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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진 압
[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888호] 2013년 04월 03일 (수) 12:06:04 서영태 기자 ssytt00@naver.com



11월21일 오후3시 청수마을 입구 대치현장.
여전히 신도들과 경찰병력의 대치가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고 긴장감이 가득하다. 경찰 쪽에서 조금만 앞으로 나아가면 어김없이 화염병이 날아오고 건설자재로 만든 새총을 이용해서 볼트 같은 쇳덩어리가 총알처럼 파고든다. 벌써 후송된 전경이 20여명에 이르고 있다. 한쪽에서는 취재경쟁에 뛰어든 50여명의 기자들이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는 가운데 이연준과 서인애의 모습도 보인다. 서인애의 손을 잡고 옆에 선 남자는 김재진이다. 누명을 벗은 그는 어제 오후에야 풀려나서 서인애의 품에 안겼다. 어젯밤에는 감격에 겨워 잠을 이루지 못하던 두 사람은 새벽녘에야 늦은 잠에 빠져들었었다.

「인애 씨, 이 현장에 꼭 와보고 싶었어요.
지난 1년간 우리에게 다가왔던 시련의 시작점이 이곳이었잖아요.」

「보세요. 결국은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가 승리하고 있어요. 사악한 악마의 추종자들이 마지막으로 발악하고 있는 저 모습을 보세요.」

「그러나 이곳이 전혀 희망이 없던 곳은 아니었어요.
우리 두 사람의 인연이 맺어졌던 소중한 곳이기도 하죠. 우리에게 무서운 시련이 닥치지 않았다면 인연도 맺어지지 않았을지 몰라요.」

두 사람에게는 청수마을이 악몽의 시작이면서도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가야산 자락마을에서 끔찍한 악마가 사람들을 구렁텅이로 몰아가기도 했지만 그에 대항했던 두 사람이 맺어진 소중한 기회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한 시간 정도 현장에 머물다 이연준이 모는 승용차를 타고 낙엽이 거의 떨어진 가로수를 지나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방송뉴스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청수마을 대치정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최고위층에서 더 이상 끌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내리고 강제 진압을 선택한 것이다.

다음날 새벽3시 대낮과는 달리 고요한 적막이 흐르던 청수마을에 뚜두두두.. 헬기소리가 사방에서 접근해온다. 헬기에서 강력한 빛줄기가 수십 개 내려쬐더니 특공대 사내들이 중무장을 한 채 밧줄을 타고 내려온다. 벌써 수백 명이 땅을 밟고 나서 최루탄을 쏘기도 하고 곤봉을 휘두르기도 한다.
청수마을 사면에서는 경찰병력이 방패를 앞세우고 밀려든다. 잠깐 새벽잠에 빠졌던 신도들은 기습에 놀라 정신을 차리고 건설장비와 농기구를 앞세운다. 이미 경찰병력도 수천 명이 더 투입되어 양쪽이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헬기로 내부에 침투한 특공대 때문에 신도들은 내외의 적을 맞이해야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신도들의 숫자는 7천여 명이었지만 내부에 몰려있던 여자들과 노인, 어린아이를 제외하면 건장한 사내들은 3천여 명에 불과해서 수적으로도 경찰 쪽이 훨씬 유리하다.
전면전이 시작되면서 이곳저곳에서 화염병이 불타오르고 양측 간 육박전이 치열하게 펼쳐진다. 특공대의 목표는 8층까지 뼈대가 올라간 성전건물이다. 이곳에 남 선지자와 지도부가 몰려 있기 때문에 기필코 점령해서 빠른 승리를 쟁취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수백 명의 특공대들이 최루탄과 곤봉을 앞세워 진압에 나섰지만 성전을 수성하는 수백 명의 경비대도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들도 방독면과 전기충격기로 무장하고 한 시간째 육박전을 벌이고 있다. 결국 특공대는 최후의 수단으로 실탄까지 발사하면서 진압에 나서 성전을 접수할 수 있었다.

짓다만 성전 꼭대기 층까지 밀고 올라간 특공대는 30여명의 사내들이 집단 자살한 현장을 목격하고 만다. 이들은 남 선지자의 핵심 추종자들로 최후를 장렬하게 마친 것이었다. 그들의 중앙에는 청산가리를 넣은 피 대접이 여러 개 놓여있었다.

개벽7시가 되어서야 강제진압에 대한 상황보고가 수사본부에 올라왔다. 신도 측 피해는 사망 51명, 부상 502명이었으며, 경찰 측 피해는 사망8명, 부상 208명이었다. 엄청난 참극이었으며 나중에 수사본부장이 책임져야 할 사안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날 검거된 신도들 중에 남 선지자는 없었다. 경찰 측 확인결과 성전 지하3층에는 비밀지하통로가 뚫려있었는데 가야산 숲속까지 연결되어서 남 선지자가 도망친 것으로 보였다.
남 선지자를 호위하고 있던 경비대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핵심 추종자 30여명에게 자살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죽음을 통해서 하늘을 지배하는 신을 먼저 맞이하라고 마지막 사명을 하달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죽음을 지켜본 남 선지자는 지하통로를 통해서 빠져나갔다. 또 한 가지 수상한 점은 저택지하 현금창고에 들어있었다는 수천억의 현금도 몽땅 사라졌다. 그 비밀은 자살한 핵심추종자들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모든 비밀을 간직한 채 하늘로 떠나버린 것이다.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남 선지자가 미리 수천억을 해외로 빼돌려 남미 쪽의 어떤 섬을 샀는데 그곳에서 또 다른 왕국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소문에 따르면 아프리카 중 어느 한 부족을 세뇌시켜서 작은 왕국을 만들었는데 빼돌린 수천억의 돈으로 왕처럼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엄청난 희생을 당한 신도들은 사건 후 1년이 지난 후에도 2천여 명이 청수마을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믿음이 생겨났다. 남 선지자가 하늘나라로 승천하여 하늘을 다스리는 신과 만나 곧 세상을 지배하러 내려온다는 것이었다. 신도들은 그 날을 대비하여 끝까지 청수마을을 사수해야하며 모든 힘을 다해서 왕국을 건설할 사명이 있다는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사라진 수천억의 왕국건설 자금도 남 선지자가 하늘을 다스리는 신에게 바치기 위해 예물로 드렸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신도들은 청수마을에 협동농장까지 만들어 공동으로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기도 하고 남는 농산물을 내다 팔아 왕국건설에 보태기도 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협동공장을 만들어 옷, 장갑 등 생필품을 제작하여 수익을 남겨 이 모든 자금을 왕국건설자금으로 사용했는데 비록 더디기는 했지만 성전건축이 13층까지 올라가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신도들의 생활은 궁핍했다. 모든 재산을 다 처분해서 왕국건설자금으로 바쳤기 때문에 손에 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나마 왕국백성이 살 주택을 짓는다며 짓다만 1천여 세대 중 어느 정도 형태가 갖춰진 500여 세대를 골라잡아 기거하고 있었는데 전기시설이나 도배, 난방시설 등이 전혀 갖춰지지 않아 차가운 방에서 일가족이 겨울을 나고 협동농장에서 길러낸 농산물을 배급받아 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사건 후 1년 만에 수많은 신도들이 믿음을 버리고 떠났지만 500여 세대 2000여 신도들은 절대로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왕국건설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가고 있었다. 왕국만 다 완성되면 세상이 거대한 물과 엄청난 바람으로 멸망하고 살아있는 신이 강림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누구도 언제쯤 왕국이 건설될지 확실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대규모 강제진압사건 후 1년 만에 15만여 명이 사는 시골도시는 청수마을만 빼고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시장이 뽑혀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경찰서장이 부임한지 1년이 다가오고 있으며 국회의원 현석주도 스스로 사임하고 보궐선거를 통해 새로운 인물이 뽑혔다. 그 외에 주요 기관장들도 청수교 추종자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인물들이 차지하면서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밤의 세계는 키 작은 사내가 은밀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이제 1년 전의 대혼란은 서인애가 쓴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을 통해서만 존재할 뿐이다. 이 책은 1년간 총 800만부가 팔려나가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로 뽑히고 각종 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서인애라는 신예작가는 한순간에 유명 작가가 되어 이곳저곳에서 강연요청이 쇄도하는 바람에 다음 작품을 집필할 시간도 내지 못할 정도였다.

그동안 지역 언론계에도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 매주 5만부씩을 찍어내던 영향력 1위 매체 <주간서해>가 문을 닫고 이정수가 보관 중이던 수십억의 자금은 몰수되었다. 청수교 무리의 표적이었던 <주간충남>은 진실을 끝까지 지켜낸 언론으로 독자들에게 인정받으며 다시 영향력1위를 회복하여 인터넷 방송국까지 운영하며 10명의 기자들이 김재진과 함께 활동하고 있었다. 출입기자들의 태도도 많이 바뀌어서 예전의 관언유착은 많이 사라졌지만 전혀 없어졌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일부 기자들이 잘못된 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월31일 이른 저녁 안면도 꽃지해수욕장. 유난히 부드러운 모래사장에 앉아 365일 중 마지막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두 연인.
연인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던 해님을 시기하는 듯 뒷산너머에는 어둠이 내려깔린다. 해님의 붉은 속살처럼 변한 서인애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김재진은 그녀의 곡선이 우아하게 느껴지는 어깨선 위에 손을 올리고 끌어당긴다. 저 수평선 너머 붉게 타는 태양이 넘어가듯이 두 사람이 당했던 고통과 시련도 수면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난 재진 씨가 꼭 승리하리라 믿었어요. 언젠가는 진실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믿었던 거죠. 시간이 걸릴 뿐이었죠.」

「인애 씨의 희망이 날 흔들리지 않게 만든 거예요. 사실 난 너무 두려워서 도망치려고 했어요. 그때마다 인애 씨가 희망을 말했고 난 다시 용기를 냈던 거예요.」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 재진 씨가 얻은 것은 뭐죠?」

「바로 내 곁을 지키는 인애 씨죠. 그리고 뱃속에 들어있는 우리들의 아기 아닐까요?」

황혼에 붉게 물든 백사장을 걷기 시작한 두 사람은 마치 한 사람처럼 꼭 껴안고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제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백사장이 어둠에 잠길 때까지 모래밭을 걸어간다. 시련 속에서 자란 인연이 쑥쑥 커서 새로운 새싹을 잉태했음을 축하하며 느린 춤을 추듯이 가볍게 스텝을 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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