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산시문화회관 부지에 세워져 있는 기념비

[서산을 빛낸 인물] 판소리 명창이자 가야금병창 및 산조 명인- 심정순(沈正淳) 선생

 

승무는 승복을 입고 추는 춤이어서 ‘중춤’이라고도 불렸는데 반드시 불교의식에서 승려가 추는 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불교 쪽에서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불교와 무관하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춤 가운데 하나인데 충남도 무형문화재 제 27호 심화영의 승무가 대표적이다.

승무의 대가인 심화영 선생은 2009년에 작고했으며 지금은 외손녀인 이애리씨가 대를 이어 전수조교로 그 맥을 잇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심화영 선생의 부친 심정순(沈正淳, 1873-1937) 선생에 대해서는 현대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이자 가야금병창 및 산조의 명인이다.

본명은 심춘희(沈春喜)이다. 세습예인 집안 출신으로, 피리와 퉁소의 명인 심팔록(沈八綠, ?-1883)의 아들이자, 가야금병창과 산조의 명인 심상건(沈相健, 1889-1965)의 숙부, 가야금풍류·단소풍류·가야금병창·판소리의 명인 심재덕(沈載德, 1899-1967)과 가야금병창·판소리·잡가·승무의 명인 심매향(沈梅香, 1907-1927), 그리고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 심화영(沈嬅英, 1913-2009) 남매의 부친이다.

심정순 선생은 25세(1897) 무렵부터 판소리, 잡가, 재담과 가야금, 양금, 단소를 두루 익혔다고 전하는데 명확한 사승 관계는 알 수 없다. 그의 소리는 자녀들과 조카 심상건에게 전수되었으나, 심화영을 통해 극히 일부만 전승되었다.

심정순 선생 일가의 소리는 심팔록-심정순-심상건, 심재덕, 심매향, 심화영으로 여러 대를 거치면서 내포 지역 특유의 음악 어법을 확립했다. 평조를 중심으로 한 악조의 사용이나 경기 어법이 녹아 있는 선율 진행 등에서 그 가계 소리의 특색을 엿볼 수 있다.

심 선생은 30대 후반에 상경해 본격적인 국악 활동을 시작했다. 39세에 일본축음기회사에서 판소리와 가야금병창 음반을 취입했는데, 당시 음반 녹음자 중 판소리 창자는 심정순 한 명이었다고 한다. 이른바 근대 오명창에 속하는 대명창 이동백(李東伯, 1866-1949), 김창환(金昌煥, 1855-1937)에 이어 세 번째로 유성기 음반 녹음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그의 인기나 명성이 매우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초창기 유성기 음반 목록에서 그의 녹음이 차지하는 비중이 실로 상당하다. 40세에는 『매일신보』에 그의 판소리 사설이 〈강상련〉, 〈연의각〉, 〈토의간〉이라는 제명으로 연재되었다. 그가 남긴 판소리 사설은 중고제의 전승이 미약한 현대 판소리의 특징을 감안할 때, 그 자료적 가치가 더욱 높다고 할 수 있다.

42세 때 남성 판소리 창자로서는 유일하게 『매일신보』의 〈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에 소개되기도 했다. 41세-42세에 사설극장 장안사에 소속되어 활발하게 공연 활동을 했으며, 53세에 일본축음기회사에서 음반을 녹음했다. 〈적벽가〉 중 '조자룡 활 쏘는 대목'(ROYAL RECORD NIPPONOPHONE 6020 KOREAN SONG 七星壇下趙子龍弓射歌 됴쟈룡활쑈는가), 〈춘향가〉 중 '천자뒤풀이'(ROYAL RECORD NIPPONOPHONE 6098 KOREAN SONG 千字文歌 쳔쟈뒤푸리)와 '남원 사령 술주정가'(일츅죠션소리판 K226-A 남원사령슐쥬졍가 沈正順 朴春載 文泳洙) 등을 유성기 음반으로 남겼다.

심정순 선생은 20세기 전반의 대표적인 중고제 창자로, 경기·충청 지역의 향토 음악적 어법을 충실하게 구사했다고 평가된다. 평조를 많이 사용했으며, 계면조 대목에서도 평조적 진행을 보였다. 도약진행이나 장식음의 활용보다는 평탄하고 단조로운 선율을 지향했으며, 높은 음역에서 지속적으로 거뜬거뜬하게 들고 가며 소리를 했다.

 



▲ 심정순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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