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6월5일 저녁8시 세일용역회사 회의실.
맨 앞자리에 앉은 키 작은 사내가 출입문 쪽에 차렷 자세로 나란히 선 3명의 양복사내들에게 보고를 듣고 있다. 사내들은 3일간 청수마을에 붙들렸던 자들이다.
「저희들은 저택 창고에 묶여있었습니다. 그들은 겁을 주는 이외에는 별다른 위협은 없었으 며 우리 회사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절대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저택의 주인을 만나보았었나?」
3명의 사내들에게 키 작은 사내가 다시 물었다.
「저희들은 그걸 알 수도 없었고 눈까지 가려져서 어디가 어딘지도 몰랐습니다.」
키 작은 사내는 3명의 조직원들에게서 쓸만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워낙 튼튼하게 보안을 유지하는 조직임이 분명했다.
이 때 청수마을에 대한 정보를 알아오라고 명령했던 다른 조직원들이 회의실에 들어온다. 10여명의 조직원을 이끌고 있는 구역 책임자가 키 작은 사내에게 보고한다.
「청수마을 저택을 근거지로 2년 전 만들어진 청수교가 우리의 적인 것 같습니다. 이들은 신흥 사이비종교집단으로 이미 청수마을을 완전히 장악했고 지역언론, 시민단체, 저축은행, 교회, 정치인들에게 대단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추종자들만 해서 이미 수백 명에 이른다고 하고 권력자들 중에도 포섭된 자들이 여러 명이며 그들이 살아있는 신으로 받드는 인물이 최현범이란 노인입니다. 현재 청수마을 저택에 살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이제서야 키 작은 사내에게 고급정보가 들어온 것이다.
그들의 정체는 사이비종교집단이었으며 적의 수장은 최현범이란 노인이었던 거다. 어떻게 신흥 집단이 2년여 만에 그 정도의 영향력을 과시하게 된 것인지는 미스터리였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의문은 풀리고 있었다. 고문했던 여직원이 불었던 말들도 이해가 되어 진다. 한 노인네가 살아있는 신 행세를 하며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키 작은 사내가 포섭하려 했던 국회의원도 청수교 추종자일 것이었다. 그래서 주인님께 물어봐야 한다는 엉뚱한 답변을 했을 것이었다.
결국 청수교 놈들이 여직원을 포섭해서 가짜 성폭행 사건을 저지르고 현직 국회의원을 떨어뜨렸던 것이다. 그리고 당선된 자를 청수교 추종자로 만들어 조종하고 있다. 정황상으로 사실에 가장 근접한 시나리오다.
키 작은 사내의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다시 한 번 최현범이란 자가 특별하게 보인다. 그는 어떤 마술을 부려서 추종자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한편으로는 부러운 생각까지 든다.

한 시간 후 세일 용역회사 사무실에는 3명의 양복 사내들이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평소 이 회사는 밤 시간이 되면 두 세 명의 사내들만 남겨두고 조직원들은 거래처로 외근을 나갔다. 각자 무전기를 휴대하고 있어서 비상시에는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체계가 잘 잡혀있었다. 사무실을 지키는 3명의 사내들은 3일간 청수마을에 붙잡혀 있었기 때문에 사무실에 앉아 쉬라는 배려가 있었다. 그러나 3명의 사내는 이미 청수교 마술에 걸려 영혼을 지배당하고 있었다. 청수마을에서 적의 심장에 은밀히 침투시킨 트로이목마였다.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주인님은 그들에게 회사 최고 책임자를 납치하라고 명령했다. 3명의 사내는 절대 반항할 수 없는 압박감에 이끌려 세뇌당하고 은밀하게 작전을 세우게 된 것이다. 지금 사장실에는 키 작은 사내 한명 밖에 없다. 사무실에는 자기들 이외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 시간이 일을 치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3명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서 사장실을 노크한다.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와 함께 잽싸게 들어간 두 명이 키 작은 사내의 양쪽 팔을 붙잡고 한명이 가슴 쪽에 강력한 전기충격을 가한다. 몇 초간 발버둥 치던 키 작은 사내가 뻗어버린다.
거래처에서 돌아오던 간부가 사무실 앞에서 한 사내를 업고 승용차에 밀어 넣는 3명의 조직원들을 목격한다. 이상하게 생각한 간부는 30여 미터 거리를 뛰어서 가까스로 승용차 운전석 문을 잡고 열어젖히자 안쪽에서 조직원의 단검이 배를 찌른다. 순간적으로 힘이 빠지며 땅바닥에 주저앉는 간부를 뻔히 바라보던 조직원이 재빨리 문을 닫으면서 액셀을 밟는다.
단검에 배를 찔린 간부가 정신을 차리고 무전기를 입에 갖다 댄다.
「큰형님이 납치당했다. 여기는 회사 앞, 빨리 도로를 봉쇄해라.」
긴급무전을 받은 조직원들은 평소에 훈련한 대로 사무실에서 나오는 모든 도로를 재빨리 가로막는다. 용역회사 조직원들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맡은 구역으로 통하는 길을 봉쇄하는 훈련을 받았다. 이 훈련은 다른 조직에서 침투해서 소란을 일으킬 수도 있고, 관리업소에서 사고 친 손님이 도망 갈 수도 있기 때문에 다목적으로 대비를 해둔 것이었다. 실제로 관리업소에서 행패를 부리다 도망치던 작자들 때문에 길목을 막아 처리했던 적도 많았다. 보호비를 받는 조직에서 이 정도의 서비스를 해주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큰형님을 납치한 승용차가 300여 미터 골목을 내달리자 가로막는 승용차가 정면에 나타난다. 급하게 후진하고 차를 돌려 또 300여 미터를 달리자 트럭이 정면을 꽉 막는다.
동서남북으로 뚫린 길을 다 막아선 것을 알자 사내들은 결심한 듯 정면을 막고 있는 승용차에 돌진해서 충돌한다. 막고 있던 승용차가 확 밀려나긴 했지만 사내들의 승용차 시동이 꺼지면서 보닛이 유리창을 가려버린다. 이때 재빨리 다가온 조직원이 운전석 문을 열고 사내를 끌어내리고 몽둥이로 사정없이 내려친다. 뒷문까지 열어젖힌 다른 조직원들이 나머지 사내들을 몽둥이로 내려친다. 3명의 사내들이 반항하며 단검을 꺼내들었지만 몰려든 조직원들의 몽둥이세례를 견디지 못하고 길바닥에 뻗어 버린다. 다행히 큰형님은 다친 데가 없이 정신을 차린다. 조직원들은 큰형님을 병원에 옮기고 3명의 배신자들을 지하철창에 가둔다.
이렇게 큰형님 납치 미수사건은 막을 내린다. 훗날 조직원들은 이날 일을 전설적인 청수마을 2차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날 저녁 12시가 다되어서야 세일 용역회사 지하실로 키 작은 큰형님이 들어온다.
아직도 그는 전기충격의 여운이 남아서 온 몸이 찌릿찌릿하게 느껴진다. 조직을 배신한 세 명의 사내들은 1단계 고문으로 몽둥이세례를 당하면서 한 시간 째 참아내고 있었다. 아직 진실을 말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단계로 올려 의자에 묶어 놓고 전기를 흘려보낸다. 점점 강도를 올려나가자 세 명에게서 비명소리가 원초적으로 울려나온다. 그러나 아직도 진실을 말하길 거부한다. 3단계로 올려 고춧가루 물을 얼굴에 붓자 살려달라는 비명소리가 요란하게 메아리친다.
그들은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나 고통 속으로 빠지길 여러 차례 반복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제 마지막 고문이 남았다. 지옥보다 더한 고통을 준다는 살 태우기 고문을 견디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빨갛게 달궈진 전기인두가 세 사람의 가슴팍에 닿자마자 고기타는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며 냄새가 독하게 코를 찌른다.
자신의 살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광경을 두 눈으로 지켜보는 사내들이 겪을 공포는 도저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참혹한 것이다. 이윽고 한 사내가 사실대로 말하겠다고 소리 지른다.
「우리에게 어떤 물질을 주사기로 투입했습니다. 그 후 너무 무시무시한 지옥을 직접 보게 되었는데 세상에서 전혀 체험하지 못한 무서움이었습니다. 그 무서운 공포에 저는 철저하게 굴복하고 살려달라고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차라리 생명을 끊어버리고 벗어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때 어둠의 세계를 다스리는 주인님을 영접하면 구원해주겠다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제 영혼과 생명을 모두 바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분은 완전히 저의 정신을 지배하고 계십니다. 저희들은 그분이 명령한대로 큰형님을 납치하려 했습니다. 그분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저희들의 운명입니다.」
배신한 사내가 사이비종교 추종자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어떤 물질이 주사기로 투입됐다는 것인데 그 물질이 추종자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분명했다.

다음날 새벽5시 한 대의 검은 봉고차가 3명의 배신자를 실은 채 용역회사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간다.
2년 전에도 배신한 조직원이 발각되어 어디론가 끌고 떠난 적이 있었다. 키 작은 사내는 배신한 직원을 배달만 해주면 상부에서 다 알아서 처리한다고 했다. 2년 전에 배신한 조직원은 관리업소에서 매달 200만원씩 따로 현금을 챙기다 뒷덜미가 잡혔다. 그 후 키 작은 사내가 검은 봉고차에 실어 어디론가 데리고 간 후 아무도 그 조직원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언젠가 한 번은 간부 한 명이 그 배신자에 대한 소식을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키 작은 사내는 자신도 배달만 했지 그 뒤로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 일에 대해 조직원들 사이에서는 괴소문이 떠돌았다. 어떤 작자의 말에 의하면 아무도 모르는 무인도에 갇혀 평생 동안 중노동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어떤 작자의 말에 따르면 이미 바다 깊은 데에 가라앉아 물고기 밥이 됐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조직원들은 매우 정직하게 일하게 됐다. 시킨 대로 일만 잘하면 공무원 두 배 월급에다 퇴직금도 챙겨주는데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굳이 배신할 이유도 없었다. 무엇보다 배신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정직해 질 수 밖에 없었다.
키 작은 사내는 오늘 새벽에 전기충격을 먹여 기절시킨 3명의 배신자들을 검은 봉고차에 실어 나가면서 자신은 상부에 배달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도 3명의 배신자들은 영영자취를 감출 것이었다.

한편, 청수마을 저택에서는 새롭게 세뇌된 3명의 추종자들에게서 연락이 없자 거사에 실패했음을 알게 된다.
청수교의 주인 최현범은 또 하나의 기대를 하고 있었다. 밤의 세계 최고 책임자를 데려올 수 있다면 멋지게 세뇌시켜 줄 생각이었다. 그를 추종자로 만들 수만 있다면 밤의 세계까지 지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패로 돌아가자 아쉬움이 컸다. 아마 3명의 추종자들은 그들의 법칙에 따라 어디론가 사라질 것이 틀림없었다.
이제 밤의 세계에서도 청수교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두목까지 납치하려한 시도에 상당히 당혹하여 예전처럼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만약 그들이 살벌한 고문을 통해서 청수교의 정체에 대해 정보를 얻었을 수도 있다. 완전한 정보는 아니겠지만 최현범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아냈을 것이다.
비밀의 방에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 최현범에게 청년회장 민주혁의 전화벨 울린다.
「주인님, 배신한 여자를 어떻게 처리할까요.」
「우리 청수교의 법칙이 있잖아! 자살 명령을 내려줘.」
청수교의 배신자들은 살려주지 않는 것이 법칙이었다. 그 처리 방법 중에서 가장 깔끔한 것은 자살이었다. 이미 정태섭의 아들 정인주가 패륜을 저지르고 자살을 택한 것도 청수교의 처리방법이었다. 배신자는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사악한 악마의 지배에서 벗어날 방법은 목숨을 끊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오후 한 처녀가 원룸에서 목을 맸다는 소문이 시내에 퍼진다. 그 여자는 전직 국회의원 여직원이었는데 성폭행사건 후 견딜 수 없어서 스스로 목을 맸다는 소문도 이어진다. 여론은 처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다시 한 번 전직 국회의원을 비난하는 쪽으로 모아진다. 그녀의 죽음으로 진실은 철저하게 가려지고 사람들의 입소문만 며칠 떠돌다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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