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시리즈]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 오천항(鰲川港) 어촌마을

봄의 길목에서 바다 낚시꾼들이 몰려드는 보령 오천항 어촌마을엔 요즘 서해를 오가는 여객선도 붐비고 수려한 경관과 먹을거리도 풍부해 항상 넉넉하다.

이 어촌마을은 서해안고속도로 광천 나들목이나 대천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황금 들녘 사이로 난 지방도 610번을 따라 20분이면 도착하는 작은 포구마을이다.

상사봉 정상 전망대에서는 멀리 원산도 삽시도 녹도 등 서해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섬 사이를 오가는 고깃배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지는 아름다운 어촌마을 오천항.

산에서 그림 같은 이 마을을 조망하다가 내려오면 바로 찾을 곳은 충청수영성이다. 조선 초기에 설치됐다가 고종 때 문을 닫은 수군의 주둔지로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충청수영 산하에 배속된 군선과 병력만도 142척에 8000여 명이었다. 과거 오천항이 얼마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는지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성곽 대부분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성 위에서 내려다보는 오천항은 더욱 진한 풍경화 같은 냄새가 난다.

이 마을 안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다보면 아주 작은 어촌인데도 낚시 관련 가게들이 상당히 많다. 주로 배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고객들인데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낚시객들이 잡은 어류를 바로 회로 떠서 드실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가게들도 여러 곳이었다.

지난 4일 주말을 맞아 이 어촌마을을 방문한 이선주 씨(경기도 이천 거주)는 “이처럼 아름다운 항구마을이 있어서 너무 반갑다. 이곳저곳 둘러보니 볼거리가 많고 먹거리도 다른 곳보다 더 푸짐하고 저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오천항(鰲川港) 마을은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는 어항으로 역사적인 스토리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1971년 12월 21일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이 마을은 천연적으로 외부파랑을 차폐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여 바다와 육지에서 잘 보이지 않는 항구로, 역사적으로는 백제 때부터 화이포라 하여 항구로 이용되어 왔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나라와의 교역창구로 이용되었고, 고려부터 조선시대까지는 서해를 침범하는 오랑캐를 무찌르기 위해 군선이 머물렀던 큰 군항이었다.

오천항은 조선시대에 세조 때에는 충청도 수군사령부인 충청수영이 설치되어 왜구의 침탈로부터 방어하고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을 보호하던 수군기지였지만, 근대에는 서해안에 출몰하는 이양선을 감시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오천항 마을에는 많은 어류가 잡히는데 특히 키조개와 홍합이 유명하다. 잠수기어업으로 채위하는 오천항의 키조개는 대한민국 전체 생산량의 60~70% 가량을 차지한다. 이곳 잠수기 어선들은 보령 앞 바다뿐만 아니라, 멀리 경기만과 전라북도 연안까지 나가서 키조개를 채취한다. 키조개는 산란기인 7월 1일에서 8월 31일까지 2개월 동안을 제외하고는 일년 내내 채취가 가능하다.

오천항 마을은 당나라와의 교역창구로 이용되었던 항으로 역사가 깊은 문화유산들이 많다. 항 주변에는 한여름 무더위에도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냉풍욕장,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수군이 주둔했던 오천성 등의 명소가 많다. 키조개, 홍합, 광어, 노래미가 많이 잡히고 특히 잠수부들이 채취하는 키조개는 국내 최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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