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월12일 저녁8시
이연준이 운전한 승용차는 춘천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그의 여동생이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데 서인애가 숨어 지내기에는 가장 적당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호반의 도시 춘천의 경치는 서인애가 살던 일산 호수공원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커다란 호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찰랑거리게 만들고 낯익은 풍경에 시선이 옮겨간다.
펜션 앞에 도착하자 서인애가 김재진을 끌고 호수로 나가자고 한다. 가로등을 따라 손을 잡고 산책로를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이 영락없는 연인이다.
「재진 씨가 두 번째로 제 목숨을 구하신거예요.」
「인애 씨는 내가 잃어버린 사랑을 다시 선물해준 소중한 사람이잖아요. 난 절대로 인애 씨 를 잃어버리지 않을 거예요. 사악한 저들이 인애 씨를 계속 노리겠지만 내가 꼭 지켜줄 거예요.」
이제 서인애도 자연스럽게 김재진의 이름을 부른다. 모든 낱말과 수식어가 필요 없는 인간 김재진이 좋고 그녀의 마음속에 깊이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난 여기에 머물며 글을 써보고 싶어요. 생활이 바쁠 때는 써보지 못한 채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나만의 글을 써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재진 씨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재진 씨의 전 쟁이 너무 힘들더라도 응원하는 저를 생각하고 힘내셔야 해요.」
서인애는 자신의 아픔과 충격보다도 김재진의 고통을 위로하고 있다. 나의 아픔보다는 연인 의 고통이 먼저 보이고 느껴지는 게 사랑이리라. 두 사람은 오랫동안 손을 잡고 걸으며 말없이 서로의 눈빛을 바라본다.

다음날 이연준은 아침 일찍 돌아가고 김재진은 서인애 곁에서 며칠 더 머물기로 한다. 그녀가 납치 충격에서 벗어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낀 듯하다.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호수가 다이아몬드를 깔아 놓은 듯 반짝이며 눈동자를 어지럽힌다. 호숫가에서 운동하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두 사람을 지나치며 뛰어간다.
「그런데 재진 씨, 그 청년들이 말한 주인님이라는 사람은 누굴까요?」
「그게 오리무중입니다. 두 녀석들은 누가 시킨 게 아니고 단독 범행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분명히 들었어요. 주인님이 인애 씨를 데려오랬다고 들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왜 나를 데려오라고 했을까요. 그걸 모르겠어요.」
「글쎄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 주인님이 인애 씨를 점찍었다는 말도 했어요.
또, 세뇌...추종자라는 단어도 사용했어요.」
계속 수수께끼 해답을 맞추지 못하는 두 사람. 왜 서인애를 데려오라고 했을까. 그녀를 점찍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떻게 세뇌시키고 어떻게 추종자가 되는 것일까. 도무지 연결성이 없는 단어들이 너무 많다. 생각할수록 김재진의 머리를 아프게 한다.
두 사람은 호수를 걸으면서 지난 한 달간을 돌아본다. 서인애가 <주간충남>편집장 김재진을 찾아오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그 후 정 회장 저택을 방문하고 싶다는 서인애의 요청으로 청수마을에 들어섰다. 그때부터 사건이 벌어졌다. 청수마을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최현범이었다. 그의 기분 나쁜 웃음, 그리고 서인애를 다시 만날 거라는 최 영감의 여운 한마디가 불길했다. 그렇다면 최현범은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누가 이 사건을 벌였고, 누가 서인애를 쫓고 있으며 왜 <주간충남>을 무너뜨리고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시골노인이 갑자기 <주간서해> 대표를 맡아 사사건건 <주간충남>을 상대로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도 이상하다. 도대체 그의 목표는 무엇일까.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전혀 없다. 두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수록 의혹이 더 커져만 간다.

한편, 이날 오전9시 청수마을 청년회 사무실에는 8명의 청년들이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가운데 자리에 앉은 청년회장 민주혁이 몹시 화난 표정을 지으며 청년들에게 소리치고 있다.
「마을 입구까지 다 와서 놓쳐버리다니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혀! 우덜이 뭐가 부족해서 맨날 놓치는 겨!」
「회장님, 가장 큰 문제는 애들 두 놈이 경찰에 잡혀서 워째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현장에서 체포 당했다니께유.」
「벌써 세 명 째 아니여! 이를 워쩐댜.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니께.」
침울한 표정을 짓는 청년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어제 납치사건이 실패로 끝나자 민주혁은 최현범에게 즉시 사실대로 보고했었다. 드디어 서인애를 손아귀에 쥘 수 있을 것으로 고대하던 최현범은 노발대발했다. 사악한 악마의 분노를 느낀 민주혁은 고양이 앞에 쥐처럼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당장이라도 커다랗고 날카로운 이빨을 벌려 자신의 몸을 씹어 먹어 버릴 것 같은 공포에 빠졌다. 분노에 찬 독설을 뱉어 낸 최현범은 민주혁과 청년들에게 일단 대기하라고 명령했다. 의심을 받고 있는 시점에 허점을 보이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최현범은 혼자 비밀의 방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잡혀간 두 청년은 청수마을의 비밀에 대해서 전혀 누설하지 않을 것이다. 완벽하게 세뇌당한 청년들이 주인을 배신 할 염려는 없다. 최현범은 이번에도 김재진의 방해로 실패했다는 사실을 듣고 고민에 빠진다. 이번에 시도한 납치는 완벽했다. 두 사람을 적절한 타이밍에 기절시켜서 승용차에 싣고 최단 시간 만에 마을 입구까지 온 것은 군더더기가 없는 작전이었다. 그런데 손발이 묶여있던 김재진이 전기충격기를 낚아채서 두 청년을 제압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의 능력이 그렇게 대단하단 말인가. 최현범이 이번 작전에서 서인애와 함께 김재진까지 납치하라고 했던 것은 그의 능력이 미우면서도 탐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한 달 동안 최현범과 그의 추종자들이 곳곳에 쳐 놓은 덫을 그는 보란 듯이 극적으로 빠져나갔다. 최현범의 눈에는 그게 너무 충격적이고 신기했다.
처음에는 시골 주간신문의 능력 없는 편집장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위험에 직면했을 때 발휘하는 그의 위기 대처 능력에 감탄까지 나왔다. 그런 능력을 가진 김재진을 그냥 놔뒀다간 지역사회를 지배하려는 그의 포부를 막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 그를 세뇌시켜서 추종자로 만들어 버리면 최현범의 충견이 되어 어려운 명령도 척척 수행해 낼 것이다. 그래서 김재진을 함께 납치하라고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보기 좋게 한 방 먹었다. 그가 점찍은 서인애까지 데리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탈출해 버렸다.
사악한 악마의 추종자들을 몇 번씩이나 실패로 몰아넣은 그를 어떻게 벌해야 된단 말인가. 추종자들 중에는 김재진을 당할 자가 없단 말인가. 최현범은 비밀의 방에서 깊은 고민에 빠진다.

한편, 김재진도 서인애와 함께 펜션에서 기거하면서 서서히 최현범의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재진 씨, 이 모든 일의 핵심에 최현범이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정 회장이 그 영감 앞에서 무릎 꿇고 용서를 빌고 있었던 장면, 정인주 씨와 멱살을 잡고 싸우던 장면,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매주 그의 집에 모이는 장면, 이 모두 그의 존재를 말하는 것 같아요.」
「그럼, 인애 씨는 최현범, 그 노인이 청수마을 청년들이 말한 주인이란 말인가요?」
「그 영감이 거액을 들여 <주간서해>를 인수해서 커다란 압박을 가하고 있다면서요. 그 영 감은 보통 시골 영감이 아닌 건 확실해요. 커다란 음모를 진행하고 있는 커다란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주간서해>를 인수하자마자 최현범이 보통 시골노인네가 아니며 거대한 자금력을 지닌 거물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그 작자가 모든 사건을 뒤에서 명령한 주인이라는 말인가. 그런데 왜 그런 거물이 정 회장 밑에서 정원이나 가꾸며 10년을 살았단 말인가. 70평생 동안 평범하게 살아오던 영감이 다 늙어서 왜 청수마을 청년들의 주인이 되었단 말인가.
청년들이 이장까지 무시하며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인데 무엇이 아쉬워서 그런 노인의 명령에 복종한단 말인가. 김재진에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그러나 분명한건 최현범이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었다는 사실이다. 아직은 청년들의 주인이 최현범인지 아닌지 의혹을 풀지는 못했지만 그의 존재감은 계속 커지고 있다.
김재진이 경찰 쪽에 연락해 본 바에 의하면 여전히 두 청년은 배후를 불지 않고 있다. 모든 것을 두 청년이 다 뒤집어쓰고 가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두 청년이 숨기고자 노력하는 주인이라는 자는 누구일까. 그들은 왜 주인의 명령을 따르는 개가 되었는가. 김재진의 궁금증은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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