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야우 박영춘

다육식물처럼 생긴 서양 난 꽃

몇 년 전에 선물 받은 꽃

은빛 그리움 부추기던 꽃

꽃이 진 후 별 볼 일 없어

버리려다 차마 버리지 못하고

책꽂이 옆에 그대로 앉혀놓고

잊을만하면 한번 씩 보살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난 꽃

성냥개비만한 꽃대를 내밀어

허공을 휘휘 내젓는다

나를 찾는가싶어 가까이 다가가니

손가락을 오물거리더니

성양개비 다섯 개를 부채꼴로 편다

열손가락 끝에 꽃봉오리가 맺혔다

기다리거나 바라지도 않았던 그리움

그 꽃봉오리를 자주 들여다본다

깨알만 하다가 쌀알만 하다가

이제 콩알만큼 꽃봉오리가 켜졌다

차마 팽개쳐버릴 수 없어

삼년을 나와 함께 했다

꽃이 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새카맣던 그리움이 다시 돌아오듯

연분홍 꽃을 나에게 선물하려 한다

아, 그리움이여

이 꽃을 누가 나에게 선물했던가

나에게서 버림을 받았더라면

삼년 전에 보았던 그 고운 자태

다시는 또 못 볼 줄 알았는데

네가 나를 잊지 않고

이렇게 또 가슴을 뭉클하게 흔드는구나

봉오리에 무엇이 그리 볼그스름 가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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