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6년차 김상범 씨 부부를 만나다


29일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들 사이를 가로질러 난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달려 올라가니 누렁이 여러 마리가 먼저 반긴다.

한낮 뜨거운 햇살 아래 부부가 고운 색으로 물든 붉은 고추를 따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김상범 씨(69세)부부가 이곳 당진시 구룡동 32번지에 귀농하여 농장을 가꾼 지가 올해로 6년 째 다. 1300여 평 밭 둘레로 대추와 감이 익어가고 밭두렁마다 고구마며 고추며, 야콘, 초석잠, 돼지감자, 서리태가 익어가고 있다.

하우스 아래 거두어들인 참깨더미가 쌓여있고, 막 캐낸 땅콩은 너구리랑 두더지 덕분에 수확이 시원치 않다고.

농장 한켠에는 5키로그램이 넘음직한 닭들이 주인장이 직접 빻아 만들어 넣어준 우렁이 껍질 먹느라 손님 온 지도 모른다.

밭두렁 건너편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언덕에는 염소가 풀을 뜯고, 그 옆으로 양봉장에 꿀 물어나르는 벌들이 주변을 맴돌고 있다.

고향이 전남 해남인 김상범 씨는 교직생활 40년을 마치고 이곳 당진에 귀농했다. 고향인 해남이 아닌 이곳으로 귀농한 이유를 묻자, “고향에 집도 비어 있고 논밭도 있다. 14년 전부터 노년을 농사 지으며 살리라 계획했었는데 마지막 3년을 당진에서 근무하면서 자식들 살고 있는 수도권이 가깝고, 물 좋고 인심까지 좋은 이곳 당진에 귀농하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한다.

귀농을 결심하기 까지 어려움은 없었는지 묻자, “아내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다. 인천을 떠난다는 것이 아내에게는 두려움이었다. 5년 동안 먼저 내려와 주말부부로 지내다가 설득해 아내가 결국 용기를 내어 작년에 내려와 함께 농사 지으며 지낸다. 지금은 아내가 더 좋아한다.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른다.”며 아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웃는다.

귀농하여 지내면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물었다.
“나는 전문 농사꾼이 아니다. 퇴직하고도 기간제 교사로 3년을 더 일하면서 농사를 지어야 했기 때문에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어린 정원수랑 과실수를 마구잡이로 심었다. 일부 죽기도 하고 나무가 어리니 수확도 없고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나무와 나무 사이에 채소를 심었다. 수확해서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래서 죽은 나무들을 정리하고 밭가로 옮겨 심었다. 그리고 이것 저것 심고 가꾸면서 이제는 진짜 농사꾼이 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쌀 빼고 자급자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다못해 콩 하나라도 가꾸려면 배워야 했다. 먼저는 밭 가까운 마을 분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이분들이 물어봐도 알려주지도 않고 나를 경계했다. 아마 땅 투기꾼 정도로 오해 했던 것 같다. 내가 먼저 다가갔다. 마을 모임이 있으면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연가를 내고 휴가를 내서라도 함께 동참했다. 친해지려고 불러주지 않아도 가서 함께 도왔다. 모심으면 모판을 들어 날라 주고, 고추심고 있으면 함께 심으면서 이분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오히려 지금은 땅도 다 갈아주고 내 농사의 반을 마을분들이 해주신다.”고 했다.

또 “농업기술센타에서 귀농교육을 받았다. 농사도 배움의 끝이 없다. 끊임없이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찾아다녔다. 이곳 저곳에서 교육 받고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귀농에 성공하려면 농촌사람들과 자세를 낮춰 맞추라는 것이었다. 알아도 모른 척, 있어도 없는 척, 잘났어도 못난 척 하라고 배웠고 그대로 실천했더니 이렇게 잘 정착했다.”며 웃는다.

편하게 살아야 할 노년에 농사 짓는다는 것, 힘들지 않냐 물으니, “이곳에서 농사 지으면서 병치레가 잦던 내가 매우 건강해졌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 있나? 그렇지만 내가 손수 가꾼 것을 나와 자식들, 지인들까지 챙겨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아느냐”고 되묻는다.

“남들처럼 제초제 뿌리면 풀 뽑지 않아도 되니 편할 것이다. 그치만 내가 먹고 자식들 먹는데 제초제 뿌릴 수 있나? 그러니 매일 풀과의 전쟁이다. 예초기를 들고 살아야 하고, 호미를 손에서 놓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풀을 뽑는다.

농사 지어 수익은 얼마나 되는지 물으니, “고추도 농약을 최소한으로 하기 때문에 벌레도 많이 먹는다. 수익을 위한 거라면 이렇게 농사 지으면 망한다. 지인들이 와서 어떻게 농사짓는 지 눈으로 보고 예약을 한다. 배추도 고추도 욕심 부리지 않고 예약을 받아 적당히 심는다. 남은 것 우리가 먹고 또 남으면 이웃에 나눈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제일 큰 행복이 뭔지 아느냐?”고 묻는다. 나눔이란다.

나누며 사는 즐거움에 푹 빠진 김상범 씨는 천상 선생님이다. 수세미 열매를 알 리 없는 취재팀과 동반한 동네 아이들에게 껍질을 까 보이며 설명하고, 넝쿨을 제끼고 가뭄에 바짝 말라버린 땅을 파 고구마를 캐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아이들은 우렁이껍질을 절구에 넣고 빻아 닭들에게 갖다 주는 체험도 해보고, 처음 해보는 절구질이며 삽질이 힘겨우면서도 신기하기만 하다. 아이들과 함께 판 두렁에 겨우내 먹을 수 있게 시금치랑 상추를 심을거란다.

김 씨는 성당초등학교 책읽어주는 할아버지다. 아침 일찍 등교하는 아이들을 도서관에 모아 놓고 책을 읽어준다. 또 방과 후 부모님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책을 읽어주고 때로는 마술을 보여주기 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이제 내년이면 70이에요. 내년부터는 복지관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하며 봉사하고 싶다. 퇴직하고 무슨 봉사를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웃음치료사, 레크레이션지도사 자격증도 따고 마술도 배웠다. 악기도 배우고 있다. 이분들을 웃게 해드리고 싶다.”며 소박한 웃음을 웃는다.

마지막으로 귀농하려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생각을 많이 해보고 결정해야 한다. 특히 부부가 같은 맘이 아니라면 반대한다. 부부가 같은 마음이더라도 정말 농촌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자세, 촌놈이 돼야겠다는 각오 없으면 어렵다. 그렇지 않나? 깨끗한 도시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이 흙 묻고 불편하면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거든. 또 먼저 살아보고 집도 지어야지 집 먼저 지어놓고 내려왔다가 적응 못하고 실패해 돌아가는 것 많이 봤다.”면서 “특히 나처럼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힘들어서 못 견딘다. 지난 5년 동안 돌을 추려냈는데도 지금도 트랙터로 밭을 갈면 돌이 튀어 오른다. 인내심이 필요하단 얘기다.”라고 일러준다.

오동통하게 살 붙은 대추열매만큼이나 인심 가득한 부부의 얼굴 위로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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