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시 송악읍에 거주하는 김미영 씨(가명, 35세)는 탈북민입니다. 탈북하여 대한민국에 발을 들인 때가 25세였었으니까 올해로 꼭 10년 됐습니다. 현재 대구 남자와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고 정수기 관리사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지난 주중 정수기 필터 교환 차 방문했던 그녀에게 약간의 간식과 커피를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쩌다 자신이 탈북민이라는 것과 북한에서, 또 이곳에서 살아가며 맺혔던 가슴속 응어리들을 토해내듯 끄집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북한에서 생활할 당시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한 달 동안 중국에 있는 한 회사에서 돈을 벌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브로커를 통해 중국으로 넘어가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브로커는 이들을 회사에 연결해주지 않고 인신매매단에게 팔아넘겼습니다. 철저한 감시 속에 밭일도 하고, 식모살이도 하고,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어떤 친구는 강제로 결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2년 가까이 종노릇하며 살아오던 그는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형벌을 받더라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 여겨 자수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북송돼 6개월의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꿈은 고등학교 졸업 후 여군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이를 위한 신체검사와 심사에 통과한 상태였습니다. 방학 한 달 동안 놀기보다는 부모님께 경제적인 도움이라도 드려볼까 했던 한 소녀의 인생은 그렇게 엉키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빨간 줄이 있으면 여군은 물론이고 취업의 문이 닫힐 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욕하고 손가락질을 당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부모님께 탈북을 하겠다는 결심을 알립니다. 당시 꽤나 높은 지위에 이모부가 계셨기 때문에 이모의 도움을 받아 먼저 중국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1년 여 시간 돈을 벌어 모아 사정을 살핀 후에 브로커를 통해 대한민국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어떤 고충을 겪었나 물으니 개미 한 마리, 아는 사람 하나 없으니까 너른 광야에 홀로 선 기분이었다고. 외로워서 매일 밤 눈물로 지냈다고. 그러다보니 같은 탈북민들을 가족이라 여기며 더 의지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사기를 당한 것이 여러 번입니다.

“여기서 쓰는 말,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렇게 친절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뒤통수를 치더라니까요.”

또 다른 어려움은 없었나 물으니, “탈북민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선입견을 가질 것 같아서 두려웠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상대방이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에요. 그럴 때 내 자신의 감정이나 나를 대변할 수 있는 언어에도 한계가 있어서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지르며 싸울 때도 적잖이 있었죠.” 합니다.

그렇지만 워낙 씩씩한 성품이다 보니 취업을 해서 지금의 남편도 만나고 아이들도 낳아 많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돈을 벌어서 브로커를 통해 얼마 전 북한에 계신 부모님을 모셔와 석문면에 자리 잡고 살고계신다고 했습니다.

당시 딸의 탈북 한 사실이 들통 나는 바람에 아버지는 10년을, 어머니는 3년의 교도소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탈북을 적극적으로 도왔다는 이유로 이모님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부모님이 먼저 넘어오고 다음날 저녁에 오기로 돼 있었던 여동생의 탈북은 실패로 돌아가 역시 교도소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부모님도 대산지역 좋은 회사에 취업하여 경제적인 문제없이 잘 적응하며 살고계시지만 막내이모와 여동생의 교도소 생활 소식에 고통스러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 고통은 본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에 와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 물으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 또 휴대폰도 전 세계 어디에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하려면 중국폰으로 몰래몰래 사용해야 한다. 그것도 들통나면 처벌 받는다. 그리고 이곳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그냥 가면 되지 않나. 북한은 예를 들어 내가 충청도에서 서울을 가려면 허가증을 발급받은 후에야 이동할 수 있다. 자유로운 것 그 점이 제일 좋다.”고 말합니다.

방송에 탈북민들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들이 다 사실이냐 물으니,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과장된 부분도 있고, 일부는 사실보다 많이 축소된 부분도 있다. 이 방송이 전 세계로 나가기 때문에 북한을 아무래도 의식해서 편집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가까운 주변사람 조차도 자신이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10여 년 살아와서 그런지 억양도 그렇고 본인의 입으로 말하지 않았더라면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니까 그럴 법 도 합니다.

씩씩한 여군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던 한 소녀가 문화적으로, 또 언어적인 면에서도 참 많이 다른 대한민국에서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돈을 벌면서 또 다른 꿈을 꿉니다. 북한에 두고 온 동생을 하루속히 이곳 대한민국에서 얼싸안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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