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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서강 따라 애잔한 역사도 함께 흘렀네!
강원도 영월 청령포-장릉-한반도지형을 찾아서
[1호] 2019년 05월 13일 (월) 09:24:13 전미해 기자 jmhshr@hanmail.net
   
 

가정의 달을 맞은 5월 초 연휴기간 동안 고향 부모님, 어린 자녀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느라 밀렸을 일들을 잠시 미뤄 두고 10일 오전 8시 서산문화회관 앞에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었다.

 

문화탐방을 향한 열정 품은 서해안신문사문화탐방단원을 실은 버스가 당진을 경유해 강원도 영월을 향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물 채워진 논에 푸릇푸릇 이른 모를 심은 곳도 있고, 대부분의 논은 모내기 채비를 마쳤다.

 

봄을 운운하기에는 민망하리만큼 뜨거운 태양이 탐방단원들의 열정과 닮았다 느끼며 도착한 청령포 주차장에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 실은 버스들이 즐비해 이곳의 유명세를 실감한다.

 

어린 나이에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는 서강이 둘러싸고 흘러 배를 타고 건너는데 배가 다닐 정도니 수심이 깊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눈치 챌 일이다. 셔터 두어 번 누르고 나니 그새 강을 건네주고 손님 싣고 되돌아 나가는 배를 뒤로 하고 걸어 들어가는데 울창한 송림 속 단종의 애통함과 한이 나무 나무마다에 고스란히 배어 있는 듯 해 숙연해진다.

 

단종어소 마루에 줄줄이 자리 잡고 앉아 문화관광해설사를 맞이한다.

 

해설사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 단종어소는 승정원 일기의 기록에 따라 조선시대의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다. 2008년 12월 국가지정 명승 제50호로 지정됐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으로 있다가 1456년 박팽년 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되는 바람에 모두 죽임을 당하는 사육신사건이 일어났다. 다음해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돼 이곳 청령포에 유배됐다.

 

어소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들이 살았던 행랑채가 있고 어소 담장 안에 단묘재본부시유지비가 세워져 있다. 앞면에는 단종이 이곳에 계실 때의 옛터다‘라는 뜻을 가진 글이 영조대왕의 친필로 음각돼 있고, 뒷면에는 ’영조 39년 계미면 가을 어명에 의해 원주감영에서 세웠다. 지명은 청령포다‘라고 기록돼 있다.

 

해설사를 따라 300년 세월을 말해주듯 이끼 낀 금표비를 만난다. 이 비에는 1457년 단종이 사사되고 한참 뒤인 영조 2년에 세운 것으로 ‘청령포 금표’라고 한자가 음각돼 있어 단종이 유배를 와 있을 때도 출입금지구역이 적용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금표비와 단묘재본부시유지비가 세워져 옛일을 소리 없이 전하고 있었다.

 

금표비 앞에서 서서 단종이 유배생활 할 때 두 갈래로 갈라졌다는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349호 관음송을 만난다. 단종의 유배 당시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뜻에서 관음송이라 불리우게 됐다는 설명을 듣는다.

단종이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조차 없어 근심하면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를 생각하며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망향탑과 올라 한양을 그리워했다는 노산대,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에게 사역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을 시로 읊었다는 ‘왕방연 시조비’가 애잔하게 서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놋다’ 시조에 왕방연의 슬픔이 고스란히 묻어나 가슴에 사무친다.

전망대에 오르니 유유히 흐르는 기다란 서강을 마주 하고, 강물 따라 역사도 흐르고 후손의 가슴에 애통함과 애잔함도 자자손손 이어 흐른다.

 

배를 타고 되돌아 나와 도착한 장릉 앞 부근에서  영월의 특산물 곤드레나물밥을 대하고 나서 만난 중국 출신 해설사에 의하면, 단종의 장릉은 우여곡절 끝에 조성됐다. 영월에서 유배생활 중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한 단종의 시신이 영월 야산에 암매장되었던 것을 중종 11년에 와서야 묘를 찾아 봉분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능 아래쪽에는 엄흥도의 장려비와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여러 비석들이 있고, 장릉 입구에 단종의 행적을 기리는 단종역사관이 있다. 사육신 사건을 중심으로 해서 단종을 위해서 죽은 인물들을 정조 대에 배향한 배식단도 있다. 제를 올릴 때 사용했다는 영천 우물은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맑아 우물 안을 들여다보는 내내 신비로웠다.

 

이어 영월군 선암마을 한반도지형을 찾아 오르는 길은 송림이 우거져 있다. 오르고 올라 도착해 내려다보이는 전망은 이름답게 한반도를 축소해 놓은 듯하다. 1919년을 기념하는 1919개의 태극기가 펄럭이며 우리를 맞이한다. 포토존에서는 자연스레 너 나 할 것 없이 만세를 부르게 되는 묘한 기운이 흐른다.

 

산천초목이 아름다운 영월에 담긴 문화와 역사를 찾아 떠났던 이번 탐방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평상시에는 그저 스치고 지나쳤을 것을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해 알찼다는 평가가 오고 갔다.

 

한편, 다음 탐방은 6월 6일 경주 불국사 일원으로 떠날 예정이며 자세한 사항은 서해안신문사문화탐방단 김진영 단장(010-5215-4666)에게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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