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천보통공립학교 3.10학생독립만세운동 재현 현장

봄바람이 불어 쌀쌀하게 느껴지는 11일 오전 10시 당진시 면천초등학교에 태극기를 든 시민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특별한 행사가 진행됐다.

 

꼭 100년 전 충남 최초로 학생주도 3.10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이곳에서 그들의 함성을 되살리고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기 위해 지역 학생들을 비롯해 면천면민들이 재현행사를 연 것이다.

 

100주년을 맞아 첫 순서로 마련된 기념식은 그 어느 해 보다 다채롭게 펼쳐졌다. 김의중 행사부장과 김희영 문예기획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기념식은 시낭송, 3.10 만세장학금 수여, 학생대표의 독립선언문 낭독, 만세삼창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다함께 일어나 만세삼창을 외칠 때 한이 서린 함성이 메아리쳐 당진시 전체에 울려퍼졌다. 어떤 이는 감사의 눈물을, 어떤 이는 감동에 겨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기념식을 마치고 이어 면천초등학교부터 기념공원까지 이어진 재현행사 외에도 3.10만세운동을 주도한 학생독립운동가 원용은, 박창신, 이종원에 대한 추모비 제막식이 열렸다. 충남 최초의 학생주도 3.10만세운동을 발견하고 고증하는데 헌신적인 노력을 해온 유병근 선생에 대한 공적비도 함께 제막돼 의미를 더했다.

 

행사에 참여했던 한 학생은 “이번에 처음 참여했다.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직접 만세를 부르면서 그분들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면천보통공립학교 3.10학생만세운동은 충남 최초이자 광주학생항일운동보다 무려 10년이나 앞선 학생주도의 독립만세운동으로 의미가 크다. 100년 전 당시에 불과 열일곱 열아홉 살에 불과했던 원용은과 박창신은 1919년 3월 10일 일제가 봉천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고자 지정한 기념일이었던 그날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면천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원용은 학생이 3.1운동을 목격하고 당진으로 내려와 동급생 박창신, 그리고 4학년 급장이었던 이종원을 비롯한 9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면천면 동문 밖 골짜기부터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학교 정문까지 행진했다.

 

이후 면천 주재소를 향하던 학생들은 총과 칼로 무장한 일본 경찰들에게 태극기와 깃대, 만장을 빼앗겼으며, 총을 맞지 말라는 선생님들의 외침에 학생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독립만세운동은 끝이 났고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원용은, 박창신은 이틀 뒤 체포 돼 공주 형무소에서 4개 월 간 옥고를 치른 후 학적까지 말소되고 말았다.

 

당진에서는 면천공립보통학교 3.10학생독립만세운동 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학생과 지역주민들이 2007년부터 매년 3월 10일을 즈음해 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를 열며 학생들의 독립운동정신을 계승해 오고 있다.

당시 만세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면천보통공립학교는 일제가 민족정신을 말살하고 식민지 교육을 주입하기 위해 조선왕조의 상징적 의미가 담긴 면천읍성 객사를 허물고 그 자리에 지었다. 이후 같은 자리에 면천초등학교가 지어졌지만 현재 학교를 이전하고 당진시가 객사복원을 진행중에 있다.





▲ 학생대표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 추모비 제막식 모습

저작권자 © 충남인터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