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이면서 주말이기도 한 9일 오후 당진에서 운산 시내를 거쳐 해미읍성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마주하는 들판마다 온통 가을을 입었습니다.

누렇게 익어 겸손히 고개 숙인 벼들과, 무릎이 아파 쭈그리고 앉을 수도 없어 그냥 철푸덕 주저앉아서라도 고구마 수확에 나선 어머니, 알알이 붉게 물들어 탐스럽기까지 한 수수가 파란 하늘 하얀 구름이 배경이 되어주니 사진 아닌 한 폭의 그림이 되고 맙니다.

동네 집 앞 담벼락마다 들깻대 세워져 장관을 이루고 어느 집 감나무 주렁주렁 맺힌 열매마다 수줍은 새색시 볼 마냥 붉디붉게 물들었습니다.

정겨운 들판을 지나 이미 가득 메운 주차장에 어렵게 주차하고 대한 달고나 뽑기 현장에서 세계를 뒤흔든 영화 ‘오징어게임’의 위력을 봅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쑤시개 들고 모양대로 뽑아보겠다고 온통 집중해 보지만 금세 부서지고 맙니다. 침을 발라가며 뽑기에 열중하던 영화 속 주인공들의 마음을 잠시 헤아려보는 시간이 됩니다.

읍성 앞에 무더기로 선 관광객들이 인솔해 온 선생님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입구에 마련된 양심 양산을 단체로 펼쳐들고 추억의 사진을 담느라 웃음꽃이 함께 펼쳐졌습니다.

옛날 호박엿장수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어느 집 가장이 수리연을 준비하는 동안 엄마와 아이는 비눗방울 날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양궁체험장 옆으로 구절초 수북이 피어나 향기가 진동하고, 아름드리 뻗어 오른 솔 길을 걷노라면 피톤치드 온몸을 휘감아 엔돌핀 솟아나고, 댓돌 위에 신발 가지런히 벗어놓고 청허정에 올라 뛰어노는 아이들의 이마에 솔숲 오르다 만난 댕댕이덩굴 열매마냥 송골송골 땀이 맺혔습니다.

자연발생된 것으로 추측한다는 청허정 옆 대나무숲길은 한번쯤 꼭 걸어보고 싶은 길입니다. 우거진 숲 사이를 걷는 지인의 뒷모습을 사진에 담고 보니 인생샷이 탄생합니다.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가며 힐링할 수 있게 배려했습니다.

대나무숲길을 돌아 나와 마주한 코스모스 길에 발목을 붙잡힌 관광객들 한참을 머물며 이 모양 저 모양 온갖 포즈 취해가며 분홍빛 추억을 담습니다.

요란한 북과 장구 소리에 이끌려 다가가니 국악기 체험마당에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꽹가리, 장구, 북, 징을 들어 신명나게 두들겨대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투호놀이에 온통 집중하며 어쩌다 성공이라도 할라치면 세상을 다 얻은 것 마냥 환호성을 질러대고, 시월의 장미로 휘덮인 터널을 통과하는 사람마다 잃어버린 낭만을 되찾습니다.

엄마가 돗자리 깔고 납작 엎어져 코를 골아가며 고단한 몸을 쉬어도 외나무다리 중심 잡아 걷기도 하고, 굴렁쇠를 굴리며 달리고, 뛰어놀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아 부모에게 안심이고, 어린이들에게 안전한 해미읍성이 모두에게 천국입니다.

주말 맞아 해미읍성을 찾은 관광객들에게서 웃음꽃이 피어날 때마다 ‘가을의 여인’이라는 꽃말을 가진 구절초도, ‘순정’이라는 꽃말을 가진 코스모스도, ‘열렬한 사랑’의 꽃말을 가진 시월의 장미도 함께 장단 맞춰 자꾸만 피어나며 가을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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