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2월29일 오전10시 터미널 앞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잔뜩 찡그리고 있다. 눈발이 제법 굵게 날리는데다 살을 에는 바람이 두꺼운 외투 속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조금만 걸어도 참기 어려운 눈바람에 다시 건물 속으로 잠시 몸을 피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인다. 오늘도 터미널에서는 <주간충남>불매서명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비바람이 치는 날씨 때문에 그런지 밖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던 것을 터미널 내에 들어가서 하고 있는 것이 조금 다르다. 터미널 정문 앞에 세워진 불매운동 탑에는 벌써 1만2천명이 넘어서고 있다. 이제는 지역주민의 10%가까이 서명에 동참하면서 <주간충남>의 타격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터미널 한 쪽 귀퉁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세 명의 남자가 있다. 그들의 눈은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4명의 시장 아줌마에게 고정돼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작은 카메라를 꺼내 시장 아줌마들을 찍기도 한다. 그리고 수첩을 꺼내 뭔가를 열심히 적어나간다. 세 남자는 20분정도 터미널에 머물다 눈바람을 헤치고 50미터쯤 떨어진 건물로 향한다. 건물에 도착하더니 외투에 덕지덕지 들러붙은 하얀 눈덩이를 떨어내고 2층으로 올라간다. 그들이 방금 들어간 건물 2층에는 작은 사각 현판이 걸려있고 아담한 몇 글자가 쓰여 있다.
「(사)바른시민모임 서산지부」
이 시민단체는 설립된 지 23년 된 단체로 전국적으로 56개의 지부를 두고 있는 잘 알려진 곳이다. 각 지부마다 한 명의 상근자들은 소정의 급여를 받고 일하지만 일반 기업체의 절반 수준이어서 봉사의 사명이 있는 사람이 근무하고 있다. 그 외에는 무보수로 근무하는 사람들로 정부지원도 한 푼 받지 않는 진정한 NGO단체로 알려져 있다. 방금 이곳으로 들어간 세 사람은 상근자인 사무국장, 서울에서 온 자문위원 두 명이다. 이 자문위원들도 무보수로 봉사하는 분들로 경제학 박사들이다.
이 단체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윤길현이 서울에서 두 분의 경제학 박사님들을 모신 데에는 이유가 있다. 3개월 전부터 「터미널 이전과 재래시장 활성화」라는 연구를 두 박사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이들 경제학 박사들은 현장을 답사하느라고 벌써 5번째 터미널을 찾고 있었다.

윤길현이 이 연구를 먼저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3개월 전 <주간충남>편집장 김재진이 찾아와 터미널 이전문제가 지역에서 가장 먼저 해결돼야 도시발전이 가능하다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으며 윤길현도 이에 동의하면서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었다.
김재진은 7년 전부터 지역문제를 잘 파악하고 있는 윤길현의 자문을 구하고 정보도 나누는 사이였다. 윤길현이 생각할 때 김재진의 아이디어는 참신하지는 않았다. 이미 지역문제를 조금 알고 있다는 사람들은 다들 20년이 넘어 노후 된 터미널 때문에 도시 발전이 어렵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데 그런 대형이슈를 공론화시키기에는 부담감이 너무 컸다. 당장 재래시장 상인들의 집단반발과 기득권층의 보이지 않는 압력을 견뎌내기가 어려울 것이었다. 한마디로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와 비슷한 어려움이었다. 그런데 김재진은 자신이 용감하게 이 어려운 문제를 공론화 시키겠다고 말해서 윤길현은 깜짝 놀랐었다.
김재진에게는 그런 엉뚱함이 있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가끔 그의 무모한 도전에 대해 「돈키호테」라고 표현했다. 그를 비웃는 말이기도 했지만 그의 용기를 부러워하는 말이기 도 했다. 김재진은 그 당시 터미널 문제를 공론화 시키는 건 <주간충남>에서 맡고 이에 대한 전문가의 연구는 「바른시민모임」에서 맡아주길 제안했다. 윤길현도 터미널이전문제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는 것을 진작부터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연구를 실행 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떠안았다.
그는 이 문제를 중앙회와 상의했고 자문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는 경제학 박사 두 분을 소개 받아 계속 연구를 진행해왔던 것이다.
「두 분 박사님들, 상인들의 반대움직임을 어떻게 보십니까?」
뜨거운 커피를 탁자에 내려놓은 윤길현이 두 박사에게 묻는다.
「연구결과 보고서는 거의 다 됐는데 저렇게 상인들이 반대서명운동까지 벌여서 우리 단체 에서도 부담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
그늘 세 명은 이 문제를 공론화했던 지역주간지가 처참하게 당하고 있는 꼴을 방금 전에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들의 입장은 다르긴 하지만 연구결과를 주민들 앞에 내놨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이번 보고서에는 재래시장 활성화 대책을 많이 언급하려고 합니다. 영세 상인에게 도 대안을 마련해주면 반발이 수그러들 수도 있습니다.」
두 박사중 비교적 젊은 사람이 꺼낸 말이다. 상인들의 반발을 의식해서 나름대로 대안을 마련한 것이다. 세 사람은 3개월 동안 진행해온 연구결과 발표를 앞두고 상당히 부담감을 갖고 조심스런 말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3개월간의 연구를 숨길 생각은 없다. 시민단체라면 당연히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부담을 감수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발표날짜는 언제로 잡을까요?」
「새해 1월 7일이 좋을 것 같습니다. 처음 행운의 숫자가 들어간 날이잖아요.」

이날 오후2시 윤길현의 전화를 받은 김재진은 너무 반가워한다. 3개월 전부터 터미널 이전 문제를 공론화하자는 합의를 해서 <주간충남>이 여론몰이를 해왔지만 <바른시민모임>에서 실시하는 연구는 얼마나 진행됐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궁금하기도 했다.
「사무국장님! 터미널 이전 연구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네. 그 소식을 알려드리려구요. 1월 7일로 연구발표날짜를 정했습니다. <주간충남>에 후원광고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동안 <바른시민모임>에서 해왔던 공익사업은 <주간충남>에서 후원광고를 여러 차례 내줬었다. 김재진은 이번에도 흔쾌히 그렇게 하기로 약속한다.
그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희망이 꽁꽁 얼어버린 대지위에 솟아나는 것 같다. 생각지도 못했던 <바른시민모임>에서 연구결과 발표 일정을 잡았다는 데에 우군을 얻은 기분이다. 그들의 발표내용이 무엇이고,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지 않는가. 진실을 밝힐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김재진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구결과발표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한다.

지금 <주간충남>의 운영사정은 무척 어렵다. 재래시장 상인조합에서 진행하는 불매서명운동은 오늘까지 1만5천명을 넘을 예정이다. 신문사의 유료독자 5200명중 벌써 1500명이 중지를 요청해왔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독자들이 중지를 요청하는 바람에 신문사 업무가 마비되자 아예 4대의 전화선을 모두 끊어버렸다. 이대로 한 달 만 더 가면 대부분의 독자가 떨어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신문사의 근간이었던 유료독자는 농사꾼이 모내기 할 적에 손수 벼를 심는 것처럼 정성이 들어가야 열매가 열린다.
김재진이 7년 전 운영을 맡을 때만해도 유료독자는 1300명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을 상근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한 명 한명 설득하고 권유해서 몇 배의 열매로 열린 것이다. 그처럼 어느 신문사든지 유료독자를 단기간에 늘릴 수도 없을뿐더러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다하더라도 1년 후에는 다시 도루묵이 되어버리는 것이 현실이었다. 실제로 중앙유력지에서 독자들에게 서비스기간을 많이 주고 각종 상품을 주어서 전국에서 수 만 명의 독자를 유치하기도 하지만 1년이 지나면 다시 수 만 명의 독자들이 없어지는 현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이 신문판매의 냉정한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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