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3월 대장암 말기에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지인분이 있습니다. 말기 암이라는 이름대로 이미 암이 모든 장기에 퍼진 상태였기 때문에 서울 큰 병원마다 찾아다녀보았지만 모두 수술은커녕 입원조차 거부했습니다. '그저 집에 가셔서 맛있는 것이나 드시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만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웃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마음속으로 아픈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사자와 가족들은 희망의 놓지 않았습니다. ‘수술이라도 하고 치료라도 받아봐야 여한이 없지 않겠냐’면서 서울에서 여기 저기 병원을 찾아다니던 중 한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수술은 난항을 겪었고 7시간이 넘는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가족들은 기다리면서 절망 대신 손을 잡고 ‘희망’을 기도했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의사가 말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크고 작은 암 덩이가 너무 많아서 차차 폐도, 간도 일부 잘라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절망이 뼛속 깊이 밀려들어왔지만 이 가족은 묵묵히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2022년 새해를 맞았습니다. 지난 해 3월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니까 의사의 말대로라면 작년 9월에 이분의 삶이 죽음으로 결론이 났어야 하는데 절망 대신, ‘희망’을 기도하던 이 가족에게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지난 달 열 두 번 째 항암치료를 받기 전 찍어본 CT상에서 암 세포를 하나씩 집어내기도 어려워서 잘라내야 할 것 같다던 폐와 간의 암 세포는 온데 간 데 없이 흔적만 남아있었고 모든 장기들이 잘 재생되고 있다는 설명을 의사로부터 들었습니다.

이전에 덮어놓고 노래했던 ‘희망’이 현실이 되어 가족 뿐 아니라 이분을 염려하던 이웃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이분과 한 날 점심식사를 하면서 인터뷰 하는데 놀랐습니다. 본인은 말기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야말로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도리어 ‘암이 재발되어 다시 입원하게 됐다’면서 하염없이 울어대는 옆 침상의 환자들을 위로하고 기도해주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업가로서도 여전히 전화로 업무를 지휘하며 생산적인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 아프니까 이제 안하겠다, 못 하겠다’는 결론을 내리는 여느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뭇사람들과 다른 긍정의 생각이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낳았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에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병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절대 절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만나 절망이라고 여겨지는 순간, 문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옴을 봅니다.

성경에서는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독차지 하니까 이를 시기 질투하는 형제들로부터 깊은 웅덩이에 버려졌다가 형님들이 돈을 받고 이집트 상인에게 팔려갔으며,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고 이를 뿌리쳤지만 누명을 쓰고 수년간 감옥생활을 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는 요셉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신을 버리고 팔아넘긴 형제들을 원망하거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상황에서도 결코 절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옥살이를 하던 중 요셉은 파라오(바로)왕의 꿈을 해몽하면서 왕의 신임을 얻어 마침내 총리대신이 되어 당시 기근에 시달리며 꼼짝없이 죽게 된 아버지와 형제들을 모두 구원하게 됩니다. 절망 가운데 놓였을 때에 인내할 줄 알았습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각광받는 인물 중 한사람이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인물 가운데서도 절망 속에서 희망을 꽃피운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정약용의 형 정약전입니다.

정약전은 ‘신유박해’로 흑산도에 귀양을 갑니다. 언제 집으로 돌아갈 지 알 수 없는 절망 속에서 그는 도전합니다.

15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흑산도 부근의 바다생물을 채집하고 조사하여 기록했습니다. 그렇게 현대의 도감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 방대한 어류기록서 ‘자산어보’가 탄생했습니다.

2022년 새해가 밝았는가 싶었는데 벌써 첫 달의 보름을 곧 맞이합니다. 늘 좋은 일만 가득하면 좋겠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절망’이라는 이름으로 어김없이 문제들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문제와 마주쳤을 때 오늘 소개한 지금 바로 내 옆에서 숨 쉬는 지인을 통해, 성경 속에서, 역사 속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배워야겠습니다. 절망을 어떻게 희망으로 바꾸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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