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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베스트셀러
[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555호] 2013년 03월 27일 (수) 10:50:35 서영태 기자 ssytt00@naver.com

11월15일 오전9시10분 경찰서 형사1계.
박 형사는 어젯밤부터 야근하느라 밤을 새웠는데 부스스한 얼굴로 아침을 맞자마자 황당한 지시가 떨어진다. 다른 경찰서로 전근을 가라는 통지서를 받은 것이다. 큰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박 형사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명령이다. 도대체 왜 이 시점에 이해할 수 없는 전근 통지서가 떨어지는지 알 수 없다.

민주혁에게서 청수마을 사건의 내막을 모두 알아낸 박 형사는 상부에 비밀리에 보고해서 공식수사명령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날짜만 갈뿐 위에서는 기다리라는 이야기만 흘러나왔다. 시급한 사건인데도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재촉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근이라니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일이었다. 방금 전에 과장님한테 볼멘 목소리로 항의도 해봤지만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조용히 따르라는 은밀한 말만 들을 수 있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박 형사였다.

박 형사가 이연준을 어젯밤 선술집에서 만났을 때 그는 술에 취해선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왜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하지 못하는지, 왜 편집국장을 풀어주지 않는지에 대해서 불만을 터트리며 박 형사의 멱살을 잡았었다. 겨우겨우 진정시키고 집까지 바래다주었는데 이제 그에게 어떻게 변명한단 말인가. 진실을 알면서도 손쓰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시킨단 말인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깊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한편, 이날 오후부터 출판사에서 전국 서점으로 배부한 장편소설「무서운 마을」이 서점에 깔리고 있었다. 이 출판사는 작가와의 약속 때문에 초판 20만부를 발행하느라 큰 모험을 했다. 보통 5만부 안쪽에서 초판을 찍어보고 시중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관례인데 이토록 무리를 한 것은 순전히 편집장의 고집이었다. 그의 느낌에는 오랜만에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 충분한 흥행성을 갖췄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투자하기로 결심했으며 신문, 라디오. 방송에까지 광고가 들어갔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시간이 지나면 독자들의 선택을 받느냐, 엄청난 빚만 지느냐 결정이 날 것이었다.

이날 오후6시 전국서점 판매량을 하루에 두 번씩 체크하던 출판사 편집장에서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하루 일찍 배포한 서울권 서점에서 「무서운 마을」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형서점에서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단 번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책 주문이 밀린다는 전화까지 걸려왔다. 다음날 아침에는 전국 서점에서 「무서운 마을」을 추가 주문하는 전화가 쇄도한다. 오랜만에 대박을 낸 편집장은 당장 추가 발행을 결정하고 인쇄소로 달려간다. 적자나는 출판사가 단번에 큰돈을 벌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어서 편집장의 마음이 흥분에 빠지고 있었다.

출판사 편집장의 다급한 전화를 받은 서인애도 오랜만에 기뻐하며 추가발행을 함께 축하했다. 시골도시에도 어제부터 「무서운 마을」이 진열대의 가장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깔려 여러 명이 구입하는 걸 목격했다. 그녀에게는 작품이 잘 팔려나가는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그 속에 담겨진 진실을 세상 사람들이 더 많이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진실을 알게 되면 분명히 정의가 세워질 것을 믿고 있었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김재진의 누명을 벗기는 것이었다. 매일매일 그를 면회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상황도 알려주고 출판된 책을 통해 세상에 진실이 퍼지고 있다며 희망을 전해주었다. 그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디에도 가지 않고 연인을 지키겠다는 마음을 다지기도 했다. 두 사람은 구치소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손도 맞잡을 수 없었지만 더욱 애틋한 사랑을 눈빛으로 교환하고 있었다.

「무서운 마을」이 출판되자마자 거의 모든 통계조사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했다. 이와 함께 인터넷에서는 새로운 논쟁이 시작된다. 이 책의 내용 중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작가의 상상인지 모호하다며 각 사건별로 진실과 거짓을 가리기위한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이윽고 각 포털사이트에서 「무서운 마을」이 검색어 1위에 오르며 방송뉴스와 신문, 잡지에까지 분석보도가 이어진다. 놀라운 것은 출판 된지 며칠사이에 국민적인 관심거리가 되어 뜨거운 논쟁이 일어나서 쉽게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공중파 방송국 시사고발프로에서 「무서운 마을」을 근거로 한 사건추적이 방영되었는데 예고편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지역구 국회의원 현석주를 인터뷰 한 순간은 압권이었다.

「무서운 마을에서 소재를 삼은 사건은 대부분 사실입니다.
저도 그들의 피해자이며 전 재산을 빼앗기고, 가정까지 파괴되었습니다. 사정당국에서 적 극적으로 나서 그들을 응징해야 합니다.」

그의 인터뷰 내용은 「무서운 마을」진실공방을 단번에 사실로 선회하게 만들어 언론사마다 경쟁적으로 보도에 나선다. 책에서 워낙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어서 이를 근거로 더욱 깊숙한 보도가 나갈 때마다 독자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결국 검찰청에서도 특별수사팀을 구성해서 청수바람교 사건에 대한 전반적인 수사에 들어간다. 갑자기 중앙언론 기자들과 수사팀의 방문이 이어지면서 시골마을이 극도의 긴장에 휩싸인다. 시청, 경찰서, 서주저축은행 등 「무서운 마을」책에서 언급된 내용을 추적해서 하나하나 진실 확인에 들어가자 지역사회가 발칵 뒤집어진다. 그러나 청수마을에 대한 기자들의 취재나 수사팀의 조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7천여 명에 달하는 신도들이 건설장비나 농기구를 들고 외부의 접근을 무서운 기세로 막고 있었다. 만약 그들에게 접근했다가는 죽을 지도 모른 살기가 느껴졌다. 청수마을에는 전혀 접근할 수 없었지만 민주혁과 관련 인물들의 실토로 청수마을에서 시작된 수많은 사건의 실체는 대부분 밝혀졌다. 수사팀에서도 유희석, 이정수 등 피의자들을 잡아들여 혐의를 순서대로 확인해 나가고 있다. 사건과 관련된 증거자료도 대부분 확인되고 있다. 피의자들의 실토에 따라 가야산 깊은 산중에서 최현범과 신미연의 썩다 남은 사체도 발견된다.

워낙 중대한 사건이라서 경찰에 특별 수사본부를 차린 수사팀은 하루 두 차례 수사중간 브리핑을 실시했는데 참여한 기자가 100여 명을 넘어서 전국의 매체들이 취재경쟁을 벌이는 치열한 현장이 된다. 기자들에게는 청수마을에서 대치하고 있는 7천여 명의 신도들과 그들과 맞서는 2천여 명의 경찰병력 사이에 긴장 넘치는 대결이 중요한 뉴스거리였다.
유사 이래 경찰과 종교집단 간에 이렇게 치열한 대치는 처음이었다. 건설장비와 농기구로 무장한 신도들은 이상한 주문을 단체로 외우면서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일부 신도들은 화염병까지 만들어 심심치 않게 경찰 쪽에 던지는 바람에 두 명의 전경이 화상을 입고 병원에 후송되기도 했다. 양쪽 진영은 50여 미터를 사이에 두고 더 이상 간격이 좁혀지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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