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른 아침 아파트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야트막한 숲에 올라보았습니다. 한동안 씻을 수 없어 꽤재재 했던 소나무들이 어제 종일 내린 비 덕분에 말끔히 샤워하고 훤칠해졌습니다.

쑥이 겨우내 땅 속에서 인내를 배우다가 마침내 때가 차 첫 번째 난관 가물어 딱딱하기까지 한 땅을 힘겨웁게 뚫고 나왔는데 두 번째 난관을 만납니다. 두껍게 쌓인 솔잎들까지 제끼고서야 드디어 빛을 마주하게 된 봄 쑥 얼굴이 전날까지만 해도 헬쑥(?) 했는데 목 좀 축이고 나더니 이제 살판 난 표정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숲이 사랑받는 이유가 뭘까요! 크기가 다르다고, 종이 다르다고, 돋아나는 시기가 다르다고 해서 서열을 따지지 않고, 자리를 조금이라도 더 차지해보겠다고 아웅다웅하는 법이 없습니다. 누구 하나 큰 목소리 내지 않고 양보하고, 배려하고, 조화를 이루고 연합합니다. 크든 작든 숲에 오르면 누구라도 평온을 느끼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A라는 지인은 집안을 온통 각을 맞춰 정리하고 어떤 물건이든 나와 있으면 눈에 거슬려 장속에 다 집어넣어야 마음이 편합니다. B라는 지인은 물건들이 눈에 보이게 나와 있어야 안심이 됩니다. 지인 A가 B가정을 방문하면 “왜 이렇게 늘어놓고 사는지 이해가 안 간다”라는 표현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인 B도 A가정을 방문해 “아무것도 없으니까 나간 집 같다. 썰렁해 보인다”라는 표현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커피에 물의 양을 가지고도 “이해가 안 간다”는 표현을 하는 것을 봅니다. 어떤 사람은 3분의 1가량의 아주 적은 양의 물을 부어 진하게 마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컵에 물이 넘실대도록 가득 부어 연하게 마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하게 마시는 사람은 연하게 마시는 사람을 향해 “그렇게 물을 많이 넣으면 대체 무슨 맛으로 커피를 마시는 거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하고, “진하게 마시는 사람을 향해서는 “너무 쓸텐데...”하며 괜한 걱정을 합니다.

누군가는 널부러져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누군가는 칼각을 맞춰 정리돼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누군가는 진하게, 누군가는 연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각자 행복을 누리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으며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서로의 다름을 보듬는 포용이 아쉽습니다.

지난 9일은 20대 대통령 선거를 치른 날이었습니다. 선거를 치르고 난 후 다음날 출근한 동료에게 상사가 “왜 내가 원하는 인물에 투표하지 않았냐!”고 아랫사람을 다그치며 갑질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기사를 대하면서 온 가족이 느지막이 함께 투표하고 나와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아들이 우리 부부가 지지하는 인물에 투표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나눈 일이 생각났습니다. 성인이니까 듣는 것도 있었을테고, 나름대로 분석도 하고 최종 마땅하다 여기는 사람에게 투표했을 터인데 부모와 다른 가치관에 대해 인정해 주지 않고 불쾌한 감정을 표현했던 것이 얼마나 옳지 못한 행동이었는지 깨닫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일, 늘 마음에 새겨보지만 가족이니까 편하다는 이유로 어느새 망각하고 있는 자아를 발견합니다.

9일 선거를 치루고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우리나라 20대 대통령이 최종 결정됐습니다. 누군가는 환희의 만세를, 누군가는 개탄하는 한숨을 쉬었을 테지요.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편을 가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쪽 강물, 저편 강물이 모여 거대한 바다를 이루듯, 이 나무 저 나무, 이 풀 저 풀, 이 꽃 저 꽃이 어우러져 참 아름답고 웅장한 숲을 이루듯 융합을 이뤄내야 할 때입니다.

패배자는 깨끗하게 승복함으로, 승리자는 겸손과 배려로 서로 어우러져야 합니다. 사람이 편을 나누어서 끝까지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를 바다가, 숲이, 자연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자연에서 교훈을 얻어야겠습니다. 어떻게 융합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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