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2월27일 오전11시 40대의 우편배달부가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 골목을 들락거린다. 오토바이 꼬리에 고정된 커다랗고 빨간 박스에는 다른 날보다 유난히 높이 쌓아올린 꾸러미가 눈에 들어온다. <주간충남>사무실 앞에 도착한 빨간 오토바이가 멈춰 선다. 우편배달부는 줄곧 실려 있던 커다란 꾸러미를 들고 낑낑대면서 계단을 올라 2층 신문사에 들어선다. 꾸러미를 턱하고 내려놓은 우편배달부가 큰소리로 말한다.
「요즘 신문사에 뭔 일 있어요? 이 꾸러미가 다 반송된 신문입니다.」
우편배달부의 목소리를 듣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 사무국장 진현미의 얼굴에 놀라는 표 정이 묻어난다. 우편으로 보낸 신문이 어제부터 반송되어 오더니 오늘은 한 꾸러미가 반송됐다. 어림잡아 150부 정도는 넘을 것 같은 많은 신문이 되돌아 온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4대의 전화가 빗발쳐 진현미가 혼자 전화 받기에는 괴로울 지경이다. 이 전화기에서 신문을 중지해달라고 요청이오면 다른 전화기 벨이 울리는 식으로 중지요청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김재진은 사태를 파악하고 어제 오후부터는 아예 4대의 전화선을 다 뽑아버렸다. 어차피 전화를 일일이 받을 수도 없는데다 독자들을 설득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신문사를 찾아와서 어디 사는 누군데 절대로 신문 보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쌀쌀맞게 문을 휙 닫고 나가버린 아저씨도 있었다. 어떤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시장에서 밑 반찬 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신문사가 서민 편을 들어주지 않고 있는 놈들 편만 들어준다며 다짜고짜 따지며 한 시간을 잔소리를 쏟아 붓기도 했다. 온갖 비난의 화살이 <주간충남>으로 쏟아지고 있다.

재래시장 400여 상인들의 집단행동은 상상을 뛰어넘은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날이 갈수록 독자들의 반응이 싸늘해지고 불매운동에 나선 사람들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상인조합에서는 터미널 정문 앞에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탑을 하나 설치했다. 탑 이름은 「<주간충남>불매 10만인 서명 탑」이었다. 거기에는 매일매일 서명에 동참한 주민수를 빨간 글씨로 기록 중이었는데 오늘까지 해서 4천명이 넘는 숫자가 적혀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어디서 모방을 한 흔적이 남아있는 빨간 온도계 표시였다.
0도부터 100도까지 눈금까지 표시해서 10만 명이 서명했을 때 100도가 되도록 설정해놓았다. 이처럼 조직적으로 불매운동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재래시장 상인조합에서도 전혀 모르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시내에서는 새벽부터 확성기와 현수막을 단 1통 트럭들이 10여대나 모든 읍·면·동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반 주민들은 당연히 재래시장 상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시설을 갖춘 트럭을 몰고 다니며 불매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수막 하단에는 상인조합이 아니라 「지역경제 살리기 대책위원회」라는 문구를 달았다. 상인조합 사람들도 이런 단체가 있는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그들은 빨간 바탕에 흰 글씨를 써서 <주간충남> 불매운동을 홍보하고 있었다.
「어용신문 몰아내자. 사이비 기자 처단하라. 악덕사주 몰아내자」
1톤 트럭 짐칸에 올라타서 확성기로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은 모두 젊은이들이었다. 밀짚모자를 머리에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서 실제로 누가 누군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트럭을 운전하고 있는 젊은이도 밀짚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해서 그들의 정체는 오리무중이었다. 재래시장 상인조합 사람들은 처음에 그들의 존재를 궁금해 했다. 젊은 청년들이 1통 트럭을 몰고 다니며 종일 확성기를 틀어대니 상당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들도 상인들과 똑같은 목표로 움직이는 것을 알았다. 어차피 상인들이 하고 있는 일을 돕는 역할이기에 제지할 필요는 없었다.

이날 저녁 10여대의 1톤 트럭은 줄을 지어서 청수마을로 들어가고 있다. 밀짚모자와 마스크까지 벗어던진 그들은 분명 청수마을 청년들이다. 이틀 전에 그들에게 주인님의 지상명령이 떨어졌다. 이번에야 말로 끝장을 내야 한다며 불매운동을 지원하라는 것이었다. 청년회장 민주혁과 청년들은 마을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 1톤 트럭을 동원하고 옆 마을에서 놀고 있는 트럭까지 합쳐 10대의 트럭을 마련했다.
그리고 현수막과 확성기를 제작해서 불매운동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역경제 살리기 대책위원회」라는 유령단체의 활동은 즉시 큰 효과를 나타냈다. 청수마을 청년들이 특수한 목적을 위해 만들었다는 것을 알 리 없는 지역주민들은 이 단체가 지역 상인들의 민의를 담아 활동하는 단체인 것으로 오해했다. 이토록 큰 단체가 나선 것은 정당한 명분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상인조합에서 불을 댕긴 불매운동은 이제 전 지역사회로 급속히 파급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조직력을 갖춘 불매운동 세력 앞에 <주간충남>은 태풍 앞에 가녀린 촛불 정도로 보였다.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로 보였다. 유령단체에 대해 가장 빨리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은 김재진과 이연준이었다.
밀짚모자와 마스크를 쓴 괴청년들이 듣도 보도 못한 단체이름을 내걸고 시내를 활보하고 있다는 정보는 한 주재기자에게 들어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체가 확성기와 트럭을 이용해서 조직적으로 불매운동을 하는 것은 불법적인 것이었다. 또한 주택가와 아파트에서도 매일 반복되는 소음 때문에 항의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괴청년들이 나타난 후 이틀째부터 그들이 탄 1톤 트럭 한 대를 미행했다. 저녁 7시가 넘어서자 1톤 트럭이 청수마을로 향했다. 이윽고 마을 청년회 사무실까지 미행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10대의 1톤 트럭들이 모였으며 청년들이 밀짚모자와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있었다. 가로등 조명에 비춰진 그들의 얼굴은 분명히 청수마을 청년들이었다. 잠시 후 사무실에서 나온 청년회장 민주혁이 1톤 트럭에서 내린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목격됐다. 이 장면들을 김재진과 이연준이 50미터쯤 떨어진 언덕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연준이 후레쉬를 크고 최대한 빛을 많이 받아들이도록 설정된 망원렌즈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언론탄압나선유령단체」
다음날 새벽 <주간충남>인터넷 판에 뜬 탑 기사 제목이다.
기사에 의하면 신문사에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청수마을 청년들이 유령단체를 만들어 불법적으로 불매운동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또한, 그들이 <주간충남> 편집장과 한 여성을 납치하려 했으며 그들 중 한 청년이 경찰에 잡혀서 조사를 받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언론탄압을 해왔다는 주장이 실렸다.

<주간충남>에 대한 불매운동이 지역사회의 가장 큰 이슈이다 보니 클릭수가 하루만에 5천여 건으로 올라간다. 사진과 함께 게재된 기사는 상당히 신뢰감을 주는 내용이었으므로 주민들은 서서히 청수마을청년들과 <주간충남>의 전쟁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기사내용에서는 왜 청수마을 청년들이 <주간충남>을 공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못했다. 그들 스스로 어떤 원한에 의해서 그랬는지, 누가 사주해서 그렇게 했는지 전혀 언급이 없었다. 독자들은 그 원인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지만 신문사에서도 그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광고주를 협박 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된 청수마을 청년도 그 원인에 대해서는 끝까지 함구했다. 청수마을 청년들이 왜 <주간충남>을 끈질기게 공격하는지 원인을 알아야 대책이 나올 텐데 꾸준한 취재활동에도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김재진의 마음은 더욱 무겁고 답답했다.

<주간충남> 인터넷 판이 실린 날부터 갑자기 시내에서 돌아다니던 불매운동 1톤 트럭이 모두 사라졌다. 유령단체 이름으로 내걸렸던 시내 현수막들도 모두 철거됐다. 사태를 주시하고 있는 청수마을 청년들의 주인님이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들의 정체가 드러난 만큼 재빠르게 철수하는 것이 상책임을 알고 더 이상 무리한 행동을 막은 것이다.
유령단체의 불매운동은 사라졌지만 재래시장 상인들의 서명운동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상인들은 매일 조를 짜서 서명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이 조합장과 간부들이 계획을 세워 상인들에게 해달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게 중에는 가게를 봐야 할 시간에 장사도 못하고 서명운동을 하느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상인도 있었지만 조합간부들의 등쌀에 밀려 억지로라도 참여할 수밖에 없다. 상인들은 그래도 믿는바가 있다. 김 시장측근인 이 조합장이 집권한 지난 5년간 재래시장에 대한 시설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었다. 앞으로도 현대화 사업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나마 장사가 유지되는 것도 이 조합장이 방패막이를 잘해줘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다른 건 몰라도 터미널이 옮겨가는 것은 상인들의 터전을 없애는 것이기에 그것만은 막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순진한 상인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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