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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부녀회장- 2편
[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222호] 2013년 01월 16일 (수) 12:04:15 서영태 기자 ssytt00@naver.com


「아니, 우리 신도들이 무슨 일을 했다고 시장님을 어렵게 만들겠습니까?」
김 시장은 남 선지자에게 자초지종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다시 한 번 왕국 건설과 청수바람교의 번창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으니 이번 사건만 잘 처리해달라고 간청한다. 말을 다 듣고 난 남 선지자는 끌끌 혀를 차면서 중얼거린다.
「하늘의 운이 다했습니다. 그동안 시장님의 편에 있던 하늘의 뜻이 이미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어찌 운명을 거역하려 하십니까? 이제는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운명을 조 용히 받아들이시지요.」
무당의 예언처럼 들리는 말을 던져놓고 남 선지자는 일어나서 내실로 올라가버린다. 당황한 얼굴 표정이 되어 남 선지자를 수차례 부르던 김 시장은 경비원의 몸에 밀려 현관 밖으로 밀려난다. 자치단체장의 지위에 어울리지 않게 일개 경비원에게 떠밀려 쓸쓸하게 발길을 돌리고 만다.
청수마을을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마치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 두렵고 떨리는 길이다. 이미 세상에서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현직 시장이 면장과 측근을 시켜서 부녀회장들에게 거액을 전달했으니 얼마나 큰 뉴스가 되어 사람들의 입이 오르내리고 있겠는가? 이제 더 이상 김 시장의 울타리가 될 사람들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권력을 누려왔던 김 시장이야말로 권력계의 속성을 잘 알고 있다. 서로 관계가 좋을 때야 헤헤거리며 서로 돕고 살자며 별별 덕담들을 건네지만 문젯거리라도 생기면 마치 전염병이 옮을라 아예 접근을 차단해버리고 높은 울타리를 쳐버리는 것이 권력자의 속성이 아니던가. 자기보호 본능이 탁월한 권력자들이 김 시장을 전염병환자 보듯 할 것은 분명하다. 누구 하나 도와주려 손을 내밀지 않을 것이다. 혼자 광야에 서서 세찬 비바람을 다 맞아야 한다.

깊어가는 가을날 낙엽이 떨어지는 도로를 달리는 승용차 운전대를 잡은 김 시장의 눈앞에 새파란 저수지가 펼쳐진다.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신 물결이 너무 아름다워 보이며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저기 부드럽게 출렁거리는 물결 속에 들어가면 모든 시름을 잊어버리고 편안한 세상으로 들어갈 것 같다. 그 세상에는 더 이상 가슴 아픈 일도 모욕스러운 일도 남을 속이고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도 모두 없을 것 같다. 그냥 운전대를 감싼 손에 약간의 힘만 주면 그 편한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 검은 승용차가 그 포근하고 아름다운 물결 속으로 서서히 날아가 모습을 감춘다.

10월17일 오후2시 검정승용차가 청수마을 입구 저수지에 빠졌다는 신고를 접한 119구급 대에서 신속히 출동했지만 수면 아래 깊이 잠긴 승용차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그래서 관내 스쿠버다이빙 업체를 수소문해서 3명의 다이버들이 출동한다.
산소통을 메고 다이버들이 수색한 지 30분 만에 승용차와 함께 운전석에서 죽은 중년 남자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러나 승용차 문이 열리지 않아서 사체를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잠시 구조작업이 중단되고 크레인을 불러들인다. 거대한 크레인차량이 굉음을 내며 다이버들이 지정한 곳으로 고정시킨 뒤에야 다이버들이 문 속으로 잠수해서 크레인과 차량을 연결시키느라 고생한다.
물속에서 작업하던 다이버 한 명이 승용차와 약간 떨어진 수초 사이에서 또 다른 2구의 사체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그 사체들은 커다란 돌멩이에 밧줄로 묶여 있으며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살점이 떨어져 나간 채였다. 다이버들이 급하게 수면위로 올라와 출동한 경찰관에게 상황을 설명한다. 결국 단순 교통사고에서 살인사건으로 확대되어 버린다.
해가 넘어갈 무렵에야 저수지변 마른 땅으로 옮겨진 사체 3구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난다. 오늘 저수지로 돌진한 검은 승용차에서 꺼낸 사체의 신원은 금방 밝혀진다. 아침에 중앙지 1면을 장식했던 기사의 주인공 김정철 시장이다. 그런데 다른 두 구의 사체는 워낙 많이 훼손되고 부패되어 있어서 누군지 알아 볼 수가 없다. 결국 과학수사팀에서 지문과 DNA를 채취해서 신원을 밝혀내기로 한다.

김 시장의 죽음은 빠르게 세상에 알려져 나간다. 이번만큼은 시청 출입기자들도 서로 경쟁적으로 사건을 자세하게 보도해나간다. 어떤 매체에서는 「수백억 뿌린 큰 손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대문짝만한 기사가 떴다.
「수천억 원대의 재산가 소문난 김 시장은 부녀회장들에게 2천만 원씩 뿌릴 정도로 큰 손 이었다. 3선을 노리던 김 시장의 자금줄은 엄청나게 오른 땅값이었다. 개발지역의 중심에 있던 땅값이 뻥튀기하자 비싼 값에 현금을 만들어 각 마을까지 큰돈을 뿌려서 수백억 원 의 현금이 풀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언론보도는 더욱 선정적으로 치달아 개인의 사생활까지 파헤치기 시작한다. 어떤 매체에서는 「수천억 자산가의 죽음과 여인들」이라는 제목으로 확인되지 않는 보도까지 게재된다.
「재산이 많기로 소문난 김 시장의 주변에는 항상 여성들의 접근이 많았다. 이번에 거액을 건넨 부녀회장들도 김 시장과 비밀리에 만나던 애인들이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익명의 제보자에 따르면 이번에 주로 거액을 건넨 사람들이 각 마을 부녀회장들이었는데 그 중 5명 정도가 1억 원 이상의 현금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으며, 이를 시기한 여인들이 질투심 에서 김 시장을 고발했다고 한다. 앞으로 숨겨진 여인들의 존재가 어떻게 밝혀질지 귀추 가 주목된다.... 」
보도 내용을 보면 거의 익명의 제보자를 내세우거나 소문 따위를 내세워서 마치 사실인 양 포장하고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정확한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선정적이고 화제가 될 만한 기사를 써야 독자의 수도 늘어나고 영향력이 커진다는 속셈에 언론사에서도 부정확한 기사를 잘 보이는 지면에 올려주고 있었다.

이처럼 출입기자들의 태도가 갑자기 바뀐 것은 물주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매달 월급 주듯이 이정수를 통해 지급되던 현금의 실제 주인이 누구라는 사실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다들 잘 알고 있었다. 누가 돈의 주인인지를 알게 된다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이정수는 언론단체 사무국장을 맡아서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했다. 이정수의 말에 의하면 각계각층에서 받은 언론발전기금이라고만 했지 누가 얼마나 되는 기금을 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정수가 매일 만들어서 돌리는 보도자료를 보면 최현범과 김 시장에 우호적인 기사뿐이었다. 그러다가 몇 개월 전부터는 김 시장에 관한 기사가 도배되어 올라왔다. 눈치가 빠른 기자들은 누가 실제 물주인지 확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물주가 사고로 죽었으니 출입기자들을 지배하던 돈의 위력도 사라졌다. 그들이 원래부터 잘 하였던 것 같이 먹잇감이 있으면 늑대같이 물고 늘어지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언론단체를 통제하고 있던 이정수의 입장이 애매해졌다. 눈치 빠른 기자들이 물주가 죽자 마음껏 물어뜯고 있는 판인데 처량하게 구경만해야 할 팔자가 됐다.
처음에는 최현범을 주인으로 섬기다 나중엔 김 시장에게 복종하며 살아왔는데 갑자기 주인이 없어져버렸다. 살아있는 신으로 섬겼던 최현범이 이정수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을 적엔 그저 맹목적인 복종이었다. 절대적인 존재가 두려워서 다른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가 시키는 일을 밤낮으로 열심히 해야 했다. 항상 주인님의 무서운 눈이 지켜보는 것 같아서 두려움에 견딜 수 없는 세월이었다. 그러다 갑작스런 주인님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 서서히 그 무서운 지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인님은 신의 존재가 아니던가. 언제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 아닌가. 일단은 배신자들에게 맞서서 주인님이 돌아올 날을 대비해야 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 이정수는 여전히 어둠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정수 뿐만 아니라 김 시장도 마찬가지 상태여서 힘을 합쳐 배신자들에게 대항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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