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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재 산
[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11호] 2012년 05월 30일 (수) 10:25:25 서영태 기자 ssytt00@naver.com

5월6일 오후2시 국회의원에 당선된 현석주가 검정색 세단 뒷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운전기사가 부드럽게 몰고 있는 차안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아름다운 선율에 얹혀 흘러나오고 있다.
차창 밖에는 오월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이름 모를 꽃들이 듬성듬성 피어있고 앞에 보이는 야산에 분홍색 진달래가 보일락 말락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고 있다.
현석주는 선거운동기간에만 잠깐 이사를 오기는 했었지만 정작 집은 서울 강남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서울에서 출발해서 최현범을 만나러 내려가는 길이었다. 두 사람은 3일간의 여행을 약속했었는데 오늘에야 겨우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동안 현석주는 이것저것을 생각하고 있다. 우선 최현범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예전에 한의원을 운영했었다는 그가 어떻게 지역사회를 장악하게 되었을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시청, 경찰서, 언론, 시민단체에 이어 최근에는 종교계까지 장악하려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과연 이 모든 게 최현범 혼자서 가능한 일인가. 그런데 최현범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더 문제였다. 지역사회에서 내로라하는 명성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는 생쥐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비유를 하자면 김정일 앞에 선 북한주민들 같이 한 결같이 충성을 맹세하는 분위기였다. 왜 사람들이 최현범에게 그렇게 깍듯이 대하는 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또 다른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은 최현범의 추종자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엄연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을 무시하고 오로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아직까지도 제재를 받지 않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이 지역에서는 법까지도 통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자신의 당선을 위해 어떤 수단이라도 다 동원하는 추종자들을 보고 현석주는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서울 정도로 목표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래서 현석주는 진작부터 3일간의 여행을 하자고 연락이 왔었지만 일부러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밀어왔던 것이었다.
왠지 그들에게서 사악한 악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어서 본능적으로 피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검정 세단은 청수마을로 들어서 저택 앞에 멈춰 섰다. 마을 청년 10여명이 대기하고 있다가 현석주를 맞아준다.
트렁크에서 여행 가방을 꺼낸 기사가 청년들에게 넘겨준 후 3일 후에 다시 오겠다는 인사와 함께 청수마을을 빠져나간다. 청년회장 민주혁은 현석주에게 무슨 여행인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단지 가장 특별한 여행을 준비했다고만 했다. 해외여행이라면 공항에서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이곳까지 내려와서 여행을 출발하자는 말은 국내여행일 것 같았다. 그래봤자 현석주에게는 별로 특이할 게 없을 것이었다.
저택 현관문을 열고 거실에 들어갔지만 최현범은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국회의원이 집을 방문했는데 얼굴은 내밀어야 예의 아닌가.
현석주는 낯빛이 조금 불편해지려는 찰나 옆구리 쪽에 강력한 전기충격이 퍼져 나가면서 서서히 동공이 풀렸다. 이제 서 있을 힘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후 비밀의 방으로 끌려간 국회의원 현석주는 신경독성물질이 주입되고 3일간의 환각여행을 체험한다. 그리고 최현범을 그의 절대적인 주인으로 영접한다. 이제 현석주가 궁금했던 미스터리가 풀렸다. 왜 그의 추종자들의 태도가 그랬었는지 알게 됐다. 그들의 주인님은 살아있는 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최현범이 국회의원을 추종자로 만들려 했던 데에는 자신의 지배력을 전국화 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지역사회를 지배하는 데에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아직까지는 한 자치단체에 한정된 지배자일 뿐이었다.
그의 목표는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었으므로 전국무대로 영향력을 넓혀나가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었다. 그래서 현석주를 점찍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에 당선시킨 것이었다.

추종자가 된 국회의원 현석주에게 주인님이 명령한 첫 번째는 그동안 고위공직자로 활동하면서 모은 재산을 전부 바치라는 것이었다.
30여 년간 현석주가 모은 재산은 현금, 부동산, 골프회원권, 주식까지 다 합쳐서 100억 대가 넘었다. 각종 청탁의 대가로 거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만 투입한 현금이 50억 정도였으니 50억 정도의 재산이 남아있었다.
청수마을 청년들이 그의 재산을 넘겨받으러 갔을 때에는 100평대에 이르는 고급빌라에서 현금만 20억이 나왔다. 모두 사과박스로 봉합해서 봉고차에 가득 실었으며 집문서, 땅문서 등을 몽땅 가져왔다. 절대적인 악마를 주인으로 모신 현석주는 그의 영혼뿐만 아니라 모든 재산까지도 다 빼앗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남편의 알 수 없는 행동에 현석주의 부인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남편이 국회의원에 당선됐을 때만해도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평생 공무원 부인으로만 조심해서 살았었는데 이제는 국회의원의 부인이 되어 떵떵거리며 살게 될 줄 알았다. 돌아켜보면 부인 선거기간에 불안했었다. 무엇보다 평생 벌어들인 재산 중에 거액이 나갔을 때 그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그런데 한 번 선거판에 뛰어든 남편은 집안에다 쌓아둔 현금을 겁 없이 쓰기 시작했다. 그 많았던 현금은 자꾸 줄어들기 시작했다.
현석주의 행동에 불안을 느끼던 아내는 지금이라도 포기하자며 타일러도 보고 앙탈을 부려보기도 했었지만 남편의 명예욕은 끝이 없었다. 그렇게 아까운 돈 50억이 들어간 끝에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거액을 주고 산 영광이나 다름없었다. 아내는 그래도 거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모든 현금과 부동산까지 어떤 청년들에게 넘겨준 남편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완전히 미친 사람이 아니라면 저렇게 까지 할 이유가 없었다.
현석주의 아내는 그날로 집을 나가버리게 된다. 국회의원 현석주의 이상한 행동에 출가한 자식들도 모두 등을 돌려버리고 오로지 홀로 큰집을 지키고 살게 된다. 아무도 그를 이해해줄사람이 없었다.

청수마을 저택 비밀의 방은 갈수록 쌓여가는 현금 때문에 더 이상 쌓아둘 공간이 부족해졌다. 매일 줄을 잇는 청탁자들에게서 받아들인 현금만 100억 원이 넘어섰다.
죽은 정 회장과 김정철 시장에게서 받은 현금이 총 150억에 이르렀다. 또한 현석주에게서 받은 현금이 70억에 이르렀다. 이뿐만 아니라 청수교회에서 800명의 신도들이 매주 낸 헌금 중 일부가 저택 비밀의 방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이렇게 쌓인 돈이 수백억대가 되다보니 그 양이 엄청나서 비밀의 방에만 가둬두기에는 너무 비좁아지고 있었다.

이후 역시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 시민단체연합회장 유희석이 제안을 하게 된다. 차라리 저축은행 하나를 인수해서 그 곳에 막대한 현금을 쌓아두면 이자도 붙고 주인님의 세상지배를 가능하게 할 자금을 관리할 수 있다는 발상이었다. 최현범이 생각할 때 그 발상은 상당히 참신한 것이었다. 앞으로 재산은 계속 늘어날 것이며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해질 것이었다. 이참에 저축은행을 지배하게 된다면 그곳을 통해서 더 많은 재산을 불릴 수 있을 것이리라. 그러나 최현범은 정상적인 금액을 들여서 저축은행을 인수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것을 뺏어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의 추종자들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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