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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문화와 역사 속속들이 알게 된 소중한 시간"
서해안신문문화탐방단, 이준호 서산화문화원장 초청 특강
[1호] 2019년 01월 19일 (토) 17:16:58 전미해 기자 jmhshr@hanmail.net
   
 

18일 오후 6시 서해안신문사 문화탐방단(단장 김진영)이 서산시 동문동 소재 일품해장국에서 서산문화원 이준호 원장을 초청한 가운데 특별한 강의를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서산의 문화와 역사를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하는 단원 3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박건신 사무국장의 사회로 행사가 진행됐다.

 

김진영 단장은 인사말을 통해 “서해안신문사 문화탐방단은 2018년 10월 창단 이래 첫 탐방지로 전북 전주시와 순창군 일원을 돌아보았고, 다음 달인 11월에는 백제의 숨결을 찾아서 충남 공주시 일원 탐방을 다녀왔다. 다른 고장을 돌아보는 것도 소중한 일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고장을 먼저 잘 아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고장이니까 어찌보면 개인적으로 다 돌아보기는 했을테지만 오늘 이준호 문화원장님의 특강을 통해 더 속속들이 알지 못했던 것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서 “지금은 혹한기니까 먼저 우리가 이론으로 만나보고 따뜻해지면 직접 또 함께 탐방하는 시간도 갖도록 하자.”고 말했다.

 

이어 서해안신문 최송산 대표가 이준호 문화원장을 프로필 낭독과 함께 소개할 때 회원들은 기대하는 마음을 큰 박수로 표현하며 환영했다.

 

이준호 원장은 “그동안 많은 강의를 다녀봤지만 이토록 열망하는 기대의 눈빛은 처음이다. 학생들도 특강을 나가보면 졸거나 핸드폰 들여다보고 있다. 어른들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고장의 문화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 요즘과 같은 때에 이렇게 관심을 갖고 불러주니까 되레 고맙다”면서 서산이라는 지명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강의를 이어갔다. 다음은 이준호 서산문화원장의 강의를 요약한 내용이다.

 

[우리나라는 기술은 좋은데 다양한 문화를 접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중국의 다양한 문화, 대륙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전초기지가 바로 서산이었다.

서산에서 유독 유적이 많이 나왔다. 유적을 보면 어느 정도의 크고 작은 세력이 살았는 지를 알 수 있다. 서산에서 백제시대 가장 큰 세력을 갖고 산 지역이 음암면 부장리 현재 수림미소아파트 앞에 있는 유적지가 바로 그곳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묘가 3층까지 있었다. 할아버지 묘 위에 아버지 묘를, 아버지 묘 위에 손자 묘를 썼다. 거기서 발견된 가장 큰 것이 금동관모다. 이것은 백제시대 왕밖에 못 썼다. 백제의 수도도 아닌데 이곳에서 금동관모가 나왔다. 부장리 세력이 워낙 거대하니까 왕밖에 못 쓰는 금동관모를 이곳을 다스리라 하면서 하사한 거였다. 이는 지방의 수장의 위상을 인정해 준다는 뜻이다. 금으로 만든 것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세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금으로 만든 귀걸이가 발견된 곳이 또 여미리 유적지다. 이 사실로 여미리에도 굉장한 세력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석문방조제에서 운산으로 들어오는 뱃길이 문물을 들여오는데 많이 이용됐다. 그러다보니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서산이 백제의 전초기지였다는 사실을 몰랐다. 서산이 아니었으면 어디로 대륙문물을 받아들였겠느냐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위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 서산이었다.

 

우리 서산의 해미읍성축제는 세계가 인정해 준 축제다. 대놓고 자랑하겠다. 세계축제연맹 이사장이 직접 와서 보고 놀라워했다. 그가 원더풀을 외치면서 곤장도 맞아도 보고 쳐도 보고 이것 저것 직접 다 몸소 체험해보았다. 그러더니 다음해에 자료 올리라고 했다. 세계축제연맹에서 금상 5개를 이 작은 도시 해미에 해미읍성축제에 내려 보냈다. 자랑이 아닐 수 없다.

 

해미읍성은 어떻게 생겼을까. 태종이 도비산에 세자책봉 받은 세종과 함께. 7천명 군사를 거느리고 1416년에 훈련을 나와 17일을 머물렀다. 왕이 이토록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것은 엄청난 사실이다. 조선초 태종이 충청병마도절제사영은 원래 덕산(德山)에 설치돼 있었는데 왜구의 잦은 침략에 대한 방비와 서해안의 수호가 중요시되면서 1417년 이후 해미로 이설됐다. 해미로 옮겨진 이후, 충청병마절도사영으로 개칭됐고 1652년 청주로 옮겨가기 전까지 약 230여 년간 군사권을 행사하는 거점이 되었다. 이후 호서좌영성으로 축소되면서 해미읍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해미읍성이 생기면서 날마다 들끓던 왜구들이 들어오지를 못했다. 반향산성이라고 서산해미초등학교 뒤에 올라가보면 현재 진남문까지 당시 배가 들어오면 전부 다 보인다. 100미터도 안 되는 높이인데 부석까지 다 보이니까 왜구들이 침범할 수가 없었다. 쪽배 하나라도 뜨면 다 파악이 됐다. 이곳은 군마를 대량으로 키워 조달하는 곳이기도 했다.

 

개심사는 1300년 전에 백제 의자왕의 명에 의해 지어진 것이다. 충남 4대 사찰중의 하나다.

개심사 대웅전은 정면 3간, 측면 3간의 단층 맞배집으로, 그 구조 형식은 다포집 계통과 주심포집 계통의 기법을 혼합한 절충식이다. 1484년, 성종 15년에 지어졌으며, 보물 제 1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을 보고 나서 국보84호 용현리 마애삼존불을 꼭 살펴봐야 한다. 세계적인 걸작이다. 한때 일본사람들이 버스 두 대로 왔을 때 직접 내가 안내한 일이 있다. 마애삼존불에 대해 설명이 끝나고 나니 한 80대 노인이 주저앉더라. ‘이것은 사람이 만든 것 아니다. 신이 빚은 것이다’ 하면서 놀라워했다. 일본사람들은 문화재 앞에서 감히 사진을 못 찍는다. 괜찮으니까 회장님만 특별히 한 장 찍으시라 했더니 엄청 고마워하더라. 우리는 정작 소중함을 잘 모르는데 그들은 그렇게 소중히 여기더라.

 

탐방해보면 좋은 곳이 또 보원사지 절터가 있다. 통일신라시대 절터로 사역 내에는 보물 제102호인 서산 보원사지 석조와 보물 제103호인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 보물 제104호인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보물 제105호인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 보물 제106호인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 등 보물 5점이 있다.

 

작년에 문화재청장을 불러 이곳을 국보 만들기를 추진했다. 잘못 평가돼 있음을 설명했다. 5층석탑 하나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축기법이 다 들어 있다. 기막히다. 좋은 것만 다 따서 세운 석탑이다. 그곳에서 돌아가신 탄문스님을 기린 비석이 있다. 비를 받치고 있는 귀부는 거북모양인데 꼬리는 돼지꼬리며,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이다. 용머리는 일반적으로 밖으로 향해 있는데 이곳에는 특별하게 안쪽을 향해있다. 가거든 꼭 살펴보면 좋겠다.

 

무학대사가 달을 보고 득도한 간월도도 자세히 탐방하면 좋다. 무학대사가 서산출신이라는 사실은 대단하다. 나오는 길에 인지면 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을 들려보면 좋다. 서산출신 류방택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천문학자다. 태조때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제작을 책임진 인물이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우리 서산출신이다.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바로 대산 삼길포 황금산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곳이 지금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나만 숨겨놓고 보고 싶은 산이 황금산이라고 한다. 황금산이 있는 대산은 땅 이름대로 크게 번창했다. 대산항도 함께 돌아보면 좋다.

 

돌아나오는 길에 지곡 최치원사당도 들려보면 좋다. 최치원은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다. 중국 당 나라에서 ‘토황소격문’으로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중국사람들이 최치원을 더 좋아한다. 최치원은 ‘어염시수‘를 다 갖춘 곳이 서산이라 여기고 왕에게 서산으로 보내달라고 한다. 그렇게 서산에 7년을 머물지만 사실상은 왕이 당나라에 자꾸 출장을 보내다 보니까 자리를 많이 지키지 못했다. 최치원이라는 엄청난 인물이 7년을 머문 곳이 서산이다. 부산 해운대 가보면 해운대에서 이틀 낚시 했다는데 동상 만들어놓고 기념관 만들어놓고 다 한다. 홍성은 그곳을 한번 지나가기만 했다는데도 콘텐츠를 만드는 등 별것 다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최치원 바람이 불고 있는데도 우리 서산은 꿈쩍도 안하고 있다.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데도 안일하다. 반성할 일이다.

 

몇 날을 얘기해도 끝이 없을 만큼 우리 서산의 문화와 역사는 엄청나다. 자긍심을 갖고 살자.]

 

강의를 마치고 난 후에는 탐방단에서 준비한 꽃바구니를 이준호 원장에게 전달해 감사함을 표하고 이어 만찬을 나누며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문화의 밤’을 만들어갔다.

 

강의를 들은 한 회원은 “서산에서 나고 자랐지만 오늘 새롭게 안 사실이 너무 많다. 세세하게 이야기 해주어 귀에 속속 들어왔다.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의 문화를 먼저 잘 알아 자녀들은 물론이고 이웃에게, 타 지역민들에게 자긍심을 갖고 널리 알리자. 서산의 고귀하고도 아름다운 문화와 역사를.                                           /전미해 기자

 

 

 


   
 
  ▲ 서해안신문 문화탐방단 김진영 단장  
 
   
 
  ▲ 서해안신문 최송산 대표가 이준호 문화원장을 소개하고 있다.  
 
   
 
  ▲ 이준호 서산문화원장이 특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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