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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출 판
[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555호] 2013년 03월 17일 (일) 19:38:43 서영태 기자 ssytt00@naver.com


다음날 오후3시30분 태안 백화산 자락.
산길로 뚫린 마을도로를 타고 올라가니 맨 끝집에 적벽돌로 지어진 2층 주택이 자리 잡고 있다. 나무는 듬성듬성 보이고 하얀 암석이 많아 멀리서 보면 하얀 산처럼 보이는 백화산. 마을과는 떨어진 적벽돌 2층집 앞에는 검정 승용차가 한 대 세워진 것이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잠시 후 5명의 점퍼를 입은 사내들이 2층집 동서남북을 둘러싸고 소리를 죽여 가며 수신호를 교환한다. 정문에서 두 명의 점퍼 사내들이 대문으로 다가가서 초인종을 누른다.

「누구세요?」

「네. 경찰에서 나왔습니다. 잠시 물어볼게 있어서요.」

1분 뒤 현관문에서 30대의 아줌마가 천천히 걸어 나온다. 젊은 아줌마가 대문도 열어주지 않고 문틈으로 「무엇 때문에 오셨느냐」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집 뒤쪽에서 여러 사내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나는 쪽으로 뛰어간 두 점퍼 사내는 다른 세 명의 점퍼 사내에게 제압당한 30대 사내를 발견한다. 이 30대 사내는 경찰이 왔다는 말에 뒷담을 넘어 도망치려다 지키고 있던 형사들에게 제압당한 것이다.
붙잡은 사내를 승용차에 태운 박 형사와 동료들은 사내를 경찰서로 데려가서 당장 조사를 시작한다.

「네가 불지 않으면 혼자서 다 덮어쓰게 되는 거야.
그 노인네를 어떻게 했는지 말해!」

「제가 죽이지 않았어요. 저는 운전만 했단 말입니다.
다른 놈들이 노인네를 죽여서 산에 묻었다니까요.」

조사를 시작한 지 10시간 만에 붙잡힌 사내가 불었다. 이제 실마리가 풀려가고 있었다. 첫 번째 살인사건의 실마리가 풀렸기 때문에 수사는 한층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된 것이었다. 민주혁 어머님을 납치해서 살해까지 한 범인들은 청수마을 옆 동네 선후배 사이들로 4명이었는데 3억 원의 거액을 준다는 약속에 일을 저지르게 됐다고 실토했다. 그런데 누가 시켰는지에 대해서는 가장 연장자이던 선배만 알고 있는데 형사들이 급습했지만 눈치를 채고 도주해버렸다. 그가 갈만한 곳은 다 찾아보았지만 전혀 소득이 없어서 배후가 누구인지 밝혀내지는 못했다.

한편, 같은 시각 박 형사와 이연준이 교도소에 찾아가서 민주혁을 면회한다.
어머님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민주혁은 깊은 슬픔을 참지 못하고 오열했다. 그의 눈 속에서는 분노가 끌어 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민주혁은 어머님 때문에 감추고 있었던 이야기를 두 사람에게 털어놓는다.
모든 잘못은 최현범이란 노인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이상한 주사약을 이용해서 정태섭 회장 부부를 세뇌하여 정신을 지배해왔던 최현범이 야심을 품고 청수마을 청년들까지 모두 세뇌했다고 한다. 이윽고 모든 마을 청년의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한 최현범이 남 선지자를 데려와서 청수교를 설립하고 이상한 주사를 투입해서 신도들을 늘려갔는데 첫사랑교회 목사가 청수교를 반대하자 그를 납치해서 죽여 버렸다는 것이다. 또한, 전직 국회의원 여직원까지 납치하여 세뇌해서 성폭행사건을 조작했는데 진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그 여직원까지 잔인하게 살해해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청수교 내에서 남 선지자가 배신자가 되어 주인이던 최현범과 신미연까지 살해하여 가야산 깊숙이 매장했는데 남 선지자, 유희석, 이정수와 함께 민주혁이 모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었으며 밤의 세계와의 사건, 서주저축은행사건, 시장선거조작사건 등을 모두 실토했다.
효자였던 민주혁에게 있어서 어머님의 죽음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도 남을 충격이었으며, 잔인하게 어머님을 죽인 자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민주혁은 이제 적극적으로 모든 진실을 밝혀서 청수교 무리들의 잔혹함을 세상에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민주혁의 고백을 듣고 난 박 형사와 이연준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너무 엄청난 사건이었으며 지역사회 거물들이 연관된 대단히 중대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신중하게 증거를 수집해야했다. 민주혁의 고백은 단숨에 김재진이 누명을 쓰고 있다는 사실까지 증명할 것이었다.
박 형사는 너무 거대한 사건과 맞닥뜨려서 멍한 상태이면서도 욕심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렇게 중대한 사건을 풀어낸다면 훈장까지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연준은 박 형사의 선배답게 차분한 어조로 조언한다.

「절대 서두르지 말고 확실한 물증을 잡아야해.」

11월9일 오전10시
경찰서 면회실에서 서인애가 기다리고 있는 사이 유리벽 너머에서 초췌한 모습의 김재진이 모습을 나타낸다.
김재진이 긴급체포 된 이후 소식을 듣고 달려 온 서인애가 매일같이 면회를 와서 용기를 복 돋워 주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김재진은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더욱 많은 사랑을 주어야 되겠다고 다짐한다.

「재진 씨와 함께 쓴 책이 일주일 후에 전국 서점에 깔린대요.
어제 출판사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어요. 우리 책이 나오면 재진 씨 누명도 벗겨질 거예요.」

「저는 인애 씨에게 정보만 주었을 뿐 그 책은 인애 씨 작품이에요. 하여튼 1년 동안 고생 해온 책이 나온다니 너무 축하해요.」

「재진 씨, 절대로 희망을 버리지 말고 힘내세요. 꼭 진실이 밝혀질 거예요.」

짧은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 서인애의 아름다운 눈에는 어느새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 앞에서는 차마 보일 수 없던 눈물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이 흘러내린 것이다.

서인애는 며칠 전 이연준과 박 형사가 민주혁의 고백을 들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곧 진실이 밝혀져 김재진이 풀려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날자만 계속 갈뿐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연준이 박 형사에게 계속 재촉하고 있었지만 박 형사 입장에서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서장의 허락이 떨어져야 공식적인 수사가 진행될 텐데 위에서는 기다리라는 지시만 반복될 뿐이지 더 이상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청수교 무리들의 거대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지역사회 곳곳의 권력자들을 포섭했던 것이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 분명했다. 박 형사처럼 말단 직원이 무얼 어찌해보기에는 애초부터 너무 거대한 골리앗을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연준이 민주혁의 고백 내용을 녹음했다며 서인애에게 들려주었을 때는 이미 장편소설을 마감해서 출판사에 넘긴 후였다.
하지만 민주혁의 고백은 청수교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열쇠라는 것을 알고 서인애는 급하게 마무리 부분만 교정해서 출판사에 다시 보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꾸며진 장편소설의 결론이 극적으로 완성된 것이었다. 그 마지막 부분에는 김재진이 뒤집어 쓴 살인사건의 진짜 범인을 지목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인애는 기필코 결론을 바꾸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오로지 연인을 구해내겠다는 일념이 담겨진 작품이었다.
어젯밤 출판사에서는 서인애에게 연락이 왔었다. 작가가 교정한 대로 바뀌어서 일주일 안에 전국 서점에 배부된다는 말도 들었다.
소설을 마감하고난 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장편소설이라는 말에 출판사에서는 대단한 관심을 보였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일하는 출판사에 완성된 작품내용을 보냈을 때 며칠이 지나서 편집장에게 연락이 왔었다.
이 정도의 작품이라면 베스트셀러가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실화와 허구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서사구조, 독자의 마음을 움켜잡는 세련된 문체가 너무 매력적이라며 독점계약을 요구해왔다. 이에 서인애는 초판 발행으로 20만부를 고집했다. 그녀에게는 김재진의 무죄를 알리겠다는 바람뿐이었다. 계약금도 필요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잠시 생각하던 편집장은 서인애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바로 편집, 인쇄 작업에 들어갔다. 이제 20만부의 책이 전국 서점과 인터넷 서점에서 팔려나갈 것이었다.
서인애가 쓴 책의 제목은 「무서운 마을」이었다. 김재진이 <주간충남>에 연재하다 중단 된 기사제목을 그래로 소설제목으로 옮긴 것이었다.
김재진이 못다 이룬 일을 마무리 하고픈 마음을 담아 꼭 진실을 밝혀 내기위한 서인애의 몸부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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