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남 선지자는 3일간의 환각여행을 다녀온 후 자신의 주인이 된 최현범에게 모든 것을 고백했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끼니를 거른 적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는 술주정꾼이었고 어머니는 장터에서 행상을 했는데 저녁이 되어서야 머리에 커다란 바구니를 이고 돌아오곤 했었다. 그런데 잔뜩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는 무척이나 어머니를 괴롭혔다. 기진맥진해서 돌아온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나가서 뭘 하다 들어왔는냐, 어떤 놈 만나다 온 것 아니냐, 이것 밖에 못 벌어왔냐”는 비난과 함께 주먹질이 예사였다. 결국 참을 수 없던 어머니는 도망가 버리고 꼬마아이 혼자 남아서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해 삐쩍 말라갔다. 술주정꾼 아버지는 아이가 죽을까봐 염려되었던지 동네에 자주오던 스님에게 넘겨줘버렸다.

그때부터 꼬마는 아기중이 되어 절에서 자라게 되었다. 꼬마에게는 절이라고 해서 좋은 시절은 아니었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았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을 듣고 또 들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느덧 청년스님이 된 그 꼬마는 이성을 알게 되고 호기심을 느낄 나이에 이르렀다. 어느 날 어머니를 따라서 같은 또래의 처녀가 절에 드나들었다. 청년스님은 처녀가 절에 올 때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녀를 훔쳐봤다. 어느 날 어머니가 기도를 올리고 있을 때 처녀가 소나무밭길에서 산책하고 있었다. 청년은 산책로 맞은편에서 올라오는데 마침 처녀가 미소를 띠며 청년스님을 불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처녀가 절에 올 적마다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청년은 사랑이란 감정을 알게 됐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녀의 어머니와 처녀가 보이질 않았다. 난생 처음으로 여자를 사랑하게 된 청년은 어찌할 바를 몰라 방황을 시작했다. 이대로 그녀를 놓아주고 싶지는 않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청년스님은 절을 떠나 그녀를 찾아 나섰다. 절에 있던 장부에서 그녀의 연락처를 알아냈고 약간의 용돈까지 훔쳐서 세상으로 떠난 것이었다. 어차피 그는 불경이나 외우고 살기에는 안 어울리는 팔자라고 생각했다.
어렵게 처녀의 집을 찾아 그녀가 나타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다. 이윽고 어둑어둑 해질 무렵 처녀가 골목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청년스님은 그녀 앞에 재빨리 다가가 힘차게 손을 움켜잡았다. 그런데 청년스님을 알아본 처녀는 더 이상 반기지 않았다. 그저 호기심에서 말을 나눴을 뿐 아무 감정이 없었으며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말까지 했다. 청년스님의 첫사랑은 환상에 불과했다. 그 순간 세상의 욕망이 아무 덧없음을 깨달았다.
이후 청년스님은 절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거리를 방황하다 어떤 아줌마를 만났다. 그 아줌마는 구원으로 인도하는 곳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했다. 청년스님이 따라간 곳은 어느 상가건물 지하였다. 앞에는 십자가가 놓여있고 긴 의자들과 붉은색 커튼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그곳을 예배당이라고 불렀다.
20여명의 사람들이 긴 의자에 앉았을 때 십자가가 새겨진 긴 옷을 입고 나온 남자가 자신을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라고 말했다. 그를 믿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다며 오직 자기에게 매달려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청년스님은 그 남자의 말에 큰 감명을 받았다. 갈 데 없는 영혼을 이끌어 준 참다운 선지자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부터 청년스님은 예배당에서 먹고 자며 선지자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청년은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며 선지자의 충실한 개처럼 따라 다녔다. 그렇게 선지자를 섬긴지 10년이 되었을 때는 외진 곳에 아담한 예배당도 짓고 신도수도 10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때부터 선지자는 자주 예배당을 비우며 청년에게 예배를 인도하게 하고 운영까지 맡겼다. 청년은 부 선지자가 되어 그동안 선지자에게 보고 배운 대로 신도들을 관리하게 됐다.
그러던 중 신도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선지자가 여신도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느 여신도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인데 선지자의 집에 따라 갔다가 은혜를 베풀어 준다며 옷을 벗겼는데 빠져나왔다는 내용이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존경하고 믿었던 선지자가 여자의 몸을 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신도들을 대상으로 캐물어 본 결과 여러 명의 입에서 똑같은 말이 나왔다. 선지자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고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청년은 10여명의 신도들과 힘을 모아 선지자에게 따졌다. 그런데 선지자는 오히려 역정을 내며 여신도에게 성스러운 은혜를 내렸는데 감히 대드는 것이냐며 반대파들을 쫓아내 버렸다. 선지자를 옹호하는 측근들의 공격은 더욱 매서웠다.
할 수 없이 청년은 반대파 10여명을 모아 허름한 상가 지하에서 다시 예배당을 시작했다. 청년 스스로 선지자가 되어 신도들을 인도했다. 그 청년이 바로 남 선지자였으며 배운 대로 자신 이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아무나 선지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남 선지자의 신도들은 시간이 갈수록 한명씩 떨어져 나가더니 결국 모든 신도들이 예전 선지자에게로 돌아가 버렸다. 신도들은 예전 선지자의 카리스마와 위압적인 말씀에 이끌렸던 것이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남 선지자는 짐을 싸서 계룡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자신에게 권능이 없다면 어느 신도도 따라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동굴에서 촛불 하나 켜고 일 년 동안 기도를 올렸다. 절대적인 존재에게 권능을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에 힘썼다.
바람이 세차게 불던 칠흑 같은 밤이었다. 동굴 틈으로 귀신소리처럼 울리던 바람소리 속에서 남 선지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음산하고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한 존재의 목소리였다. 기도를 올리고 있던 남선지자는 무서워서 눈을 뜰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위압적인 존재가 그의 눈앞에까지 다가와 그를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남 선지자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어둠속에 살고 있는 악마다. 나를 받아들이면 너는 강력한 힘을 가질 것이다.”
남 선지자의 마음속에 똑똑히 들리는 소리였다. 그의 절대적인 존재가 바로 눈앞에서 느껴졌지만 무서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
“네가 나를 받아들이면 세상이 너의 것이 되리라. 나를 영접하라. 나를 주인으로 모셔라.”
“네, 당신을 주인으로 모시겠습니다. 당신을 영접하겠습니다.”
무서움에 바들바들 떨던 남 선지자가 악마를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귀신소리 같던 바람과 함께 어둠의 존재가 단번에 사라졌다. 그제야 비로소 남 선지자가 눈을 떴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날부로 산을 내려온 남 선지자는 외딴 농가를 하나 얻어서 다시 예배당을 만들었다. 어디서 소문을 듣고 왔는지 금방 10여명의 신도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에게 절대적인 존재를 만났던 체험을 들려줄 때면 신도들의 마음이 열리는 모습이 보였다. 감동을 받은 신도들은 더 많은 신도들을 데려왔다.
그런데 남 선지자가 기도하는 시간이 되면 원인모를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소리 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이고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 사는 신이다. 나를 영접하라.”
그 목소리는 눈을 뜨자마자 없어졌다. 다시 눈을 감으면 똑같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남 선지자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목소리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속삭이는 소리를 30여명의 신도들이 기도할 때 모두 들을 수 있게 됐다. 한 사람만의 환청이 아니었다. 모든 신도들이 동시에 듣는 분명한 목소리였다. 남 선지자는 신도들에게 들리는 목소리가 주인님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계룡산에서 영접한 절대적인 존재이며 어둠의 신이라고 소개했다.
어둠의 신은 신도들의 정신을 완전히 지배했다. 그 어떤 명령이라도 내리면 따를 수 있는 신도들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선지자가 주인님의 명령을 신도들에게 전달했다.
“이제 우리들의 주인님이 오라고 하십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몸을 버리고 깨끗한 영혼을 주인님께 바치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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