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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조운선, 600년 긴 잠에서 깨어나
태안군 마도 발굴 조선시대 선박, 정밀조사 진행 중
[1호] 2015년 08월 26일 (수) 09:51:22 류병욱 기자 jmhshr@hanmail.net
   
 
  ▲ 마도4호선 출수된 분청사기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소재구)는 지난 4월 22일부터 태안군 마도 해역에서 조선시대 선박으로 기대를 모은 바 있는 마도4호선에 대한 정밀발굴조사를 진행 중이다.

중간 조사결과 마도4호선에서는 ‘광흥창’이 적힌 목간, ‘내섬’이 적힌 분청사기 등 총 300여 점의 유물이 출수되었으며 유물과 선박 구조 등을 통해 조선 시대 조운선(漕運船)임을 최초로 확인했다.

마도4호선은 마도 북동쪽 해역 수심 9~15m에 파묻혀, 선수가 남동쪽을 향해 있고, 우현 쪽으로 50° 기울어져 있다. 잔존 규모는 길이 13m, 폭 5m, 선심 약 2m이고, 밑판 3열, 좌현 외판 4단, 우현 외판 11단, 선수ㆍ선미재도 일부 남아 있는 평저선(平底船)이다. 조선시대 선박 구조를 그려놓은 『각선도본(各船圖本)』에서 보여주는 조운선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선수 판재가 조운선은 가로로, 군선은 세로로 그려져 있다.

과거 확인된 고려 시대 선박은 선수 판재가 세로로 설치됐지만, 마도4호선의 경우 선수 판재가 가로로 설치되었다. 또한, 좌우 외판재를 연결하는 가룡목(加龍木)이 약 2m 간격으로 6곳에 설치되었는데, 고려 시대 선박들에서 비교적 얇은 원통목을 사용했지만, 마도4호선에서는 두껍고 강한 횡강력재를 사용해 선체의 견고함을 높이고 더욱 세련된 가공 기술을 선보여 한층 진일보한 조선 시대 선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 조운선의 항로를 보여주다- ­ 화물의 물표인 목간 출수


선박 내부에서 목간 60여 점도 함께 출수되었다. 목간 대부분에는 발신처인 나주와 수신처인 광흥창을 뜻하는 ’나주광흥창[羅(亽)州廣興倉]‘이 적혀있으며, 이는 전라남도 나주 영산창(榮山倉)에서 거둬들인 세곡 또는 공납품을 관리의 녹봉을 관리하던 조선 시대 국가 기관인 광흥창으로 옮기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전에 발굴한 마도1, 2, 3호선은 대부분 당시 권력자나 개인에게 보낸 화물들을 운송하던 선박으로 조운선 여부가 명확하지 않지만, 마도4호선은 광흥창이라는 국가기관으로 보내는 공물을 적재했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 최초의 조운선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일부 목간에는 ‘두[斗]’, ‘보리[麥]’ 등 곡물의 양과 종류를 표기하고 있어 마도4호선의 목간은 화물의 물표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 조선 시대 관청의 실마리 ­ 분청사기에 적힌 ‘내섬(內贍)’

출수된 분청사기 대접과 접시는 140여 점으로 그 중 3점에 ‘내섬(內贍)’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조선 시대 궁궐에 물품을 관리하던 내섬시(內贍寺)를 의미하는데 ‘내섬’을 분청사기에 새기기 시작한 때는 관청의 명칭을 표기하도록 하는 1417년(태종 17)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자기에 집단국화문과 승렴문(繩簾文, 새끼줄문양)이 새겨진 점, 중앙에 문양을 성글게 새긴 제작 기법 등을 살펴보면 15세기 초반 제작 양식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마도4호선은 1410~1420년대(태종~세종)에 물품을 싣고 항해하다가 마도 해역에서 침몰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분청사기는 10점 혹은 20점 단위로 포갠 후 60점의 분청사기들을 성글게 엮어 만든 망태기에 담아 포장하였다. 자기를 기형별로 포갠 후 4개의 나무 막대를 길게 덧대 새끼줄로 묶었던 고려 시대 포장 방법과는 다른 방식이 처음 확인되어 흥미를 끈다.

이 밖에도 세곡으로 선적한 벼와 보리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5권 「전라도 나주목 토산」 편에 공물로 기록된 대나무, 숫돌 등도 함께 출수되었다. 또한, 곡물을 담았던 가마니인 ‘섬(石)’의 형태를 조사하기 위해 매장상태 그대로 통째 인양을 시도하였다. 앞으로 보존처리를 마치면 조선 시대 도량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10월, 마도4호선에서는 18세기 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가 출수되었다. 그런데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발굴연대를 측정한 결과, 고고학적 층위와 유물의 제작 시기를 고려했을 때 마도4호선의 분청사기와 백자와의 연관성이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마도4호선이 침몰당한 후 파묻히고, 그 위쪽에 백자와 관련된 선박이 침몰 후 백자가 다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이번 마도4호선 발굴조사의 중간점검을 통해서 최초의 조선 시대 조운선 구조를 확인하였다. 함께 출수된 목간과 분청사기 등의 유물들은 조선 시대 초기 공납제도의 모습과 당시 공물의 운송방식인 ‘조운(漕運)’에 대해 최초 확인된 실증 자료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또한, 최초의 조선 시대 선박으로 해양사, 경제사, 도자사, 선박사, 문화사 등 다양한 분야에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마도4호선 발굴조사는 올해 10월 말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서해안신문 류병욱 기자


   
 
  ▲ 내섬명 분청접시  
 
   
 
  ▲ 내섬명 분청발  
 
   
 
  ▲ 목간과 곡물  
 
   
 
  ▲ 분청다발 수중 노출상태  
 
   
 
  ▲ 마도4호선 브리핑  
 
   
 
   
 
  ▲ 대나무 수중 노출상태  
 
   
 
   
 
  ▲ 출수된 분청사기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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