료 환경을 갖춘 서울의 병원으로 올라가지 않고 시골 도시에 남은 이유가 다른 것이라는 기대를 했었다. 가령 호감이 가는 남자를 만났는데 그 사람을 떠나는 게 싫은 거라는 이유랄까. 그런데 서인애의 말속에서는 그런 비슷한 단어를 찾을 수 없어 서운한 마음도 생긴다.
「인애 씨, 그런데 말이죠. 우리가 감시당하는 것 같아요!」
「네에? 누가 우리를 감시한단 말이죠?」
「내가 밖을 살펴보니까 청수마을 청년들 같아요. 그들의 납치사건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 같아요.」
서인애의 눈이 갑자기 커지면서 김재진을 똑바로 쳐다본다. 마치 옹달샘에서 한모금의 갈증을 풀던 꽃사슴이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에 놀라 커다란 눈망울을 들어 내다보는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요. 저녁에는 문을 꼭 잠그고 있어야 해요. 누군지 확인되기 전에는 절대 열어주면 안돼요. 대낮에야 저도 있고 의료진들이 보호하고 있으니까 허튼짓은 못할 거예 요. 알았죠?」
「편집장님, 그럼 어제 저를 납치하려 했던 건가요?」
「그건 확실하지 않은데 인애 씨가 목표일 확률이 높아요. 정 회장 가족사건 하고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생각할수록 서인애의 가슴속에서는 소름이 돋는다. 며느리가 될 예정이었던 정 회장네 가족에 대해서는 그녀가 가장 많이 알고 있다. 정인주가 자살하면서 가장 마지막까지 통화했던 사람도 서인애였다. 그리고 그 기분 나쁜 미소를 흘리던 최 영감의 마지막 한마디도 기억난다.
「편집장님, 그 영감이 마지막에 했던 말이 자꾸 생각나요.
나를 다시 볼 것이라고 했어요. 그 소름 돋는 말을 기억하세요?」
「그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납치사건이 난 뒤에 생각해보니 알 것 같아요. 그 최영감이 이번 사건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게 분명해요.
이미 그 영감은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영감이 청년들을 시켜서 두 사람을 납치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도대체 시골영감이 어떤 사람이기에 청년들이 명령대로 복종한단 말인가.
김재진은 차츰 최현범의 무서움을 깨닫기 시작한다.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최현범이 있다는 사실을 희미하게나마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 그가 사건을 저질렀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각각의 사건에서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고 있지만 최현범의 존재가 계속 느껴진다.
김재진은 섬뜩한 생각이 들면서도 자신의 옆방에 입원해있는 서인애를 꼭 지켜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5년 전 그가 지켜주지 못했던 윤하은의 모습이 서인애에게서 엿보인다. 이제 다시는 여자를 지키지 못해 후회하는 나날을 보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김재진은 오래토록 그녀의 병실을 지키고 있다. 서인애도 김재진의 보호를 느끼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수다스럽게 늘어놓는다.

같은 시각 청수마을 앞 저수지에서 밀짚모자를 쓴 노인이 홀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주위에는 전혀 낚시꾼을 찾아볼 수 없다. 청정지역이라서 낚시가 금지된 곳이었지만 노인만은 예외인 듯하다. 최현범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가까운 길가에 승용차가 서더니 두 젊은 남녀가 최현범에게 다가간다. 그들은 최현범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건넨다. 이정수와 신미연이다.
「그래. 그 편집장이란 녀석은 어떤 종류의 사람이지?」
이정수가 경직된 목소리로 대답한다.
「주인님, 김재진 편집장은 혼자 살고 있는데 오로지 신문 만드는 일만 열심이지 다른 취미 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자를 납치하려 했는데 실패했어! 돈 싫어하는 사람 없잖아? 내가 후원금을 좀 내겠다고 전해봐.」
「네. 주인님. 저희 두 사람이 만나서 처리해 보겠습니다.」
이정수와 신미연은 그들의 승용차에 주인님을 모시고 전원주택으로 향한다. 그들이 모신 분은 절대적인 존재다. 차안에서도 최현범에게 눈빛도 마주치 못하고 최현범의 말에 바짝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신미연은 말이야. 오늘 밤 내 시중 좀 들어야 되겠어. 너 숫처녀가 맞다고 그랬지?」
당황한 빛이 역력한 신미연이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네. 주인님, 제가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최현범은 집이 가까워지면서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서인애의 넘치는 매력에 빠져서 납치하려 했지만 김재진 때문에 실패했다. 70이 넘었지만 팔팔한 탐욕을 채울 먹잇감이 필요한 최현범이다. 오늘은 신미연과 긴 밤을 보낼 생각에 젖어든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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